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나무 앞에서】《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피어난 꽃. 그 변화를 알아보고 감동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 하나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이름 없는 나무 앞에서】《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피어난 꽃. 그 변화를 알아보고 감동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 하나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서울을 잠시 떠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다.
우연히 들어선 산책로, 짙게 우거진 숲과 싱그런 바람이 나를 반긴다.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고, 나무들은 봄빛에 물들어 한껏 생기를 뽐낸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을 때,
작은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묻는다.
“아빠, 저 나무 이름은 뭐야?”
나는 멈칫한다.
소나무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서울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도시에서 자란 나에겐
그 나무도, 이 꽃도 그냥 ‘그 나무’, ‘그 꽃’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밤나무와 감나무도 열매가 열리기 전엔
서로 구별할 수 없었다.
한 무리의 양들 사이에서 ‘스티브잡스 양’과 ‘워렌버핏 양’을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그저 이름 모를 나무들일 뿐이다.
그 순간 아이의 얼굴에 스치듯 떠오른 실망의 빛.
마치 고등학교 시절, 예쁜 여학생이 다가왔을 때
그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친구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처럼,
묘한 민망함과 당혹감이 스며든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
나무 이름을 아는 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걸까?
지금은 그렇다.
나무 이름과 수많은 야생화의 이름을 아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일까?
지금은 그렇다.
겨우내 잎 하나 없이 앙상하던 나무가 어느 날 꽃을 활짝 피워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나무의 이름을 알아야만 그 나무가 제 이름을 알아주는데 대한 고마움으로 의기양양해서 더욱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 같다.
언뜻언뜻 보이는 야생화도 그 빛깔이 너무 곱고 자태가 아름답다 예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나에게 다가와 향기를 뿜으며 인사를 한다.
더 이상 이름없는 야생화가 아니다.
아직도 주변에 이름을 모르는 꽃과 나무들이 많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 이름들을 배우게 될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