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한 번 고난을 이겨낸 파리가 두 번째도 이겨 내라는 보장은 없다.](1)【윤경 변호사 법무법인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8. 9. 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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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고난을 이겨낸 파리가 두 번째도 이겨 내라는 보장은 없다.](1)윤경 변호사 법무법인 더리드(The Lead)

 

그 순간 사장의 눈에는 파리 한 마리가 넓은 잉크 포트에 빠져 기력을 잃고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기어 나오려 애쓰는 것이 보였다.

다리를 바둥거리며 파리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잉크 포트의 옆은 젖어서 미끄러웠다.

파리는 다시 뒤로 떨어져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사장은 펜을 들어 파리를 건져낸 다음 압지 위에 내려놓았다.

한동안 파리는 주위로 검게 번져 나가는 반점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런 다음 파리는 앞발을 흔들며 힘을 쓰는가 싶더니 흠뻑 젖은 작은 몸을 일으켜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계속해서 잉크를 털어버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낫이 숫돌의 위아래를 오가듯 다리 하나가 날개의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쉬더니, 발가락 끝으로 받치고 선 듯이 모이는 파리는 처음에는 한쪽 날개를 다음에는 다른 쪽 날개를 펼치려고 애썼다.

 

마침내 파리는 날개를 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얼굴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라도 파리가 조그마한 앞발들을 가볍게 부벼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소름끼치는 죽음의 위기는 이제 지나가 버렸다.

파리는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삶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사장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펜을 들어 다시 잉크 속에 담갔다가 파리가 날개를 움직여 날려고 할 때 무거운 잉크 한 방울을 파리 위에다 떨어뜨렸다.

 

파리가 그 잉크 방울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그 잉크 방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파리는 불쌍하게도 다음에 무슨 무서운 일이 닥칠지 완전히 겁을 먹고 질려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파리는 고통스러운 듯 앞쪽으로 움직여 나가려고 꿈틀거렸다.

앞발이 흔들리면서 조금 힘을 쓰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조금 느려 보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거 대단한 놈이군!”

사장은 파리의 용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것이야말로 시련과 당당하게 맞서는 방법처럼 보였다.

올바른 정신과 불굴의 의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죽는다는 말을 하지 마라. 그것은 단지

 

그러나 파리가 힘들게 작업을 끝내자 사장은 시간을 놓치지 않고 펜에 다시 잉크를 채워 새로 깨끗해진 파리의 몸에다가 또 다른 검은 잉크 방울을 흔들어 정확하게 떨구었다.

 

이번에는 파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고통스러운 순간이 흘렀다.

그런데 보라, 앞다리가 다시 흐느적 거렸다.

사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장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파리에다 대고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이 악착같은 녀석!”

 

그러면서 사장은 파리가 잉크를 떨구고 몸을 말리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입김을 불어주어야겠다는 그럴듯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 파리 노력에선 무엇인가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보였다.

 

사장은 펜을 잉크 포트 속에 집어넣으며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마음먹었다.

사장의 생각이 옳았다.

마지막 잉크 방울이 젖어 있는 압지 위에 떨어지자 만신창이가 된 파리는 누운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뒷다리가 몸에 붙어버렸다.

앞다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봐사장은 파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리라고!”

그는 펜으로 파리를 건드려 보았다.

그러나 파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파리는 이미 죽어 있었다.

 

사장은 죽은 파리의 몸을 페이퍼 나이프 끝으로 들어 올리더니 쓰레기통에다 던져버렸다.

 

그러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가엾은 생각이 엄습해왔다.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벨을 눌러 메이시를 불렀다.

새 압지를 좀 가져다주게.”

그는 근엄하게 말했다.

빨리 가져오란 말이야.”

늙은 비서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장은 조금 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더라? 뭐였지?’

그는 손수건을 꺼내 칼라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무 것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의 단편소설 “The Fly”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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