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중재판정부 구성이나 중재절차를 위반한 중재판정의 이의제기신청권(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다238837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중재판정에 대한 이의신청권의 포기 여부가 문제된 사건]
【판시사항】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유엔협약 제5조 제1항 (라)호의 규정 취지 / 위 규정에서 정한 중재판정 승인이나 집행의 거절 사유에 해당하려면 해당 중재절차에 의한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에 대한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여 용인할 수 없어야 하는지 여부(적극) 및 당사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중재절차에 관한 하자에 대하여 당사자가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중재절차에 참여한 경우,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절차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유엔협약(이하 ‘뉴욕협약’이라 한다)」 제5조 제1항 라호는 중재판정의 기초가 된 중재판정부의 구성이나 중재절차가 당사자의 중재합의에 합치하지 아니하거나,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중재가 이루어지는 국가의 법령에 합치하지 아니할 때,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중재절차의 계약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중재절차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자치 및 합의(parties' autonomy and agreement)로 형성되나, 당사자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보충적으로 해당 중재에 적용되는 임의규정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위 규정에서 정한 중재판정 승인이나 집행의 거절 사유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당사자의 합의나 임의규정을 위반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당 중재절차에 의한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에 대한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여 용인할 수 없는 경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중재판정부나 중재절차의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에, 승인국 또는 집행국 법원은 ‘중재절차에서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였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여 중재절차 진행과정에서 절차위반이 있더라도 이에 대하여 당사자가 적절히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고, 그 위반사항이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경우에는 이에 관한 이의제기 권한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뉴욕협약은 이와 같은 이의제기 권한의 포기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당사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중재절차에 관한 하자에 대하여 당사자가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중재절차에 참여한 경우에는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절차에서 그와 같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2. 소송의 경과
가. 제1심의 판단
제1심은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1) 이 사건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는 뉴욕협약이 적용되고 뉴욕협약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사건 중재판정은 대한민국에서 집행할 수 있다.
(2) 이 사건 중재절차에서 피고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중재절차에 참여하여 중재판정을 받았으므로, 피고는 위 절차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는 것에 묵시적으로 동의하였거나 적어도 ICC 중재규칙 제39조에 따라 절차에 대한 이의권을 포기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제1심판결의 이유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하였다.
(1) 뉴욕협약은 이의권 포기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나, 당사자가 중재절차상의 하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절차에 참여한 경우에는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절차에서 그와 같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이 해석상 인정된다.
(2) 중재기관 및 중재인 선정에 관한 사항은 공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서 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사건 중재절차의 진행경과 및 피고의 절차 참여 정도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는 기존에 약정하였던 ICC 중재절차를 통한 중재 등 자신의 절차적 권리를 포기하였고,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중재기관에서 중재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관한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3. 쟁점
⑴ 위 판결의 쟁점은, 원고가 중재합의에서 정한 중재기관이 아닌 다른 중재기관에 중재를 신청하여 중재인이 선정되고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피고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중재절차에 참여하여 중재판정을 받은 경우 이의신청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적극)이다.
⑵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라호는 중재판정의 기초가 된 중재판정부의 구성이나 중재절차가 당사자의 중재합의에 합치하지 아니하거나,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중재가 이루어지는 국가의 법령에 합치하지 아니할 때, 중재판정의 승인이나 집행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중재절차의 계약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중재절차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자치 및 합의(parties'' autonomy and agreement)로 형성되나, 당사자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보충적으로 해당 중재에 적용되는 임의규정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위 규정에서 정한 중재판정 승인이나 집행의 거절 사유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당사자의 합의나 임의규정을 위반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당 중재절차에 의한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에 대한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여 용인할 수 없는 경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중재판정부나 중재절차의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에, 승인국 또는 집행국 법원은 ‘중재절차에서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였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하여 중재절차 진행과정에서 절차위반이 있더라도 이에 대하여 당사자가 적절히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고 그 위반사항이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경우에는 이에 관한 이의제기 권한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뉴욕협약은 이와 같은 이의제기 권한의 포기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당사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중재절차에 관한 하자에 대하여 당사자가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중재절차에 참여한 경우에는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절차에서 그와 같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⑶ 이 사건은 원고가 중재판정 집행판결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자 피고가 뉴욕협약 제5조에 나열된 승인 및 집행거부사유를 들어 그 집행을 거부하는 사안이다.
핵심 쟁점은 이 사건 중재합의에서 ICC 중재규칙에 따라 ‘ICC 중재’로 분쟁을 최종 해결하기로 합의를 하였음에도, 원고가 ICC가 아닌 이 사건 중재기관에 중재신청을 하여 절차가 개시되고 이 사건 중재기관에서 중재인을 선정하였는데, 피고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중재에 참여하여 절차가 진행되고 피고에게 불리한 중재판정이 내려진 부분이다.
이 사건 중재절차가 당사자의 중재합의를 위반하여 진행되었음에도 피고가 이에 관한 이의제기 권한을 포기하고 그 후의 중재절차에 참여하여 본안에 관하여 다투고 중재판정을 받았으므로 중재판정의 집행단계에서는 이를 다시 다툴 수 없는지가 주된 쟁점이다.
⑷ 중재합의와 다른 중재기관에서 개시된 중재절차에 피고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참여하여 중재판정까지 받은 경우 그 진행경과와 참여 정도 등에 비추어 피고가 기존에 합의한 중재기관을 통해 중재판정을 받을 권리 등 자신의 절차적 권리를 포기하고, 이 사건 중재판정이 이루어진 중재기관에서 중재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관하여 새로 합의한 것이라는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한 사례이다.
4.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⑴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라호의 사유는 당사자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 확고한 법리로서, 이는 협약상의 금반언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중재절차에 있어서 당사자 자치에 근거하고 있다. 즉, 당사자가 중재절차에서 발생하는 위반사항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에 그 후의 중재절차에 참여하는 때에는 해당 중재절차의 진행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나중에 그 공정성을 다투지 않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⑵ 따라서 당사자가 중재에서 절차상의 위반을 알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절차에 근거하여 내려진 중재판정에 대하여 나중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이와 같은 원칙은 ICC 중재규칙을 비롯하여 대다수 국제중재규칙에 명시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국내 법원은 그와 같은 명시적인 규정이 없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있고, 뉴욕협약에서도 해석상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⑶ 대상판결은 당사자 사이의 중재합의에서 정한 중재기관이 있음에도 일방 당사자가 합의된 중재기관이 아닌 다른 중재기관에 중재신청을 하여 절차가 개시된 후 다른 당사자가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중재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분쟁에 관하여 다툰 경우에는 나중에 중재절차 등의 위반을 이유로 중재판정의 효력을 다툴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이 사건 외국 중재판정의 집행에 관하여 적용되는 뉴욕협약에서 이의제기 권한의 포기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지만, 당사자가 중재절차상 하자에 관하여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절차에 계속 참여한 경우에는 이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4. 국제중재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15호, 김윤종 P.281-320 참조]
가. 국제중재의 의미
해당 중재가 국내중재(domestic or national arbitration)에 해당하는지 국제중재 (international or transnational arbitration)에 해당하는지는 실무상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구별하는 기준은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보통 분쟁의 성격에 따르는 경우와 당사자의 국적이나 주소지에 따르는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중재 법에서는 이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대한상사중재원(Korean Commercial Arbitration Board, KCAB) 중재규칙이 당사자들의 주소를 구별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사건 중재의 경우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는 러시아에 영업소를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나, 2009년부터 2014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200일 이상을 러시아에 체류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중재합의 체결 당시 러시아에 ‘상거소’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중재규칙은 영업소의 개념에 당사자의 상거소를 포함하고, 원고가 대한민국 외의 곳에 상거소를 두고 있으므로 이 사건 중재는 국제중재로서 국제중재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나. 중재판정부의 구성과 그 위반에 따른 중재판정의 취소
⑴ 중재판정부의 구성절차
㈎ 중재인 및 중재판정부의 의미
중재제도의 특성상 중재인(arbitrator)은 중재합의와 중재절차의 가장 핵심적인 요 소라 할 수 있고, 중재인 선정과정은 중재에서 당사자자치 원칙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절차라 할 수 있다.
중재인이란 중재에 부탁된 분쟁을 자기의 책임하에 최종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를 말하고, 중재판정부(arbitral tribunal)는 구체적인 분쟁을 심리 하고 중재판정을 내리는 판단의 주체로서 1인 또는 수인의 중재인에 의하여 구성된 중재인단을 의미한다.
중재사건을 수행하는 중재인의 권한은 곧바로 중재합의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그 권한이 국가의 법질서로부터 나오는 법원의 판단과는 크게 다르다. 국제상사중재에서 가장 부각되는 강점이 분쟁해결의 신속성과 중재인의 중립성이라는 점에서 중재인의 선정절차는 이러한 장점이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하고 중재인은 중재에 관련된 당사자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 중재판정부의 구성절차
중재법에서 중재인의 선정절차는 당사자 합의로 정함을 원칙으로, 당사자 합의가 없는 경우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제12조).
* 제12조(중재인의 선정) ② 중재인의 선정절차는 당사자 간의 합의로 정한다.
③ 제2항의 합의가 없으면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중재인을 선정한다.
1. 단독중재인에 의한 중재의 경우: 어느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 당사자로부터 중재인의 선정을 요구받은 후 30일 이내에 당사자들이 중재인의 선정에 관하여 합의하지 못한 경우에는 어느 한쪽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 법원 또는 그 법원이 지정한 중재기관이 중재인을 선정한다.
2. 3명의 중재인에 의한 중재의 경우: 각 당사자가 1명씩 중재인을 선정하고, 이에 따라 선정된 2명의 중재인들이 합의하여 나머지 1명의 중재인을 선정한다. 이 경우 어느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 당사자로부터 중재인의 선정을 요구받은 후 30일 이내에 중재인을 선정하지 아니하거나 선정된 2명의 중재인들이 선정된 후 30일 이내에 나머지 1명의 중재인을 선정하지 못한 경우에는 어느 한쪽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 법원 또는 그 법원이 지정한 중재기관이 중재인을 선정한다.
중재인의 선정에 관하여 당사자는 국적과 관계없이 선정할 수 있으며, 중재계약에서 중재인의 선정방법과 그 수를 정할 수 있다.
기관중재의 경우 대체로 당사자가 중재인을 직접 선정하지 아니할 때에는 중재사 무국이 중재인을 선정하고 당사자로부터 비용과 수당을 받아 중재인에게 이를 지급 한다. 사무국의 중재인 선정행위는 실질적인 대행일 뿐이고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경 우에도 중재인과 당사자 사이에 중재인 선정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⑵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절차
㈎ 국제중재절차
구 국제중재규칙(2016. 6. 1.자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의하면 국제중재에 있어서 중재인 선정절차는 아래와 같다. 먼저 당사자들이 ‘3인 중재인의 심리로 합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단독 중재인 심리를 원칙으로 하되, 중재원 사무국에서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3인 중재인에 의한 심리로 결정할 수 있다(제11조). 이러한 경우 당사자들은 사무국으로부터 중재인 수에 관한 결정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각각 1인의 중재인을 선정하고, 선정된 2인의 중재인이 합의하여 중재판정부의 의장중재인을 선정하게 된다(제12조 제1항). 즉, 국제중재절차에서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지 않는 경우 원칙적으로 당사자들에 의해 선정된 단독중재인이 판정을 하고, 당사자들이 요청하는 경우 사무국이 중재인들의 명단을 제공할 수 있으며, 당사자들이 중재인을 선정할 수 없거나 선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무국이 대신 선정하게 된다.
㈏ 국내중재절차
구 국내중재규칙(2016. 6. 1.자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의하면, 사무국은 중재합의 에서 중재인의 수를 정하지 아니한 경우 그 재량으로 중재인의 수를 1인 내지 3인으로 정한 다음, 중재인명부 중에서 한국인 중재인 후보자 수인을 선택하고 그 명단을 양 당사자에게 송부한다(제21조 제1항).
각 당사자는 후보자명단에 의장중재인과 중재인을 각각 구별하여 선정의 희망순위를 표시하기 위한 번호를 붙여서 위 명단의 수령일로부터 15일 이내에 회신을 하고, 지명된 후보자의 순위에 따라 중재인의 취임수락서를 받는 방법으로 중재판정부를 구성하게 된다(제21조 제2항).
국제중재절차는 당사자들에 의해 선정된 단독중재인이 판정을 하고, 당사자들이 요청하는 경우 사무국이 중재인들의 명단을 제공할 수 있으며, 당사자들이 중재인을 선정할 수 없거나 선정하지 않는 경우에 사무국이 대신 선정한다는 점에서 국내중재절차와 그 진행과정이 상이함을 알 수 있다.
⑵ 중재판정부의 구성 또는 중재절차의 위반에 따른 중재판정의 취소
중재판정은 법정의 형식적 요건을 구비하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발생하나 (중재법 제35조), 중재절차의 기본적인 요건을 결여하여서 중재법 제36조 제2항에 열거된 취소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사자가 중재판정 취소의 소를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중재법 제36조 제1항).
중재법 제36조 제2항 제1호 (라)목은 중재판정부의 구성이나 중재절차가 중재법의 강행규정에 반하지 아니하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르지 아니하거나, 그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 중재법에 따르지 않은 하자가 있을 경우 중재판정 취소사유를 인정한다. 여기서 중재절차란 중재인 앞에서의 절차뿐만 아니라 중재인이나 중재기관의 선정까지도 포함하여 중재의 신청으로부터 중재판정까지의 모든 절차를 의미한다.
이 사건 중재합의에는 당사자 사이에 중재판정부의 구성이나 중재절차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 중재법의 임의규정이 보충적인 절차법이 되므로, 중재절차가 그 임의규정에 위반한 것이 취소사유가 될 것이다.
⑶ 판례의 태도
판례는 당사자 사이에 이유의 기재를 요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없는데도 중재판정에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 중재판정의 취소사유를 인정하였다(대법원 2010. 6. 24. 선고 2007다73918 판결).
판례는 심문기일에서 중재인 3인 중 2인만으로 중재판정을 한 경우에 당사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중재판정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17146(본소), 91다17153(반소) 판결].
5. 중재절차에 대한 이의신청권과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관한 이의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15호, 김윤종 P.281-320 참조]
가. 중재절차에 대한 이의신청권 및 그 상실(중재법 제5조)
중재법 제5조는 임의규정이나 중재절차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합의를 위반한 경우 당사자가 그 위반 사실을 알고 지체 없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의신청권한을 상실(포기)하는 것으로 보고 이후의 단계에서 그 하자를 주장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재법은 이의신청권 상실과 관련하여, 당사자가 위반사실을 알게 된 경우 ① 이의를 제기하여야 할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의를 제기하여야 하고, ② 이의제기의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면 이의신청권을 상실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국제중재규칙에서도 유사한 규정을 갖고 있다.
중재판정에 대한 불복사유의 대부분은 실체적 판단이 아니라 중재의 절차적 하자에 관한 것인데, 당사자가 절차적 위반에 대하여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나중에 불복절차에서 그러한 사유를 주장할 수 없다.
나. 이의신청권 상실의 판단 기준
⑴ 요건
중재법 제5조에 규정된 이의제기권의 상실은 이의제기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상충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인정된다. 당사자가 중재절차상의 하자에 관하여 이의신청권을 상실하려면, ① 그러한 중재절차상의 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knowledge)하고, ② 나아가 그러한 하자 있는 중재절차를 승인(consent) 또는 의도(intention)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당사자가 중재절차에 있어 위반사실을 알았다고 하여 바로 이를 용인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당사자가 그 위반사실에 대하여 의도적이든 묵시적이든 이를 승인 내지 추인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중재절차의 위반사실을 알면서도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그 후의 중재절차에 참여하는 경우 이를 당사자 사이에 위반 사유가 있는 방법에 따르기로 하는 묵시적인 새로운 합의가 성립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⑵ 판단 기준
중재절차에서 절차상 하자를 알고도 적시에 이의제기가 없으면 이의신청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의제되므로, 시간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건에서 당사자가 절차상 하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음에도 중재판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중재판정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당사자가 이의신청권을 포기하였는지 여부는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것이 금반언의 원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
⑶ 판례의 태도
판례 중에는 중재인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문제되었으나 중재인에 대한 기피신청 이나 이의신청을 하지 않고 중재절차를 진행한 사안에서, 당사자가 중재인에게 공 정성과 독립성이 의심되는 사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중재판정의 취소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다21995 판결).
한편 중재인 선정절차가 당사자 사이의 합의를 위반하였는데 당사자들이 이를 알면서도 심문기일에 출석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본안에 관하여 진술한 경우에 이의신청권의 포기로 본 사례가 있다(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0다29264 판결).
다만 위 두 판결은 구 중재법(1999. 12. 31. 법률 제6083호로 전면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라 판단한 것인데, 구 중재법에는 이의신청권 상실규정이나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대한 규정이 없었고, 중재판정 취소의 소(제13조)에 관하여만 규정되어 있었다.
나.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대한 불복절차
⑴ 중재법은 ‘권한판단 권한’의 원칙 즉, 중재판정부가 자신의 권한 및 이와 관련하여 중재합의의 존부 또는 유효성에 대한 이의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제17조 제1항).
이는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거나 무효인 경우 또는 사건이 중재합의의 범위 밖에 있는 경우에 중재판정부에게 판정권한이 없지만 중재판정부로 하여금 이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⑵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대한 이의제출 시기(중재법 제17조 제2항)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을 부인하는 이의제기는 피신청인의 답변서가 제출되기 이 전에 제기되어야 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당사자에 대하여 자신이 중재인을 선정하였거나 또는 그 선정에 참여하였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러한 이의제기 하는 것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또한 중재판정부는 이의제기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라도 그 지연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때에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제17조 제4항). 이는 무경험한 당사자들이 중재절차의 초기단계에 중재인의 권한 흠결이나 권한 유월을 모를 수 있고 중재판정부의 권한의 준거법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시간적 제한을 완화한다는 취지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기한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중재절차의 나머지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중재판정 취소절차나 강제집행절차에서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⑶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관한 이의 중 중재합의의 경우
2016년 개정된 중재법은 신청인이 청구서면에서 중재합의의 존재를 주장하고 피 신청인이 반박서면에서 이를 다투지 아니하면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므로(제8조 제3항 제3호), 이 경우 반박 서면의 제출시점까지를 이의제기 시 점으로 보게 될 것이다. 판례는 개정 전 중재법 아래에서 선택적 중재조항이 문제된 사안의 경우 당사자 일방이 신청한 중재절차에 별다른 이의 없이 임할 때에는 해당 중재조항은 중재합의로서의 확정적인 효력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법원 1990. 2. 13 선고 88다카23735 판결, 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5다12452 판결).
⑷ 당사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의제기 시기를 도과한 경우
당사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의제기를 해태한 경우 그 후의 절차에서는 원칙적으로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차단효(preclusive effect)]. 그러나 중재가능성의 결여나 공서위반의 경우와 같이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사항에는 이의제기 시점과 상관없이 이의를 판단할 수 있다.
⑸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관한 이의절차
① 중재판정부의 권한심사권 행사
중재재판부는 피신청인의 관할항변이 있거나 직권(ex officio)으로 중재합의에 대 하여 심사할 수 있고, 피신청인의 이의가 있는 경우 선결문제로 결정하거나 본안에 서 중재판정과 함께 판단할 수 있다(제17조 제5항). 그러나 중재판정부의 권한심사 권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아래와 같은 제한과 견제가 가능하다.
② 법원의 재심사(중재법 제17조 6항)
중재판정부가 중재판정 권한을 인정한 경우 그 결정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법원에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대한 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데(제17조 제6항), 이는 전면적인 재심사(de novo review)이다.
법원의 권한심사에 대하여는 항고할 수 없는데(제17조 제8항),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중재판정 취소소송이나 집행판결 청구소송에서 권한 존부를 문제삼을 경우 법원이 위 재심사에 구속되지는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
③ 중재판정 취소의 소 제기(제36조) 또는 집행단계에서의 심사(제37조 이하)
중재판정부가 중재판정 권한을 선결문제로 먼저 판단하지 아니하고 본안에 관한 심리에 나아간 후 중재판정에서 중재관할을 인정한 경우 중재에서 불리한 판단을 받은 당사자는 유효한 중재합의가 없음을 주장하면서 이를 이유로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또는 유리한 중재판정을 받은 당사자가 중재판정 집 행판결을 구할 때 집행거부사유로도 주장할 수 있다.
중재판정부가 선결문제로 판정권한을 인정한 경우에 당사자가 법원에 심사를 구하지 아니하고 중재판정 이후에 중재판정 취소의 소를 제기하거나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가 문제 되는데 당사자에게 선택권이 인정된다고 본다. 이 경우에 중재지국 또는 집행국 법원도 전면적인 재심사권한을 갖게 된다.
다. 중재판정부의 구성이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속한 문제인지 여부
⑴ 문제점 제기
이 사건의 경우에는 중재인 선정절차에서 당사자의 합의 또는 임의규정을 위반한 것이 문제 되는데, 이와 같이 중재판정부의 적절한 구성도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의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우리나라 중재법에서 중재판정부 구성이 중재판정부 판정권한에 속하는지 여부에관하여 긍정설과 부정설, 절충설의 견해대립이 있다.
⑵ 소결
이 사건 중재합의에서는 ‘대한상사중재원이 전속관할권을 갖는다’라고만 정하고, 이 사건 중재가 국제중재인지 국내중재인지 및 중재인 선정방법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정함이 없다. 이 사건 중재합의의 내용으로 포섭되는 국제중재규칙의 해석에 따르면 이 사건 중재는 국제중재로서 국제중재규칙에 따라 중재판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 그런데 대한상사중재원 사무국에서는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중재인 선정절차를 진행하였으므로, 이 사건 중재에서 중재판정부 구성과 관련하여 위반된 사항은 ‘중재인을 선정하는 절차와 방식’이 된다.
대상판결은 중재제도의 특수성상 중재판정부의 구성은 중재합의와 중재절차의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하므로, 그 구성에 당사자 합의나 이를 대신하는 임의규정을 위반하여 중재판정부가 당사자로부터 분쟁해결 권한을 위탁받은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중재법 제5조가 아니라 중재판정부의 판정권한에 관한 제17조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중재판정부는 중재인 선정절차를 통하여 구성되고 이와 같은 중재판정부의 구성은 중재제도의 특성을 구분짓는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이므로, 이에 대한 위반사항은 그 경중을 불문하고 단순한 절차상의 하자로 보아서는 안 되고, 중재판정부의 본질적인 권한 문제로 접근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라. 중재판정부 구성을 위한 중재인 선정절차에 관한 이의가 중재판정부 판정권한에 관한 이의인지 여부(대법원 2018. 4. 10. 선고 2017다240991, 2017다241000 판결)
이 사건 중재는 국제중재인데, 대한상사중재원 사무국은 이 사건 중재를 국내중재로 오인하고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중재인 선정절차를 진행하였다. 이는 중재판정부의 구성 또는 중재절차가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로 중재법 제36조 제2항 제1호 (라)목에 해당되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재판정 취소의 사유가 된다.
중재법 제5조는 “당사자가 이 법의 임의규정 또는 중재절차에 관한 당사자 간의 합의를 위반한 사실을 알고도 지체 없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거나, 정하여진 이의제기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중재절차가 진행된 경우에는 그 이의신청권을 상실한다.”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국제중재규칙 제50조는 “이 규칙의 규정, 중재합의, 중재절차에 적용되는 다른 규칙 또는 중재판정부의 지시가 준수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에 대하여 즉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절차를 계속 진행한 당사자는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한다. 반면 중재법 제17조 제2항 전문은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관한 이의는 본안에 관한 답변서를 제출할 때까지 제기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중재제도의 특성상 중재판정부의 구성은 중재합의와 중재절차의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소 중의 하나이므로, 중재판정부의 구성에 당사자 간의 합의를 위반한 사항이 있을 때에는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관한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중재판정부의 구성이 당사자 간의 합의 등을 위반하여 해당 중재판정부가 당사자로부터 분쟁해결권한을 위탁받은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중재법 제5조나 국제중재규칙 제50조가 아닌 중재법 제17조 제2항 전문 또는 제3항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여야 한다.
이 사건 중재는 국제중재로서, 그 중재합의에서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한 취지는 국제중재규칙에 따라 중재인을 선정하여 중재판정부를 구성하고 그 중재판정부의 판정에 따르겠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앞서 본 바와 같이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중재인 선정절차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이루어진 중재인 선정절차에 대하여 원고가 한 이의는 중재법 제17조 제2항 전문에서 규정하는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대한 이의제기에 해당하고, 원고는 중재법 제17조 제2항 전문이 정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므로 이의신청권을 상실하지 않았다.
6. 중재절차의 특성 (= 자율성, 신속성)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김영석 P.624-645 참조]
가. 중재절차 일반
중재는 당사자 간의 합의로 재산권상의 분쟁 및 당사자가 화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 비재산권상의 분쟁을 법원의 재판에 의하지 아니하고 중재인의 판정에 의하여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중재법 제3조 제1호). 우리 중재법은 1999년 전부 개정 과정에서 UNCITRAL 모델법(UNCITRAL Model Law on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1985)을 받아들였는데, 현재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① 법원의 관여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고, ② 법원의 결정에 대한 불복도 제한함으로써 신속한 중재절차의 진행을 꾀하고 있다.
나. 자율성
⑴ 중재절차에서는 당사자의 자치가 존중되어야 하므로 법원의 관여는 이와 같이 중재법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중재법 제6조). 이런 점에서 중재법은 당사자들 사이에 중재합의 존부나 유효성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에도, 먼저 중재판정부를 구성하여 중재판정부로 하여금 이에 관하여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중재법 제17조). 법원은 그 이후에 비로소 중재판정부의 판단에 대해 사후 심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⑵ 이것이 이른바 중재판정부의 권한심사 원칙(Kompetenz-Kompetenz, 이하 ‘KompetenzꠓKompetenz 원칙’이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한다)인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독일/영국/싱가포르 등 UNCITRAL 모델법을 받아들인 나라는 대부분 위 원칙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대법원은 2004. 6. 25. 선고 2003다5634 판결에서 위 원칙에 따른 판시를 한 바 있다.
다. 신속성
⑴ 한편 중재법은 중재절차를 통한 사법(私法)상 분쟁해결이 적정․공평․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중재법 제1조), 그중 신속성을 위해 중재절차의 각 진행단계에서 불복이나 항고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① 중재인선정 신청, ② 중재인이나 감정인에 대한 기피신청, ③ 권한심사신청, ④ 권한종료신청 등에 따른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불복이나 항고가 허용되지 않는다(중재법 제12조, 제13조, 제14조, 제15조, 제17조).
⑵ 위 표에서 본 것처럼, 불복이나 항고를 금지하는 규정은 UNCITRAL 모델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위 모델법은 중재인선정(제11조), 기피신청(제13조), 권한종료심판(제14조)에 관한 법원의 결정에 불복을 금지(no appeal)하고 있는 이유를 “긴급성을 고려하고, 중재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책략(dilatory tactics)의 위험과 효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UNCITRAL 모델법 해설서(Explanatory Note), para. 24]. 특히, 중재인선정과 기피신청 단계에서 불항고를 금지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⑶ 특히, 중재인선정과 기피신청 단계에서 불복을 금지하는 것은 중재판정부를 조속히 구성하여 중재절차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중재판정부가 먼저 판단하도록 하려는 것이기도 하므로 중재절차의 자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7. 중재법 제12조에 관한 기본 법리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김영석 P.624-645 참조]
가. 중재인선정 절차 일반
⑴ 중재법 제12조에서 정한 바에 따라, 당사자들은 ⅰ) 먼저 합의를 통해 중재인을 정하고(중재법 제12조 제2항), ⅱ) 그 합의가 결렬될 시 법원에 중재인선정을 신청할 수 있다(같은 조 제3항). 물론, 당사자들이 중재절차(중재인선정 방식 포함)에 관하여 별도로 합의하여 둔 경우에는 그 합의가 우선된다(중재법 제20조).
⑵ 따라서 가령 기관중재[institutional arbitration. 당사자 간에 특정 상설기관에서 중재하기로 이미 합의하여 둔 경우를 말하는데, 그 상설기관(가령, 대한상사중재원, ICC, LCIA, SIAC, HKIAC)에서 정한 절차규칙이 적용된다]의 경우는 당사자들이 해당 중재기관의 절차를 따르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의제되므로, 중재기관 자체의 중재규칙(가령,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규칙)에 따라 중재인선정 절차가 진행된다.
⑶ 반면에 이 사건과 같은 임시중재(ad hoc arbitration)에서는 당사자 간에 중재절차에 관한 사전 합의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이때는 중재법 제12조가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임시중재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들 간에 별도로 중재절차를 합의하여 둘 수도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그와 같은 합의된 내용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중재법은 원칙적으로 중재지가 한국인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므로(중재법 제2조 제1항), 중재지가 한국 외의 곳인 경우에는 중재법 제12조가 적용되지 않음에 유의해야 한다.
나.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한 특별항고는 허용됨
⑴ 중재인선정 사건은 ‘비송’ 사건이므로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비송사건절차법 제20조에 따라 원칙적으로 통상항고가 가능하지만(대법원 2009. 4. 15. 자 2007그154 결정), 중재법 제12조 제5항은 불복을 불허하고 있으므로 통상항고를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으로서 기능한다.
● 중재법 제12조(중재인의 선정)
⑤ 제3항 및 제4항에 따른 법원 또는 그 법원이 지정한 중재기관의 결정에 대하여는 불복할 수 없다.
⑵ 그런데 중재법 제12조 제5항에서 항고를 금지하는 “제3항, 제4항의 규정에 의한 법원의 결정”이라 함은 법원의 중재인선정 결정만을 가리키고 법원의 중재인선정 신청 기각결정은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므로, 법원의 중재인선정 신청 기각결정에 대하여 불복하려는 신청인은 비송사건절차법 제20조 제1항에 의하여 항고를 할 수 있다(위 대법원 2007그154 결정. 위 사건은 ‘통상항고’가 가능함에도 특별항고로 대법원에 이송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보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송한다는 결정을 한 사안이다).
⑶ 한편 대법원 2011. 6. 22. 자 2011그82 결정은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해서는 특별항고가 허용된다고 직접 판시하였다(= 중재법 제12조 제5항이 적용되어 통상항고는 불가능하지만 특별항고는 가능하다는 취지. 다만 그 특별항고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하였음).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8. 중재판정부의 권한심사 원칙(Kompetenz-Kompetenz)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김영석 P.624-645 참조]
가. 도입배경
⑴ 중재절차에서 당사자들이 중재합의의 유무 등을 이유로 중재판정부의 권한을 다툴 경우, 중재판정부가 중재절차를 중지하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나중에 중재판정부의 권한이 부정될 위험이 있음에도 그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중재절차를 진행해야 하는지가 문제 된다.
⑵ 이에 대해 종래 불필요한 중재절차의 진행에 따른 시간/비용의 낭비를 막기 위해 법원이 조기에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1설)와 당사자가 중재절차 지연을 위해 법원의 심사 제도를 남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원의 심사는 중재판정이 이루어진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견해(2설)가 대립하여 왔는데, UNCITRAL은 논의 끝에 모델법 제16조를 통해 Kompetenz-Kompetenz 원칙을 확립하여 아래와 같은 절충안을 확립하였다.
나. 주요내용
⑴ Kompetenz-Kompetenz 원칙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는 2설에 기초하고 있는데, 중재판정부의 권한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중재판정부에 먼저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즉, 중재판정부가 먼저 스스로 자신에게 권한이 있는지[중재합의의 존부 및 유효성에 관한 판단 포함(the existence or validity of the arbitration agreement)]를 판단하고, 법원은 이후 그에 대해 사후 심사만 할 수 있다.
⑵ 다만 이와 같이 중재판정부가 선결문제(preliminary question)로 먼저 권한 유무를 판단한 경우에는 법원이 (중재판정이 내려질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중재절차 진행 중에도 사후 심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2설과 차이가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중재판정부가 중재판정을 내리면서 비로소 권한심사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경우
➠ 법원은 중재판정취소소송/중재판정의 승인․집행소송 단계에서 비로소 권한심사에 대해 판단할 수밖에 없음(☜ 기존 2설의 입장)
② 다만 중재판정부가 중재판정을 내리기 전에 선결문제(preliminary question)로서 해당 쟁점을 판단하는 경우
➠ 법원은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중재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권한심사 유무에 관한 판단을 할 수 있음(☜ 절충적인 방법 추가)
다. 우리 중재법의 태도
⑴ 우리나라 중재법 제17조도 마찬가지로 위 원칙을 수용하였고, 대법원은 2004. 6. 25. 선고 2003다5634 판결에서 위 원칙을 명확히 판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중재합의의 존부에 관한 법원의 심사는 ① 중재판정부의 선결판정에 대한 심사재판(제17조 제6항), ② 중재판정 이후 그에 대한 취소재판, ③ 중재판정 이후 그에 대한 승인․집행재판과 같은 3가지의 절차에서만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위 대법원 2003다5634 판결은 중재합의 없이 중재절차가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위 3가지 방법(①, ②, ③) 외의 방법으로 중재절차에 대해 사법적 통제를 할 수는 없으므로 당사자 일방이 제기한 중재절차위법확인청구의 소는 부적법하다고 본 원심을 수긍한 사례이다].
⑵ 위 판결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 중재합의 없이 중재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중재법이 인정하고 있는 사법적 통제는 ①… 중재법 제17조 제6항에 의하여 … 법원이 이에 따라 중재판정부의 권한을 심사함으로써 하는 방법(☜ 권한심사재판)과, ② … 중재법 제36조에 의하여 … 중재판정취소의 소에서 중재합의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심리하는 방법, ③ … 중재법 제37조에 따라 중재판정에 대한 승인 또는 집행판결을 신청하는 경우 그 소송절차에서 중재합의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심리하는 방법 등 3가지가 있는데, … 중재법 제6조는 “법원은 이 법이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관한 사항에 관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법원이 중재활동에 개입할 수 있는 범위를 ‘이 법이 정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중재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중재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위 3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원은 중재절차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할 수 없다고 할 것인바 …』
⑶ 즉, 중재합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중재판정부가 선결판정 내지 중재판정을 통해 먼저 하고 법원은 그 이후에 비로소 그에 대한 사후심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재인선정 단계에서 중재합의 유무에 관한 판단을 법원이 선제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면 ⅰ) 이는 중재판정부가 구성되기도 전에 법원이 선제적으로, ⅱ) 그것도 위 대법원 2003다5634 판결에서 허용한 3가지 외의 방법을 허용하는 셈이어서 기존 법리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
앞서 본 논의에 따라 당사자 일방이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거나 무효라면서 중재판정부에 권한이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를 상정해 본 우리 중재법상의 흐름은 아래와 같다(특정중재기관이 지정되지 않은 임시중재 기준).
9.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해 허용되는 특별항고 사유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김영석 P.624-645 참조]
가. 특별항고 사유 일반론
⑴ 특별항고는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위반이 있거나 재판의 전제가 된 명령․규칙․처분의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반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때에만 가능하다(민사소송법 제449조). 참고로 이와 같이 특별항고 이유를 제한하는 민사소송법 제449조 제1항이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문제 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입법자가 그 재량의 범위 내에서 정당하게 규정한 조항이라면서 헌법소원청구를 기각하였다(헌재 2007. 11. 29. 선고 2005헌바12 전원재판부 결정).
⑵ 구체적으로 ① 헌법 위반은 특별항고 사유가 되지만(대법원 2004. 6. 25. 자 2003그136 결정 등. 가령, 재판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할 기회를 전혀 부여받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이 내려진 정도로 적법절차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 제27조에 따른 권리를 침해받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② 법률 위반[대법원 2008. 1. 24. 자 2007그18 결정 등. 구 민사소송법(2002. 1. 26. 법률 제66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20조 제1항은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반이 있는 때’로 특별항고 사유를 널리 인정하고 있었으나 ➠ 재판지연을 위한 수단으로 특별항고가 남용되자 ➠ 법률개정을 통해 특별항고 사유를 현행법과 같이 제한하였다)과 ③ 대법원 판례 위반(대법원 2014. 5. 26. 자 2014그502 결정 등)은 특별항고 사유가 되지 못한다.
나. 중재인선정에 관한 대법원 선례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한 특별항고에서도 특별항고 사유를 위와 달리 볼 이유는 없다. 대법원 2011그82 결정(=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한 특별항고 사건)도 같은 취지에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ⅰ) 실체법상의 권리 존부뿐만 아니라, ⅱ) 중재신청의 적법 여부(= 유효한 중재합의의 존부)도 중재인선정 재판에서 고려대상이 아니고, 특별항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하였다.
『중재법 제12조 제5항에 따르면 같은 조 제3항 및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법원이 중재인을 선정한 결정에 대하여는 항고할 수 없으므로, 원심의 중재인선정 결정에 불복하여 제기한 이 사건은 특별항고로 보아 처리한다. 민사소송법 제449조 제1항에 의하면, 특별항고는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위반이 있거나 재판의 전제가 된 명령․규칙․처분의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하다는 것을 이유로 한 때에만 제기할 수 있는데, 특별항고인의 원심결정에 대한 불복이유는 중재인의 판단대상이 될 중재신청의 적법 여부나 실체법상의 권리 존부에 관한 주장에 불과하여 위 민사소송법 제449조 제1항에서 정한 특별항고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특별항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다. 상정 가능한 중재인선정 재판의 심리 범위
⑴ 기존의 논의
이에 관하여 구체적 기준을 설시한 선례는 없지만, 대법원 2009. 10. 14. 자 2009마1395 결정의 “분쟁이 중재합의의 대상에 포함되는 분쟁으로서 중재인선정에 필요한 절차적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바로 중재인을 선정하여야 할 것이고, 분쟁의 내용까지 심리하여 분쟁당사자인 신청인이 주장하는 이행청구권이 없다는 이유로 중재인선정 신청을 기각할 수는 없다.”라는 판시 부분을 참조할 만하다.
위 대법원 2009마1395 결정(= 중재인선정 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통상항고로서 재항고한 사건)은 절차적 요건이 구비되어 있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먼저 중재인을 선정하고, 실체적 권리관계 유무는 이후 구성되는 중재판정부의 판단을 먼저 받으라는 취지인데, 앞서 본 대법원 2011그82 결정과 마찬가지로 중재신청의 적법 여부에 대해 법원이 적어도 중재인선정 재판 단계에서는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후술하는 Kompetenz-Kompetenz 원칙을 받아들인 우리나라 중재법의 체계에 부합하는 타당한 판단이다.
중재인선정 신청 사건에서 심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는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한 특별항고심에서도 당연히 특별항고 사유가 되지 못할 것이므로, 중재인선정 신청 사건에서의 기각사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그러나 중재법의 문언과 그 내용 및 체계에 비추어 보면 아래와 같은 정도의 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중재법 제12조 제2항의 문언에 비추어 중재인선정에 관한 당사자 간의 사전합의절차가 아예 진행되지 않았던 경우이다. 당사자 간에 협의를 진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즉시 법원에 중재인선임이 신청된 경우까지 법원이 무조건 중재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외관상 유효한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음이 명백한 경우도 기각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 중재합의가 서면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고 그와 같이 간주할 수도 없어 중재법 제8조 제2항, 제3항에 따른 서면방식을 구비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까지 법원이 중재인선정을 해주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⑵ 검토
앞서 본 논의들을 모두 정리하여 중재인선정 재판의 심리․검토 대상 및 그에 대한 특별항고 사유에의 해당 여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0. 특별항고 기각 시 후속재판과의 관계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김영석 P.624-645 참조]
가. 문제 제기
특별항고를 기각하여 중재인선정 결정이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 후속절차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중재인선정은 비송사건으로서 대립당사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변론”에 비해 증거조사가 제한된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향후 “변론”으로 진행되어 보다 충실한 심리를 거칠 것으로 보이는 후속소송(= 가령, 중재판정취소소송 내지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소송)에서 동일 쟁점에 대한 판단을 구속하거나 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특별항고 사유를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는 입론을 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나. 결정의 형식으로 내려지는 비송재판 일반의 효력
⑴ 결정․명령의 기판력 일반
결정․명령재판도 실체관계를 종국적으로 판단하는 내용인 것인 경우에는 기판력을 가지는데(대법원 2002. 9. 23. 자 2000마5257 결정), 기판력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⑵ 비송재판의 기판력 일반
① 그렇다면 결정 등으로 내려지는 비송재판에 대해서도 동일한 법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 위와 같은 쟁점을 정면으로 판시한 선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다수설은 기판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비송사건에 대한 재판의 경우 형성력은 생기나 원칙적으로는 기판력이 생긴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뒤에 이를 변경할 수 있게 된다.
② 비송사건은 대립당사자 구조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제한된 증거조사를 통해서 재판이 내려지는 점을 고려하면, 비송재판에 기판력을 부여하는 것은 조심스러우므로 원칙적으로는 부정설이 타당하다. 다만 비송재판에 대해 그 어떤 예외도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할 여지도 있다. 가령, 실체적 법률관계에 관한 판단을 전면적으로 심판대상으로 삼고 있는 유형의 재판이고, 이를 위해 해당 재판부도 심문기일을 지정하고 당사자들에게 출석기회를 부여하고 있으며, 당사자들도 법률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부여받은 경우에는 해당 재판에 기판력을 허용하는 것이 다른 법령과의 체계에 비추어 조화로운 해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개별적으로 살펴본다.
다. 중재인선정 결정의 효력에 대한 구체적 검토
⑴ 중재인선정 부분
① 중재인선정 결정은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 형성력(재판의 내용대로 새로운 법률관계의 발생이나 종래의 법률관계의 변경․소멸을 낳는 효력을 말한다)을 가지는 재판이므로 전형적인 비송의 실질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비송재판 일반에 대한 통설처럼 기판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결정의 형식으로 내려지더라도 실체관계를 종국적으로 판단하는 내용이라면 기판력을 인정할 수 있으나(대법원 2000마5257 결정), 중재판정부 구성은 소송지휘의 실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체관계를 다루는 재판으로 볼 수 없다.
② 다만 기판력은 없더라도 법원이 중재인을 선정하는 경우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선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이후 당사자 일방이 “중재판정부의 구성이 임의로 편파적으로 이루어졌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이유로 중재판정취소소송을 제기하거나 승인․집행소송의 거부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중재법 제36조 제2항 제1호 (라)목, 제38조 제1호 (가)목].
⑵ 중재합의의 존부와 유효성
① 중재인선정 재판에서 절차적 요건의 준수만을 검토하여 그 당부를 판단하고 중재합의 존부와 유효성과 같은 실체적 쟁점은 심리되지 않는다면, 중재합의의 유무에 관한 실체적 판단은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기판력이 발생할 여지 자체가 없게 된다.
② 그런데 독일과 영국도 중재인선정 과정에서 이루어진 중재합의 유무에 관한 선결적 판단은 후속절차의 동일 쟁점에 관한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재합의의 존부와 유효성이 중재인선정 재판의 심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라. 결론 (= 중재인선정 재판 v. 중재판정부 권한심사 재판)
⑴ 중재인선정 재판은 후속재판(권한심사재판, 중재판정취소재판, 중재판정의 승인․집행재판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 형성력만을 가진 전형적인 비송재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판단의 전제로서 중재합의의 유무가 검토되기는 하지만 그 판단 범위는 절차적 요건 충족 여부(= 서면요건 충족 여부, 사전협의절차 유무)에 국한되므로, 중재합의의 존부 또는 유효성에 관한 실체 판단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⑵ 반면에 중재판정부 권한심사재판(중재법 제17조 제6항)은 중재합의의 존부 또는 유효성에 대해 직접 판단하는 것이므로(해당 쟁점에 대한 중재판정부의 선결판정을 사후심사) 후속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권한심사재판에서 중재합의가 유효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면 중재판정이 내려진 이후 그 취소재판이나 승인․집행재판에서는 동일 쟁점(중재합의의 유효성)을 다시 다투지 못하도록 보아야 한다.
마. 중재인선정재판(중재법 제12조 제3항)의 심리대상 및 중재인선정결정에 대한 특별항고사유의 범위(대법원 2022. 12. 29.자 2020그633 결정)
⑴ 위 판결의 쟁점은, 중재합의 존부가 중재인선정 신청사건(중재법 제12조 제3항)의 심리대상에 해당하는지 및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한 특별항고 사유에 해당하는지(소극) 여부이다.
⑵ 중재는 당사자 간의 합의로 재산권상의 분쟁 및 당사자가 화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 비재산권상의 분쟁을 법원의 재판에 의하지 아니하고 중재인의 판정에 의하여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중재법 제3조 제1호). 중재절차에서는 당사자의 자치가 존중되어야 하므로 법원의 관여는 중재법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중재법 제6조). 이에 따라 중재인선정도 먼저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여야 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만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중재인을 선정할 수 있다(중재법 제12조 제2항, 제3항). 또한, 중재법은 당사자들 사이에 중재합의의 존부 또는 유효성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에도 우선 중재판정부를 구성하여 그로 하여금 선결문제로서 결정하거나 본안에 관한 중재판정에서 함께 판단하도록 하고, 법원은 그 이후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대한 심사재판이나 중재판정의 취소재판 내지 승인․집행재판을 통해 사법심사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중재법 제17조, 제36조, 제37조, 제38조).
⑶ 한편, 중재법은 중재절차를 통한 분쟁해결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중재법 제1조), 이를 위해 중재인선정 신청, 중재인이나 감정인에 대한 기피 신청, 권한심사 신청, 권한종료 신청 등에 따른 법원의 재판에 불복이나 항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중재법 제12조, 제13조, 제14조, 제15조, 제17조, 제27조). 그중에서도 법원의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해 당사자들이 불복할 수 없도록 하는 것(중재법 제12조 제5항)은 중재판정부를 신속히 구성하여 중재절차를 원활하게 진행시킬 필요가 있음에도 중재인선정 단계에서부터 그 선정결정에 대한 불복으로 인하여 중재절차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대법원 2011. 6. 22.자 2007그154 결정 등 참조).
⑷ 이와 같은 중재법의 내용, 목적 및 그 취지 등에서 알 수 있는 자율성, 신속성 등 중재절차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중재법 제12조 제3항에 의한 중재인선정 신청이 있는 경우, 중재법 제8조가 정하는 중재합의의 방식을 따르지 않아 외관상 유효한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거나 중재법 제12조 제2항에 의한 중재인선정에 관한 합의절차가 사전에 진행되지 않은 경우 등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으로서는 바로 중재인을 선정해야 하고, 중재신청의 적법 여부까지 중재판정부에 앞서 심리하여 그 결과에 따라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를 이유로 중재인선정 신청을 기각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9. 10. 14.자 2009마1395 결정, 대법원 2011. 6. 22.자 2011그82 결정 등 참조). 따라서 중재법 제12조 제3항에 의한 중재인선정 신청 사건에서 중재합의의 존부와 유효성과 같이 심리대상이 되지 않는 사유는 법원의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한 특별항고 사건에서도 민사소송법 제449조 제1항에서 정한 특별항고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⑸ 이 사건 화물 운송 중 발생한 사고에 관하여 피보험자(수하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이 사건 선하증권을 교부받은 신청인(수하인의 적하보험자)이 위 선하증권에 편입된 용선계약상의 중재조항을 근거로 피신청인(운송인)에게 중재절차의 개시를 요구하였으나 피신청인은 중재합의의 부존재를 주장하면서 중재인선정에 합의하지 않았고, 이에 신청인은 법원에 중재인선정을 신청하여 그 중재인선정 결정을 받았는데(중재법 제12조 제3항),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해 불복이 허용되지 않자(중재법 제12조 제5항), 피신청인이 위 중재인선정 결정에 대해 특별항고를 하면서 그 사유로 중재합의의 부존재를 주장한 사안이다.
⑹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설시한 후, 중재합의의 존부를 다투는 이 사건 피신청인(특별항고인)의 주장은 특별항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달리 이 사건에서 외관상 유효한 중재합의가 존재하지 않거나 당사자 간에 중재인선정에 관한 합의절차가 사전에 진행되지 않았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다고 보아, 특별항고를 기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