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과나무】《현실을 바꾸지 못할 때, 사람은 언어를 바꾼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미친 사과나무】《현실을 바꾸지 못할 때, 사람은 언어를 바꾼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산비탈을 개간해 심은 건 분명 배나무였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젠가는 황금빛 배가 주렁주렁 열릴 거라고 믿으며
마을 사람들은 흙을 갈고, 물을 주고, 거름을 나르며 몇 해를 살았다.
그러나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었을 때,
그 나무엔 사과가 달렸다.
실수였다.
처음부터 묘목이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배라고 믿었던 나무가 사과를 맺자,
그들은 그 사과를 그냥 배라고 부르기로 했다.
말을 바꾸면
현실도 바뀌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또 생긴다.
마을엔 이미 ‘진짜 사과나무’도 있었다.
이제 기존의 사과나무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것도 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
사과라는 단어는 그 마을에서 사라졌다.
사과는 존재하지만,
이름이 없어져 버렸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했다.
“사과를 배라고 부르는 마을 사람들.”
배신감과 수치심, 분노가 폭발한 그들은
결국 산비탈로 올라가
그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남은 건 있었다.
분노와 좌절, 그리고 텅 빈 마음.
이청준의 〈미친 사과나무〉는
현실을 부정하고, 이름을 왜곡하며,
결국 자신을 파괴해버리는 인간 심리의 기묘한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받아들였더라면,
그 사과는 어쩌면 또 다른 기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과를 사과라 부르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고통을 덜어내는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