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공평한가.】《“그래도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위기에 처한 뱀>
어느 늦은 오후, 농부는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둑한 길가에서 낮고 떨리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사… 살려 주세요…”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걸음을 떼니, 이번엔 분명히 들렸다.
그제야 농부는 큰 돌 아래 깔린 채 꼼짝도 못하는 한 마리의 뱀을 발견했다.
이미 탈진한 듯 지쳐 있었고, 공포에 떨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농부는 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돌을 치워 주었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외면하기엔, 그의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돌이 치워지는 순간 뱀은 재빨리 기어나오며 말했다.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농부는 손을 털며 웃었다.
“말은 왜.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지.”
그런데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뱀이 그의 목을 휘감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요. 당신을 먹어야겠어요.”
농부는 멈칫했다.
“아니, 내가 널 살려줬는데 나를 잡아먹겠다고? 그건 공평하지 않잖아.”
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삶은 원래 불공평해요. 당신도 오래 살아봤으면 알 텐데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
뱀은 마지막 양심을 내세워 제안을 했다.
“좋아요. 세 동물에게 물어보죠. 한 마리라도 삶이 공평하다고 하면 당신을 놓아드릴게요.”
그렇게 농부는 뱀에게 목이 감긴 채 들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암소의 대답>
“삶이 공평하냐고?”
암소는 꺼억거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풀을 먹이고 따뜻한 마굿간도 주지. 하지만 나는 매일 우유를 주잖아. 그리고 늙어서 우유가 안 나오면… 날 잡아먹을 거야. 삶은 공평하지 않아.”
농부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닭의 대답>
닭도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지켜주고 모이도 줘. 하지만 나는 매일 달걀을 내잖아. 그러다가 언젠가 큰 잔칫날이 오면… 내 목부터 날아갈 거야. 삶이 공평하냐고? 글쎄… 난 그렇게는 못 말하겠네.”
농부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다.
<마지막 동물, 당나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농부는 들판 너머에서 당나귀를 찾았다.
상황을 들은 당나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삶이 공평한지 아닌지…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그러셨어. ‘삶이 공평하든 아니든, 넌 춤을 출 수 있단다.’”
농부도, 뱀도 동시에 되물었다.
“춤을 춘다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나귀가 엉거주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암소도 엉덩이를 들썩였고, 닭도 한쪽 다리를 들고 깝죽거리며 춤을 췄다.
농부도 웃음이 터져 춤을 췄고, 결국 뱀마저 혀를 날름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농부는 재빨리 몸을 빼고 도망쳤다.
달아나며 그는 옆에서 뛰어오는 당나귀에게 외쳤다.
“네 말이 맞아! 삶이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어!”
<삶이 공평하냐는 물음 앞에서>
"삶은 공평한가요?" 선의를 베풀고도 차가운 배신이 돌아올 때, 아무리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는 돌에 깔린 뱀을 구해준 농부의 심정이 되곤 한다.
우리는 답을 찾아 헤맨다. 암소와 닭이 말한다. "삶은 공평하지 않아."
현실을 직시하는 이성적인 대답들은, 우리 목을 감은 뱀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절망은 더 깊어지고, 희망은 희미해진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가 없잖아'라는 농부의 탄식처럼, 삶의 불공평함은 종종 우리의 발을 무겁게 묶어 버린다.
바로 그때, 마지막으로 만난 당나귀가 뜻밖의 이야기를 건넨다.
"삶이 공평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엄마가 그랬어.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그것에 상관없이 넌 춤을 출 수 있다고."
'춤을 춘다고?'
이 얼마나 엉뚱하고 비논리적인 대답인가.
삶의 공평성을 따지는 진지한 질문 앞에서, 춤이라니.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가장 중요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당나귀는 '공평함'이라는 질문의 덫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
삶이 공평해야만 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않은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기뻐할 수 있으며,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를 옭아매는 것은 '삶은 불공평하다'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은 반드시 공평해야만 한다'는 우리의 완고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오늘 문득 삶이 버겁고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면, 소와 닭에게 답을 구하는 대신, 당나귀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저 엉거주춤, 나만의 춤을 추어보는 거다.
그래, 당나귀의 말이 맞다.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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