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부진정부작위범>】《업무상배임죄에서 부작위를 실행의 착수로 인정하기 위한 요건(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도15529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배임죄의 실행의 착수 여부가 문제된 사건]
업무상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한다(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형법 제18조는 부작위범의 성립 요건에 관하여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업무상배임죄는 타인과의 신뢰관계에서 일정한 임무에 따라 사무를 처리할 법적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상황에서 당연히 할 것이 법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다. 그러한 부작위를 실행의 착수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작위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사무처리의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객관적으로 예견되는 등으로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부작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행위자는 부작위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반한다는 점과 그 부작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어야 한다.
2. 사안의 요지
⑴ 이 사건의 쟁점은 업무상배임죄에서 부작위에 의한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다.
⑵ 환지 방식에 의한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인 피해자 조합을 위해 환지계획수립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피고인이 사업 실시계획의 변경에 따른 일부 환지예정지의 가치상승을 청산절차에 반영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대행회사 대표이사직을 사임하였다는 이유로 업무상배임미수로 기소된 사안이다.
⑶ 대법원은 위 도시개발사업의 진행 경과 등 제반 사정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해자 조합이 환지예정지의 가치상승을 청산절차에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작위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피고인이 부작위로써 업무상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에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배임죄에서 실행의 착수 인정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3. 부진정부작위범의 성립요건 [이하 사법발전재단(2022) 하종민 P.417-434 참조]
가. 형법규정
형법 제18조(부작위범)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 고의에 의한 부작위범의 공통적 구성요건
⑴ 고의에 의한 부작위범의 공통적 객관적 구성요건으로, ㉠ 작위의무의 내용과 작위의무자의 신분을 인식시켜주는 구성요건적 상황, ㉡ 행위자가 구체적 상황에서 구성요건실현을 회피하도록 요구된 행위를 하지 않는 구성요건적 부작위, ㉢ 행위자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요구된 행위를 할 수 있는 개별적인 작위가능성이 존재하여야 하고,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객관적 구성요소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
⑵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이른바 세월호 사건 판결)은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아니하는 부작위가 형법적으로 부작위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한 요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자연적 의미에서의 부작위는 거동성이 있는 작위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무(無)에 지나지 아니하지만, 형법 제18조에서 말하는 부작위는 법적 기대라는 규범적 가치판단 요소에 의하여 사회적 중요성을 가지는 사람의 행태가 되어 법적 의미에서 작위와 함께 행위의 기본 형태를 이루게 되는 것이므로,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아니하는 부작위가 형법적으로 부작위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보호법익의 주체에게 해당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행위자가 구성요건의 실현을 회피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행위를 현실적․물리적으로 행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아니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다. 부진정부작위범의 구성요건
⑴ 일반적으로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를 부작위에 의하여 범하는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 그 부작위로 인한 법익침해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① 보호법익의 주체가 그 법익에 대한 침해위협에 대처할 보호능력이 없고, ② 부작위행위자에게 그 침해위협으로부터 법익을 보호해 주어야 할 법적 작위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③ 부작위행위자가 그러한 보호적 지위에서 법익침해를 일으키는 사태를 지배하고 있어 그 작위의무의 이행으로 결과 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위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살인죄와 같이 일반적으로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를 부작위에 의하여 범하는 이른바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에는 보호법익의 주체가 그 법익에 대한 침해위협에 대처할 보호능력이 없고, 부작위행위자에게 그 침해위협으로부터 법익을 보호해 주어야 할 법적 작위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부작위행위자가 그러한 보호적 지위에서 법익침해를 일으키는 사태를 지배하고 있어 그 작위의무의 이행으로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어야 그 부작위로 인한 법익침해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⑵ 여기서 말하는 작위의무(② 요건)는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위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⑶ 대법원은 ① 부진정부작위범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고의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과 ② 고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다(위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부진정부작위범의 고의는 반드시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에 대한 목적이나 계획적인 범행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 작위의무를 가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그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을 예견하고도 결과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다는 인식을 하면 족하며, 이러한 작위의무자의 예견 또는 인식 등은 확정적인 경우는 물론 불확정적인 경우이더라도 미필적 고의로 인정될 수 있다. 이때 작위의무자에게 이러한 고의가 있었는지는 작위의무자의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작위의무의 발생근거, 법익침해의 태양과 위험성, 작위의무자의 법익침해에 대한 사태지배의 정도, 요구되는 작위의무의 내용과 그 이행의 용이성, 부작위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 부작위의 형태와 결과발생 사이의 상관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작위의무자의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할 것이다.”
3. 작위에 의한 (업무상) 배임죄에서의 실행의 착수 시기 [이하 사법발전재단(2022) 하종민 P.417-434 참조]
가. 판례의 태도
⑴ 판례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배임의 범의로, 즉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를 한다는 점과 이로 인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나 의사를 가지고 임무를 위배한 행위를 개시한 때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⑵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기수가 된다.
배임죄의 실행 착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① 배임의 범의를 가지고서 ② 임무위배행위를 개시하여야 한다.
배임의 범의가 실행의 착수 인정의 전제가 된다.
나. 대표적인 사례
작위에 의한 배임죄에서 실행의 착수 여부가 문제 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① 대법원 1966. 9. 27. 선고 66도912 판결: 군조합의 구매주임이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묘목을 판매하여 재산상 이득을 취하고 조합원들에게 손해를 끼칠 목적으로 조합원들로부터 묘목의 구매신청서를 받은 이상 업무상배임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고, 위 묘목 판매사업이 조합사업으로 확정할 절차인 이사회의 결의나 도지부의 승인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이는 조합 내부의 절차에 불과하여 업무상배임미수의 성립 여부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 사례
② 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대표권을 남용하는 등 그 임무에 위배하여 약속어음을 발행한 경우 대표이사로서는 배임의 범의로 임무위배행위를 함으로써 실행에 착수한 것이고, 약속어음 발행이 무효일 뿐만 아니라 그 어음이 융통되지도 않았다면 회사는 어음발행의 상대방에게 어음채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사에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다거나 손해 발생의 위험이 발생하였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이때에는 배임죄의 기수범이 아니라 배임미수죄로 처벌하여야 한다고 한 사례
③ 대법원 2003. 3. 25. 선고 2002도7134 판결: 부동산의 이중양도에 있어서 매도인이 제2차 매수인으로부터 계약금만을 지급받고 중도금을 수령한 바 없다면 배임죄에서 실행의 착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2차 매수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받은 것 또한 부동산 양도인으로서의 임무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중도금을 수령한 때에 비로소 구성요건실현(재산상 손해 발생) 행위와 밀접한 행위가 개시 되어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4.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배임죄에서의 실행의 착수 시기 [이하 사법발전재단(2022) 하종민 P.417-434 참조]
⑴ 작위의무 위반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실행의 착수 여부를 판단하는 방안(제1안)과 부작위에 의해 초래된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을 기준으로 실행의 착수 여부를 판단하는 방안(제2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⑵ 대상판결(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도15529 판결)은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배임죄에서의 실행의 착수 시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법리를 판시함으로써 제1안을 채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업무상배임죄는 타인과의 신뢰관계에서 일정한 임무에 따라 사무를 처리할 법적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상황에서 당연히 할 것이 법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다. 그러한 부작위를 실행의 착수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작위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사무처리의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객관적으로 예견되는 등으로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부작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행위자는 부작위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반한다는 점과 그 부작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어야 한다.”
⑶ 대상판결(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도15529 판결)은 업무상배임죄에서 부작위를 실행의 착수로 인정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부작위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러한 상황의 대표적인 예로 ‘작위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사무처리의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객관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을 들고 있다.
⑷ 대법원(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도15529 판결)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에게 2011년 실시계획의 인가에 따른 후속 조치를 할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조합이 이 사건 환지예정지의 가치상승을 청산절차에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그러한 작위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피고인이 부작위로써 업무상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