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you weep alone).》〔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연민 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
그녀도 그랬다.
누군가 마음이 힘들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함께 산을 오르던 날도, 일행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힘겨운 인생 이야기를 꺼냈다.
정상에 도달하고, 내려오는 길까지도
그녀는 그 사람의 고통과 함께 내려왔다.
산의 풍경보다, 더 무거운 감정의 파도 속에서.
연민은 인간을 이어주는 힘이다.
고통에 대한 공감은 때로 세상을 구원하는 첫걸음이 된다.
하지만 그 연민이, 때로는 나 자신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그녀는 타인의 분노, 절망, 슬픔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자신의 빛나는 기질, 호기심, 활력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정서적으로 고갈되어 갔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라고 부른다.
<엘라 휠러 윌콕스의 이야기>
미국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는 어느 날 주지사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그녀는 한 여인과 마주 앉게 되었다.
그 여인은 줄곧 울었다.
윌콕스는 그녀의 슬픔에 조용히 함께했고, 취임식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도 우울에 잠겨 있었다.
거울 속에는 자신이 아닌, 방금 전까지 눈물 흘리던 여인의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유명한 시 한 편을 썼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슬프고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
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시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꿰뚫는다.
사람들은 웃는 이에게 끌리고, 울고 있는 이에게는 등을 돌리기도 한다.
남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슬픔을 나누는 방식>
어느 딸이 결혼 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댁과 함께 살게 되었다.
삶은 고달팠고, 그녀는 말 못 할 고통을 안고 있었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그녀를 보러 왔다.
딸의 낯빛이 너무 어두워,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숲길 끝,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이 나무에게 네 슬픔을 말해 보렴.”
그렇게 딸은 매주 그 나무에게 마음속 고통을 털어놓았다.
몇 달이 지난 후, 어머니는 다시 딸을 찾았고 그녀의 얼굴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생활이 나아진 거니?”
“아뇨, 아무것도 바뀐 건 없어요. 그런데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그들이 함께 다시 찾은 나무는
잎이 시들고 가지가 말라 있었다.
딸의 슬픔을 너무 많이 받아준 탓이었다.
<우리는 어디에 슬픔을 놓아야 할까?>
만약 그녀가 슬픔 대신, 그 나무에 앉은 새들과 함께 노래했더라면 어땠을까?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을 따라 함께 춤추었다면?
연민은 고통에 기울어지는 마음이지만,
연민 피로는 그 고통에 스스로 잠식되는 상태다.
우리는 공감하면서도 휘말리지 않는 법,
슬픔을 품되,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돌봄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니 때로는, 웃자.
내가 웃을 수 있을 때 세상도 함께 웃어준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전에 내 마음의 여백이 남아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웃자.
그 웃음이 누군가에겐
아주 멀리 있는 빛처럼 다가갈 수도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