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장모님과 단둘만의 여행.】《어긋난 일정이지만, 인생은 항상 또 다른 길을 열어준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6. 4. 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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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sWpLhSdQt8

 

 

 

 

 

장모님과 단둘만의 여행.】《어긋난 일정이지만, 인생은 항상 또 다른 길을 열어준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마흔 무렵의 나는 공무원 시절부터 장인, 장모님의 손을 잡고 참 부지런히도 세상을 유람했다.

중국, 캄보디아, 태국, 마카오 등은 물론 일본의 골목부터 이집트 고대 신비까지.

그런데 장모님의 연세가 깊어지고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짐에 따라 두 달에 한 번 꼴로 식사를 모시거나, 연극과 뮤지컬 공연 등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를 통해 전해 들은 장모님의 수줍은 고백 하나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다른 사람 말고, 그저 사위하고만 단둘이 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구나.“

 

아흔을 바라보는 장모님의 그 한마디는 단순한 여행 제안이 아닌, 생의 끝자락에서 남기고픈 소중한 유언 같은 소망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예산에 있는, 교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친구에게 연락해 동선을 짜고, 맛집을 예약하고, 아름다운 4월의 예산을 보여드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여행 당일인 주말 새벽 6.

가방을 챙기던 내게 아내가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장인어른이 못가시게 막아 말다툼 끝에 장모님이 끝내 집을 나서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87세 장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귀한 기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아쉬움의 무게가 어깨를 눌렀지만, 나를 위해 정성껏 자리를 마련한 예산 친구와의 신의를 저버릴 순 없었다.

부랴부랴 오전 650분에 친구 둘에게 전화를 돌려, 오전 820분에 우리 집 근처에 3명이 한 차를 타고 예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예산의 봄은 미안할 정도로 눈부셨다.

호수 위에 고고하게 선 버드나무는 연둣빛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들은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일제히 꽃눈을 뿌려대고 있었다.

고즈넉한 한옥의 기와 위로 내려앉은 봄볕과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 그리고 정자 너머로 펼쳐진 푸른 물결까지.

예산이 이토록 깊고 서정적인 멋을 품은 곳인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비록 내 곁에 장모님의 따스한 손길 대신 껄껄대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채워졌지만, 흐드러진 4월의 정취 속에 아쉬움은 어느새 담담한 위로로 변해갔다.

장모님과 함께였다면 이 꽃길을 걸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마도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자네 덕에 호강하네"라고 웃으셨을 그 인자한 얼굴이 자꾸만 벚꽃 잎 위로 겹쳐 보였다.

 

장모님과 단둘만의 여행 기회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장모님과 함께 걷는 예산의 봄길 하나가 예쁘게 닦여 있다.

눈앞의 경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마음이 맞는 이들과 나누는 온기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나는 그날의 눈부신 풍경을 사진 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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