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보다 ‘가벼운 산책’이 더 힘든 이유.】《이제는 안다.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힘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가볍게 안고 걷는 힘이 어쩌면 더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는 것을.》〔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일주일에 세 번, 나는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휘트니스 센터의 공기 속으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중량은 결코 가볍지 않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는 비명 지르듯 떨린다. 마지막 한 번을 들어 올리는 찰나, 세상이 하얗게 점멸하며 눈이 감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은 견딜 만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일종의 희열마저 느낀다.
반면, 매일 점심 식사 후 30분 걷기는 다르다.
속도를 높이지도,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쉬지 않고 걸을 뿐이다.
고작 30분인데도 시간은 더디고, 마음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언제 끝나지.’
몸이 힘든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지루한 것인지 나도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50분의 지독한 PT를 마친 후엔 몸에 기분 좋은 발동이 걸린다. 오히려 더 움직이고 싶어 30-40분을 추가로 운동하곤 한다.
하지만 30분의 걷기가 끝나면 나는 도망치듯 골목 안 단골 카페로 숨어든다. 커피 한 잔에 기대어 서둘러 휴식을 취해야만 비로소 그 ‘귀찮음’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무거운 중량은 견디면서 가벼운 산책은 왜 이렇게 버겁게 느껴질까.
PT는 매 세트마다 나를 시험하는 명확한 미션을 던져준다. 뇌는 생존과 수행을 위해 풀가동되며 ‘몰입(Flow)’이라는 마법에 빠진다. 그때의 50분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질 때의 서늘한 쾌감과 정복감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것은 고통마저 유희가 되는 밀도 높은 시간이다.
그러나 식후의 걷기에는 정복해야 할 대상도, 폭발적인 분출구도 없다. 뇌가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는 ‘유휴 상태’가 되면, 그 빈틈으로 지루함이 스며든다. 뇌는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고, 가벼운 운동화는 어느새 쇳덩이보다 무겁게 발목을 잡아끈다. 스스로 선택한 고통은 즐길 수 있지만, 건강을 위해 강요된 평온함은 일종의 구속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건 평온한 산책이 아니라, 한계를 깨부수는 거친 숨소리다.
그렇다면 결국 걸을 때도 몰입과 동기 부여가 필요할 텐데,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의 삶, 특히 노년의 삶도 이와 닮아있지 않을까.
치열한 전투는 잦아들고, 결정적인 승부의 순간도 줄어든 채 하루는 비교적 고요하게 흐른다.
하지만 바로 그 평온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지루함의 얼굴로 찾아오기도 한다.
화려한 승리보다 단조로운 지속이 더 위대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이제는 안다.
한계에 도전하며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힘보다
아무 일 없는 듯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힘, 그 지루함을 가볍게 안고 걷는 힘이 어쩌면 더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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