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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Remember Birkenhead!)]【윤경변호사 법무법인바른】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4. 4. 1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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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Remember Birkenhead!)]【윤경변호사 법무법인바른】

 

영국에는 국민 모두가 긍지를 가지고 지켜 내려오는 전통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는 말을 나누는 것이다.

항해 중에 재난을 만나면 선원들이나 승객들은 서로서로 상대방의 귀에 대고 조용하고 침착한 음성으로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라고 속삭인다.

해양국가인 영국의 해군에서 만들어진 이 전통 덕분에 오늘날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이 죽음을 모면해왔다.

일찍이 인류가 만든 많은 전통 가운데 이처럼 지키기 어려운, 또 이처럼 고귀한 전통도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는 실로 인간으로는 최대한의 자제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해군의 자랑으로 일컬어지고 있던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가 사병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630명으로 130명이 부녀자였다.

항해 도중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6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배가 바위에 부딪쳤다.

시간은 새벽 2시. 승객들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선실에는 대번에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부서진 판자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그 사이를 벌벌 기어 갑판으로 나가려는 사람, 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때 파도가 밀려 배가 다시 한번 세게 바위에 부딪쳤다.

배는 이제 완전히 허리통이 끊겨 침몰되어가고, 그 사이 사람들은 가까스로 배의 뒤쪽으로 피신했다.

이들 모두의 생명은 이제 문자 그대로 경각에 달려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선상의 병사들은 거의 모두가 신병들이었고 몇 안 되는 장교들도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사관들이었다.

남아 있는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는데 1척당 정원이 60명이니까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180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더구나 이 해역은 사나운 상어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반 토막이 난 이 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물 속으로 가라앉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더 심해져갔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승객들의 절망적인 공포는 이제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아래서도 승객들은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전 병사들에게 갑판 위에 집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수백 명의 병사들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마치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 훈련을 할 때처럼 민첩하게 열을 정돈하고 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동안 한쪽 편에서는 횃불을 밝히고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하선시켰다. 마지막 구명정이 그 배를 떠날 때까지 갑판 위의 사병들은 사열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구명정에 옮겨 타 일단 생명을 건진 부녀자들은 갑판 위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버큰헤이드 호’가 파도에 휩쓸려 완전히 침몰하면서 병사들의 머리도 모두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얼마 후에 몇 사람이 수면 위로 떠올라왔다. 용케 물 속에서 활대나 나무 판자를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날 오후 구조선이 그곳에 도착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436명의 목숨이 수장된 다음의 일이었다.

사령관 세튼 대령도 죽었다.

목숨을 건진 사람 중의 하나인 91연대 소속의 존 우라이트 대위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모든 장병들의 의연한 태도는 최선의 훈련에 의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누구나 명령대로 움직였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 잘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이나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이 사건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버큰헤이드 호’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가 각지에 세워졌다. 이전까지는 배가 해상에서 조난될 경우 저마다 제 목숨부터 구하려고 큰 소동을 벌이고는 했다. 즉, 힘센 자들이 구명정을 먼저 타고 연약한 어린이와 아녀자들이 남아 죽어야 했다.

 

‘여자와 어린이가 먼저’라는 훌륭한 전통이 1852년의 ‘버큰헤이드 호’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 이후 죽음 앞에서도 명예롭고 의연하게 혼란을 축소함으로써 여자와 어린이는 물론 수많은 인명을 살려낸 것이다.

 

<‘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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