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호암미술관을 가다.】《김환기 화백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장마철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면, 어딘가 호젓한 곳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화창한 날도 좋지만, 비가 오는 날은 왠지 모르게 운치가 있다.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신다.
내 마음도 촉촉하게 젖어든다.
이런 날씨에는 왠지 기분이 멜랑꼴리(mélancolie)해지면서 야외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잔하고 싶어진다.
잔뜩 낀 먹구름의 하늘을 바라보면, 무언가 신비롭고 오묘하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환기 화백(1913-1974)의 회고전을 찾았다.
비가 와서 인지 고속도로가 한적하다.
서울에서 40분만에 도착했다.
우리나라가 빈곤하게 살던 1950년대에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기만하다.
그 당시 어떻게 이런 색깔을 만들었는지 색채가 너무 아름답다.
부인은 김향안(본명 변동림 1918-2004)인데, 이상과 결혼하였다가 사별한 후 김환기와 재혼하여 그의 예술적 동지가 되었다.
김환기 화백의 천재성도 놀랍지만, 그 당시로서는 훤필한 키에 필체 역시 아주 예쁘다.
화가 이중섭이나 건축가 김중업도 큰 키에 필체가 너무 아름다워 감동한 적이 있는데, 김환기 화백을 보니 이런 것들이 천재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아닌가 싶다.
김환기 화가의 작품은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개인 소장품을 이렇게 한 곳에 모아 전시하니, 눈이 호강할 최고의 기회다.
외국의 미술관에서 피카소나 고흐, 세잔느 등의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 이상의 깊은 감동이 몰려 온다.
작품이 너무 아름다워서, 전시된 모든 작품을 하나도 빠짐 없이 사진에 담았다.
멋진 작품들을 눈에 고이 담아 기억하고 싶어 2층 갤러리를 3번 반복해서 돌았다.
호암미술관 앞 정원을 둘러 본 후 막국수를 먹었다.
비오는 날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지 않을 수 없다.
수육 한 접시를 곁들였는데, 맛이 최고다.
근처 카페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도 한잔했다.
사장님이 갓구운 쿠키를 같이 내놓으신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건다.
그 감동과 여운이 여전하다.
비오는 날 아름다운 그림과 대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