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장기소멸시효>】《성범죄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이 나타난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97137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판시사항】
[1]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의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서 정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 및 ‘객관적ㆍ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관한 증명책임의 소재(=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
[2]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나타난 경우,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함에 있어서 법원이 고려할 사항
[3] 갑이 초등학교 재학 중 테니스 코치 을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는데, 약 15년 후 갑이 을과 우연히 마주쳤고 성폭력 피해 기억이 떠오르는 충격을 받아 3일간의 기억을 잃고 빈번한 악몽, 불안, 분노 등을 겪으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게 되어, 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갑이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때 비로소 불법행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이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위와 같은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ㆍ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하고, 그 발생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2] 성범죄 피해의 영향은 피해자의 나이, 환경, 피해 정도, 가해자와의 관계, 피해자의 개인적인 성향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그 양상, 강도가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범죄, 전쟁, 자연재해 등 심각한 외상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병리학적 반응으로서, 보통 외상 후 짧게는 1주에서 3개월 이내에 증상이 시작되지만 길게는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30년이 걸리기도 하며, 진단기준 이하로 관해(관해)되었던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증상들이 사건 직후에 발생하더라도 외상 사건으로부터 적어도 6개월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증상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와 친족관계를 비롯한 피보호관계에 있었던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인지적ㆍ심리적ㆍ관계적 특성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 법원은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기 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3] 갑이 초등학교 재학 중 테니스 코치 을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는데, 약 15년 후 갑이 을과 우연히 마주쳤고 성폭력 피해 기억이 떠오르는 충격을 받아 3일간의 기억을 잃고 빈번한 악몽, 불안, 분노 등을 겪으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게 되어, 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성폭행 당시 갑의 나이, 을과의 인적 관계, 갑이 성인이 되어 을을 우연히 만나기 전과 후에 겪은 정신적 고통의 현저한 차이 및 그에 따른 치료 여부나 경과 등에 비추어 보면, 갑이 성인이 되어 을을 우연히 만나기 전까지는 잠재적ㆍ부동적인 상태에 있었던 손해가 을을 만나 정신적 고통이 심화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음으로써 객관적ㆍ구체적으로 발생하여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갑이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때 비로소 불법행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이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사례.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가. 사실관계
⑴ 피고는 2001. 4. 9.부터 2002. 10. 1.까지 테니스 코치로 근무하였고, 원고는 당시 위 초등학교 재학생으로서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였다.
⑵ 피고는 2001. 7. 하순경부터 2002. 8. 초순경까지 사이에 4회에 걸쳐 원고를 강간하였다(‘이 사건 불법행위’, 당시 원고의 나이는 만 10세 가량).
⑶ 그로부터 약 14년~15년이 지나, 원고는 2016. 5.경 테니스대회에서 우연히 피고와 마주친 후 성폭력 피해 기억이 떠오르는 충격을 받아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심리치료를 받던 중 2016. 6. 7.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다. 원고는 2016. 6. 7. 이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은 사실이 없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범죄, 전쟁, 자연재해 등 심각한 외상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병리학적 반응으로서, 보통 외상 후 짧게는 1주에서 3개월 이내에 증상이 시작되지만 길게는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30년이 걸리기도 하며, 진단기준 이하로 관해되었던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증상들이 사건 직후에 발생하더라도 외상 사건으로부터 적어도 6개월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⑷ 피고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2016년경 원고를 8개월 이상 치료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한 정신과 전문의는 위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초등학교 때 피부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하였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이 사건 범행과 연관된 악몽을 계속 꾸었음을 보고하였으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 분노 등 주관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음에 비추어 성폭행 범행일 무렵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또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보는 등 자극을 받아 다시 나타날 수도 있고 그 경우에도 원인은 최초에 겪었던 외상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증언하였다.
원고를 상담하였던 다른 정신과 전문의는 위 형사재판에서 ‘과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후 현재까지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데, 2016년 가해자와 조우하면서 정신적 증상과 고통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⑸ 원고는 2018. 6. 5. 피고에게 이 사건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위자료)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⑹ 원심은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을 배척하였다(상고기각). 원심은 원고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2016. 6. 7.가 정신적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된다고 보았고, 그 근거로 이 사건 불법행위 당시 원고의 나이가 어렸던 점, 피고는 코치였고 원고는 초등학생인 교습생으로서 폭력적인 지도방식, 엄격한 규율, 합숙 등 고립된 훈련환경 등에 처하여 있었던 점, 피고를 2016. 5.경 대회에서 만난 후 정신적 증상과 고통이 급격하고 현저히 악화된 점, 원고가 정신과 진단ㆍ치료를 받은 것도 위 대회 이후가 처음인 점 등을 제시하였다.
나. 쟁점
이 사건의쟁점은,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위와 같은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ㆍ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인지(적극) 및 그 발생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는지(적극) 여부이다.
3. 소멸시효 제도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189-1191 참조]
가. 취지
⑴ 권리 위에 잠자는 자(권리 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
⑵ 증거의 산일(散逸)(증명곤란의 구제)
위 두 취지가 소멸시효에 관한 각종 법리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나. 분석적 방법
판례는 소멸시효의 판단에 있어 분석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⑴ 그 권리가 소멸시효에 걸리는지 여부
물권적 청구권은 해당없고, 채권적 청구권은 해당된다.
권리의 성질에 관한 것이다.
⑵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함(민법 제166조)
권리 행사에 ‘법률상의 장애가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할 수 있으면 진행한다.
⑶ 소멸시효 중단사유가 존재하지 여부(민법 제168조)
㈎ 권리 행사는 시효의 진행이 아닌 중단에 관한 것이다. 즉, 권리를 행사하면 시효가 중단된다.
㈏ 중단 사유는 ① 청구, ②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③ 승인 3가지이다.
판례는 위 세 가지 사유에 해당하거나, 이에 준할 때에만 시효중단사유로 인정해 왔다(제한적 열거)(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6629 판결).
◎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6629 판결 :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에서 정한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는 특정 목적물에 대한 구체적 집행행위나 보전처분의 실행을 내용으로 하는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과 달리 어디까지나 주택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취득하거나 이미 취득한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담보적 기능을 주목적으로 한다. 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차권등기명령의 신청에 대한 재판절차와 임차권등기명령의 집행 등에 관하여 민사집행법상 가압류에 관한 절차규정을 일부 준용하고 있지만, 이는 일방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심리·결정한 다음 등기를 촉탁하는 일련의 절차가 서로 비슷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 이를 이유로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가 본래의 담보적 기능을 넘어서 채무자의 일반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보전하기 위한 처분의 성질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에는 민법 제168조 제2호에서 정하는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 채권자가 시효중단 사유에 대하여 주장·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다. 관련 법리
⑴ 동시이행관계에 있어도 소멸시효는 진행함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의 매매대금채권과 매수인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더라도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가 없으면 시효가 진행하므로,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권리 중 매매대금채권만 소멸시효가 완성될 수도 있다(대법원 1991. 3. 22. 선고 90다9797 판결).
◎ 대법원 1991. 3. 22. 선고 90다9797 판결 : 부동산에 대한 매매대금 채권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과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고 할지라도 매도인은 매매대금의 지급기일 이후 언제라도 그 대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며, 다만 매수인은 매도인으로부터 그 이전등기에 관한 이행의 제공을 받기까지 그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데 지나지 아니하므로 매매대금 청구권은 그 지급기일 이후 시효의 진행에 걸린다.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채권적 청구권이므로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리지만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인 부동산을 인도받아 점유하고 있는 이상 매매대금의 지급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아니한다.
⑵ 일반적으로 점유는 시효의 진행을 방해하지 아니함
① 임대차 청약이 거절되어 임대인의 점포명도청구권과 임차인의 청약금반환채권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더라도 청약금반환채권은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다27314 판결).
◎ 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다27314 판결 : 점포임대차 청약금반환채권이 점포명도의무와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청약금반환의무자는 청약자로부터 점포명도의무의 이행제공을 받을 때까지 청약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데 지나지 아니하므로 청약금반환채권은 청약에 대한 거절이 확정된 때 이후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② 유치권의 행사(= 점유)는 소멸시효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민법 제326조).
⑶ 임차권등기를 하더라도 소멸시효가 중단되지 않음
임차권등기도 보증금 반환채권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겠지만, 판례는 임차권등기가 ‘압류, 가압류, 가처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시효가 중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6629 판결).
◎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7다226629 판결 :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등기에는 민법 제168조 제2호에서 정하는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판례는 채권자의 채권회수 노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시효중단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민법상 시효중단 사유(청구, 압류·가압류·가처분, 승인)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시효중단을 판단하여 왔다.
⑷ 단,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부동산매수인의 등기청구권은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지 아니함
①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부동산매수인의 등기청구권은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대법원 1976. 11. 6. 선고 76다148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1976. 11. 6. 선고 76다148 전원합의체 판결 : 매도인 명의로 잔존하고 있는 등기를 보호하기 보다는 매수인의 사용수익 상태를 더욱 보호하여야 할 것이며 만일 이러한 경우의 등기청구권도 다른 일반채권과 동일하게 소멸시효에 걸린다면 매도인의 등기이전의무가 소멸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매도하여 기히 매수인에게 인도까지 완료한 매매목적물이 매도인에게 환원되어야 하는 결과가 되어 비록 그 책임이 매수인의 등기청구권 행사의 태만에 있다고는 할지라도 우리나라 부동산 거래의 현 실정에 비추어 심히 불합리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부동산을 매수한 자가 그 목적물을 인도받은 경우에는 그 매수인의 등기청구권은 다른 채권과는 달리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② 의용민법은 의사주의를 취하고 등기를 대항요건으로 보았는데, 민법이 독일법을 따라 형식주의(등기가 소유권의 성립요건임)로 제도를 변경하였다.
그런데 민법 시행 이후에도 등기를 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위 전합판결은 앞서 본 판단기준 중 ①에 따라 점유하고 있는 매수인의 이전등기청구권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4. 시효소멸의 요건사실
가. 대여금채권의 시효소멸 요건사실
⑴ 대여금채권의 시효소멸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 대주가 특정시점에서 당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사실, ⓑ 그때로부터 소멸시효기간이 도과한 사실을 주장ㆍ증명하면 족하고, 원용권자가 상대방에게 시효원용의 의사표시를 한 사실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소멸시효에 관한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대법원 1978. 10. 10. 선고 78다910 판결, 대법원 1985. 5. 14. 선고 83누655 판결)].
다만, 시효소멸의 이익을 받을 자가 실제 소송에 있어서 그 이익을 받겠다는 항변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에 반하여 재판할 수 없음은 변론주의의 원칙상 당연하다(대법원 1979. 2. 13. 선고 78다2157 판결). 이러한 의미에서 시효소멸의 항변은 권리항변이라 할 수 있다.
⑵ ⓐ의 요건사실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사실로서 주요사실이므로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때를 기산점으로 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인정하게 되면 변론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 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35886 판결 에 의하면, 소멸시효의 기산일은 채무의 소멸이 라고 하는 법률효과 발생의 요건에 해당하는 소멸시효 기간 계산의 시발점으로서 소멸시효 항변의 법률요건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사실에 해당하므로 이는 변론주의의 적용 대상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⑵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라 함은 법률상의 장애가 없어진 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그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거나 알지 못함에 있어서 과실이 없다는 등의 사정은 시효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⑶ 또 법률상의 장애라고 하여도 권리자의 의사에 의하여 제거될 수 있는 경우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예컨대,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부착된 채권의 경우 채권자는 이행의 제공을 함으로써 항변권을 소멸시킬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확정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그 확정기한이 도래한 때, 불확정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그 기한이 객관적으로 도래한 때(이행지체책임은 채무자가 기한의 도래사실을 안 때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에서 시효소멸의 경우와 다르다), 기한의 정함이 없는 경우에는 채권이 성립한 때(반환시기의 정함이 없는 소비대차의 경우에도 대주는 언제든지 반환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이행청구시로부터 상당기간이 경과한 때부터 이행지체책임을 지는 것과는 달리 채권 성립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⑷ 변제기가 도래하기 전에 채무자가 다른 채권자로부터 강제집행을 당한 때에는 기한의 이익을 상실한다는 내용의 특약이 있는 경우 기한의 이익 상실사유가 발생하였을때 채권의 변제기가 자동적으로 도래한다는 견해와 그러한 특약은 채권자에게 기한의 이익을 상실시킬 수 있는 일종의 형성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아 채권자가 기한이익 상실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변제기가 도래하여 그때부터 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 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는데, 판례는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에는 정지조건부 특약과 형성권적 특약 2가지가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후자의 특약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은 그 내용에 의하여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채권자의 청구 등을 요함이 없이 당연히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어 이행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하는 정지조건부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과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후 채권자의 통지나 청구 등 채권자의 의사행위를 기다려 비로소 이행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하는 형성권적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의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 양자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느냐는 당사자의 의사해석의 문제이지만 일반적으로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 채권자를 위하여 둔것인 점에 비추어 명백히 정지조건부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형성권적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으로 추정된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2다28340 판결).
따라서 피고가 기한이익 상실특약이 있는 채권의 시효소멸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채권자가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에 따라 기한이익 상실의 의사표시를 하고(예컨대, 기한이익상실의 특약이 있는 할부거래의 경우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이 행기가 도래하지 않은 잔존할부대금 전액의 지급을 구하는 최고를 하였다면 이러한 최고는 위 특약상의 기한이익 상실의 의사표시에 해당하므로 그때부터 잔존할부대금채권 전부에 대하여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한다), 그 시점부터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사실을 주장ㆍ증명하여야 한다. 소멸시효의 기산일 당일은 그 기간이 오전 0시부터 시작하는 경우 외에는 소멸시효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민법 157조).
나. 입증책임
⑴ 민법 162조 내지 165조는 각종 채권의 소멸시효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문제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에 관한 근거사실은 당사자가 주장ㆍ증명하여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시효기간의 적용을 받는가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은 법률상의 견해에 불과 하므로 변론주의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고 법원은 이에 구속되지 않는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2다68217 판결).
⑵ 피고가 10년의 소멸시효를 주장하였더라도 그 청구권이 구 지방재정법 53조 소정의 5년의 소멸시효에 걸리는 권리인 이상 법원으로 서는 위 규정에 의한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심리하여야 한다(대법원 1977. 9. 13. 선고 77다832 판결).
⑶ 같은 맥락에서 피고가 원고의 청구권이 보험금청구권에 해당하므로 2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된다고 한 주장 속에는 그보다 장기간인 5년의 소멸시효기간에 관한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6. 11. 10. 선고 2005다35516 판결).
다. 시효중단의 재항변
⑴ 시효소멸의 항변에 대하여 원고는 민법 168조 소정의 사유를 들어 시효중단의 재항변을 할 수 있다.
⑵ 시효중단의 사유 중 하나인 ‘재판상 청구’에는 이행소송(지급명령신청도 재판상 청구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다54686 판결 참조)은 물론 확인소송도 포함된다.
통상적으로 권리자가 원고로서 시효를 주장하는 자를 피고로 하여 소송물인 권리를 소의 형식으로 주장하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이와 반대로 시효를 주장하는 자가 원고가 되어 소를 제기한 데 대하여 피고로서 응소하여 그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대법원 1993. 12. 21. 선고 92다47861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물상보증인이 그 피담보 채무의 부존재 또는 소멸을 이유로 제기한 저당권설정등기 말소등기절차이행청구소송에서 채권자 겸 저당권자가 청구기각의 판결을 구하고 피담보채권의 존재를 주장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로써 직접 채무자에 대하여 재판상 청구를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04. 1. 16. 선고 2003다30890 판결, 2007. 1. 11. 선고 2006다33364 판결).
응소행위로 인한 시효 중단의 효력은 피고가 현실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여 응소한 때에 발생한다(대법원 2005. 12. 23. 선고 2005다59383, 59390 판결).
나아가 대법원 2010. 8. 26. 선고 2008다42416, 42423 판결에서는, 답변서 제출일에 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보면서, 변론주의 원칙상 피고가 응소행위를 하였다고 하여 바로 시효중단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시효중단의 주장을 하여야 그 효력이 생기는 것이지만, 시효중단의 주장은 반드시 응소시에 할 필요는 없고 소멸시효기간이 만료된 후라도 사실심 변론종결 전에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⑶ 채권자가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복수의 채권을 갖고 있는 경우, 채권자로 서는 그 선택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되, 그 중 어느 하나의 청구를 한 것만으로는 다른 채권 그 자체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다른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은 없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1다6145 판결).
원인채권의 지급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음.수표가 수수된 경우에도 원인채권과 어음.수표채권은 별개로서 채권자는 그 선택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원인채권에 기하여 청구한 것만으로는 어음.수표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어음.수표채권에 기하여 청구하는 반대의 경우는 원인채권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서 원인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된다. 채권자가 어음채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가압류함으로써 그 권리를 행사한 경우에는 원인채권의 시효가 중단되나(대법원 1999. 6. 11. 선고 99다16378 판결), 시효로 소멸된 어음채권을 청구채권으로 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한 경우에는 원인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6345 판결).
제3자가 신청한 경매절차에서 채권자가 어음채권에 관한 집행력 있는 집행권원에 기하여 배당을 요구한 경우에도 원인채권의 시효가 중단된다(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0다25484 판결).
대여금채권의 소멸시효중단을 주장하는 원고로서는 대여금의 지급을 위하여 또는 담보로 교부된 어음.수표상의 채권을 재판상 행사한 사실을 주장ㆍ증명하여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⑷ 채권자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압류 또는 가압류한 경우에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하여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생긴다.
압류로 인한 시효중단의 발생시기에 관하여는 집행신청시설, 집행행위시설 등이 있으나 집행신청시설이 통설이다.
또한, 가압류로 인한 시효중단의 시점에 관하여 판례는 ‘신청시설’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0다25484 판결).
그리고,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가압류의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계속 되므로, 유체동산에 대한 가압류결정을 집행한 경우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은 가압류의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되나, 유체동산에 대한 가압류의 집행절차에 착수하지 않은 경우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고, 그 집행절차를 개시하였으나 가압류 할 동산이 없기 때문에 집행불능이 된 경우에는 집행절차가 종료된 때로부터 시효가 새로이 진행된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1다10044 판결).
⑸ 그러나 압류 또는 가압류된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는 이러한 확정적인 시효중단의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의 제3채무자에 대한 송달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 최고로서의 효력이 인정되므로(대법원 2003. 5. 13. 선고 2003다16238 판결), 그때로부터 6월 내에 재판상 청구 등을 한 사실을 증명하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송달시에 시효중단의 효력이 있었음을 주장할 수 있다.
⑹ 채권자가 물상보증인에 대하여 그 피담보채권의 실행으로서 임의경매를 신청하여 경매법원이 경매개시결정을 하고 경매절차의 이해관계인으로서의 채무자에게 그 결정이 송달되거나 또는 경매기일이 통지된 경우에는 시효의 이익을 받는 채무자는 민법 176조에 의하여 당해 피담보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의 효과를 받는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다12990 판결).
그러나 민법 176조의 규정에 따라 압류사실이 통지된 것으로 볼 수 있기 위하여는 압류사실을 주채무자가 알 수 있도록 경매개시결정이나 경매기일통지서가 교부송달의 방법으로 주채무자에게 송달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이것이 우편송달(발송송달)이나 공시송달의 방법에 의하여 채무자에게 송달됨으로써 채무자가 압류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경우까지도 압류사실이 채무자에게 통지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대법원 1994. 11. 25. 선고 94다26097 판결), 이 경우 원고로서는 경매개시결정이나 경매기일통지서가 교부송달의 방법으로 주채무자에게 송달된 사실까지 주장ㆍ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⑺ 한편, 경매신청이 취하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압류로 인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은 물론, 첫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에 등기되었고 매각으로 소멸하는 저당권을 가진 채권자의 채권신고로 인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도 소멸하지만(민법 제175조), 이와 달리 민사집행법 제102조 제2항(무잉여취소)에 따라 경매절차가 취소된 경우에는 압류로 인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이 소멸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첫 경매개시 결정등기 전에 등기되었고 매각으로 소멸하는 저당권을 가진 채권자의 채권신고로 인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도 소멸하지 않는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4다228778 판결).
라.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승인
⑴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승인은 시효기간의 진행 중에만 문제가 되고 시효 완성 후의 승인은 시효이익의 포기의 문제일 뿐이다.
⑵ 승인은 시효이익을 받을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를 상실하게 될 자에 대하여 그 권리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하고, 그 표시의 방법은 묵시적인 방법으로도 가능한 것이지만, 그 묵시적인 승인의 표시는 적어도 채무자가 그 채무의 존재 및 액수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표시를 대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가 그 채무를 인식하고 있음을 그 표시를 통해 추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행해져야 하므로[대법원 2005. 2. 17. 선고 2004다59959 판결(원고와 계속적인 물품외상거래를 하던 피고가 단순히 기왕에 공급받던 것과 동종의 물품을 추가로 주문하고 공급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기왕의 채무의 존부 및 액수에 대한 인식을 묵시적으로 표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안)] 묵시적 승인을 주장하는 채권자로서는 당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기왕의 채무의 존부와 액수에 대한 인식을 표시한 사실을 근거지우는 구체적 사실을 주장ㆍ증명하여야 한다.
⑵ 승인에는 상대방의 권리에 관한 처분의 능력이나 권한이 있음을 요하지 않으나(민법 177조), 그 반대해석상 그 권리를 관리할 능력이나 권한은 있어야 하므로, 피고로 서는 승인 당시 채무자에게 관리능력 또는 권한이 없었던 사실(예컨대,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법률행위를 피한정후견인이 한정후견인의 동의 없이하여 한정후견인이 이를 취소한 사실 또는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승인하여 법정대리인이 이를 취소한 사실 등을 재재항변사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을 재재항변으로 주장하며 승인의 효과를 다툴 수 있다.
다만, 제3자가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승인을 주장하는 자가 제3자에게 승인할 권한이 있음을 주장ㆍ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1970. 3. 10. 선고 69다401 판결 참조).
⑶ 시효가 중단된 때에는 중단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시효가 새로이 진행하므로 피고는 시효중단사유가 있더라도 그 사유종료시로부터 시효가 다시 진행하여 그 소멸시효기간이 도과한 사실을 들어 다시 시효소멸의 항변을 주장할 수 있는데, 이 주장은 시효중단의 재항변에 대한 재재항변이 아니라 당초 시효소멸의 항변과 병렬적 위치를 갖는 또다른 항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⑷ 원고의 시효중단의 재항변에 대하여 피고는 민법 170조 내지 17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는 경우에 관한 사실을 주장하며 재재항변을 할 수 있다.
채권자가 소의 제기사실을 주장하며 시효중단의 재항변을 하면, 채무자는 재재항변으로서 그 소송이 각하, 기각 또는 취하로 종결되었음을 주장ㆍ증명하면 된다. 또 채권자가 문제된 채권을 피보전채권으로 하여 가압류하였다고 재항변하면, 채무자는 그 가압류가 소명부족 등으로 취소된 사실을 주장하며 재재항변할 수 있다.
금전채권의 보전을 위하여 채무자의 금전채권에 대하여 가압류가 행하여진 경우에 그 후 채권자의 신청에 의하여 그 집행이 취소되었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압류에 의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과는 소급적으로 소멸되나(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다53273 판결), 적법한 가압류가 있었으나 제소기간의 도과로 인하여 가압류가 취소된 경우에는 민법 제175조에 정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88019 판결).
마. 소멸시효이익의 포기
⑴ 또 다른 재항변사유로서 원고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하였음을 주장할 수 있다.
①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액의 다툼 없이 채무를 일부 변제한 때에는 그 채무 전체를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고 할 수 있다(대법원 1996. 1. 23. 선고 95다39854 판결). 마찬가지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를 피담보 채무로 하는 근저당권이 실행되어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이 경락되고 그 대금이 배당되어 채무의 일부 변제에 충당될 때까지 채무자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다면, 경매절차의 진행을 채무자가 알지 못하였다는 등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는 시효 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채무를 묵시적으로 승인하여 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1. 6. 12. 선고 2001다3580 판결).
그러나 채무자가 가압류 목적물에 대한 가압류를 해제받을 목적으로 피보전채권을 변제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보전채권으로 적시되지 아니한 별개의 채무에 대하 여서까지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3. 10. 26. 선고 93다14936 판결).
②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채무자가 그 기한의 유예를 요청하였다면 그때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대법원 1965. 12. 28. 선고 65다2133 판결),
위 ①②의 사실들은 소멸시효 이익포기사실에 해당한다.
⑵ 시효이익의 포기는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면서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판례에 의하면 시효완성 후에 채무를 승인한 때에는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하므로(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4796 판결, 2001. 6. 12. 선고 2001다3580 판결),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한 사실을 주장하면서 시효이익포기의 재항변을 할 경우에는 채무자가 당시 시효완성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실을 별도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⑶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는 상대적 효과가 있을 뿐이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함이 원칙이나,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 당시에는 그 권리의 소멸에 의하여 직접 이익을 받을 수 있는 이해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가 나중에 시효이익을 이미 포기한 자와의 법률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시효이익을 원용할 이해관계를 형성한 자는 이미 이루어진 시효이익 포기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다200227 판결 : 저당부동산의 소유권을 병으로부터 취득한 갑이 근저당권자인 을을 상대로 피담보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근저당권설정등 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사안에서, 저당부동산의 종전 소유자 병이 이미 근저당권자인 을을 상대로 피담보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의 이익을 포기한 후에 비로소 병으로부터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한 갑은 병이 한 시효이익 포기의 효력을 전제로 하여 근저당권의 제한을 받는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어서 병이 한 시효이익 포기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 사례).
5. 상행위로 인한 채권의 소멸시효 (= 5년의 상사소멸시효)
가. 상행위로 인한 채권 (일방적 상행위나 보조적 상행위로 인한 채권을 모두 포함)
상행위로 인한 채권에는 상법 제64조가 정한 5년의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
여기서 상행위로 인한 채권이라 함은 기본적 상행위는 물론, 일방적 상행위나 보조적 상행위로 인한 채권을 모두 포함한다(◎ 대법원 1997. 8. 26. 선고 97다9260 판결 : 당사자 쌍방에 대하여 모두 상행위가 되는 행위로 인한 채권뿐만 아니라 당사자 일방에 대하여만 상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한 채권도 상법 제64조 소정의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는 상사채권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상행위에는 상법 제46조 각 호에 해당하는 기본적 상행위뿐만 아니라, 상인이 영업을 위하여 하는 보조적 상행위도 포함된다).
나. 상사채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
상사채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도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대법원 1997. 8. 26. 선고 97다9260 판결 : 상사시효가 적용되는 채권은 직접 상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뿐만 아니라 상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무의 불이행에 기하여 성립한 손해배상채권도 포함한다).
다. 상행위인 계약의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
상행위인 계약의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에도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대법원 1993. 9. 14. 선고 93다21569 판결 : 상행위인 계약의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청구권 또한 상법 제64조의 상사시효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인 바,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원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에 관한 그 주장의 해제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고 하여 위 계약해제로 인한 계약금등반환청구권은 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였음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6. 상행위로 이루어진 급부가 무효로 되어 그 반환을 구하는 채권의 경우 소멸시효 (= 나누어서 보아야 함)
가. 판례의 태도
(1)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6다271257 판결 :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라도 그것이 상행위인 계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급부 자체의 반환을 구하는 것으로서, 그 채권의 발생 경위나 원인, 당사자의 지위와 관계 등에 비추어 그 법률관계를 상거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에는 5년의 소멸시효를 정한 상법 제64조가 적용된다(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1다47825 판결, 대법원 2007. 5. 31. 선고 2006다63150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와 달리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내용이 급부 자체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거나, 위와 같은 신속한 해결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법 제64조는 적용되지 아니하고 10년의 민사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된다(대법원 2003. 4. 8. 선고 2002다64957, 64964 판결, 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2다4633 판결 등 참조).
⑵ 위 판례의 취지
㈎ ①‘상행위인 계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급부 자체의 반환’ + ② ‘상거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 5년의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
신속한 해결의 필요성 요건은 사실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은데,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당사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를 하나의 요소로 고려하기 위해 이러한 법리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위 요건 중 어느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10년의 민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나. 5년의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된 경우
외국환거래약정에서 손해배상금의 지급에 관한 약정을 하였는데 그 약정이 약관규제법에 위반되어 무효여서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금의 반환을 구하는 경우(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1다47825 판결) : 원고가 금융기관인 피고와 사이에 외국환거래약정을 체결하면서 손해배상금의 지급에 관한 약정을 하고 그 약정에 따라 피고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였는데 그 손해배상금 지급약정이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에 위반되어 무효로 될 경우, 원고가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금과 관련하여 피고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부당이득반환채권은 상행위인 계약에 기하여 급부가 이루어진데 따라 발생한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상행위에 해당하는 원고와 피고간의 외국환거래약정을 기초로 하여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채권 발생의 경위나 원인 등에 비추어 그로 인한 거래관계를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으므로 그 소멸시효의 기간에는 상법 제64조가 적용되어 5년의 소멸시효에 걸리게 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 10년의 민사소멸시효가 적용된 경우
⑴ 대출금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배당절차에서 어느 한 채권자가 다른 채권자를 상대로 수령한 배당금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경우(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6다271257 판결) : 원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원고가 대출금 채무자의 재산에 관한 경매사건 배당절차에서 가지는 권리를 피고들이 침해함으로써 발생하였다는 것으로서 상행위에 해당하는 계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급부 자체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는 어떠한 거래관계도 없어 원고와 피고들의 법률관계를 상거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으므로, 이 사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에는 상법 제64조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10년의 민사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어야 한다.
⑵ 상행위인 임대차계약의 종료 이후 계속 건물을 점유ㆍ사용하는 임차인에 대해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경우(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2다4633 판결) : 임대인 갑 주식회사와 임차인 을 주식회사 사이에 체결된 건물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는데도을 회사가 임차건물을 무단으로 점유·사용하자 갑 회사가 을 회사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한 사안에서, 을 회사는 갑 회사에 대하여 임차건물의 점유·사용으로 인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는데, 주식회사인 갑 회사, 을 회사 사이에 체결된 임대차계약은 상행위에 해당하지만 계약기간 만료를 원인으로 한 부당이득반환채권은 법률행위가 아닌 법률규정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고, 발생 경위나 원인 등에 비추어 상거래 관계에서와 같이 정형적으로나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0년의 민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한 사례이다.
⑶ 회사의 위법배당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청구권(대법원 2021. 6. 24. 선고 2020다208621 판결) : 배당 가능한 이익이 있는 경우 중간배당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 상법 제462조의3을 위반하여 회사 내부의 이익배당이 무효로 되는 경우이다. 회사 내부의 배당이 곧 주주들과의 상행위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급부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신속한 해결의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는 따져볼 필요도 없이 10년의 민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
7.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189-1191 참조]
가. ‘손해의 발생이 현실화’된 날로부터 10년
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한다(장기소멸시효).
◎ 민법 제766조(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②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
⑵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불법행위를 한 날’은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한다.
불법행위와 위법행위(가해행위)의 개념은 구별되어야 한다.
불법행위는 위법행위, 손해, 인과관계, 책임성이 모두 인정되는 경우 사용하는 개념이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인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가해행위를 한 날이 아닌 ‘가해행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날’을 의미하는 것이다(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 민법 제766조 제1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하며, 그 인식은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의 발생사실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사실, 즉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인식으로서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있다는 사실까지 안 날을 뜻한다. 그리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 사건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하고, 손해를 안 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위와 같은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하고, 그 발생 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나. 성범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민법 제750조)의 특수성
⑴ 성범죄 피해의 영향은 피해자의 나이, 환경, 피해 정도, 가해자와의 관계, 피해자의 개인적인 성향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그 양상, 강도가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증상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⑵ 이러한 경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와 친족관계를 비롯한 피보호관계에 있었던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인지적ㆍ심리적ㆍ관계적 특성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8. 소멸시효의 기산점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298-308 참조]
가. 개설
⑴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제166조 제1항). 다만 부작위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의 경우에는 위반행위가 있은 때부터 진행하고(제166조 제2항), 특히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3년의 단기소멸시효는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진행한다(제766조 제1항).
⑵ 제166조 제1항이 적용되는 경우 권리가 발생하였더라도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으나,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는 것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법률상 장애/사실상 장애 이분론. 대법원 1984. 12. 26. 선고 84누572 전원합의체 판결 등 다수).
법률상의 장애사유에는 그 밖에, 권리행사에 장애가 되는 하위의 법규범이 상위의 법규범에 위배되어 무효이어서 사실은 권리 행사가 가능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하위 법규범의 존재는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는 ‘법률상의 장애’에 해당한다(대법원 1970. 12. 20. 선고 69누148 판결, 대법원 1996. 7. 12. 선고 94다52195 판결 등 참조). 하지만,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어 현실적으로 권리행사가 가능하게 된 경우에 권리행사를 부정했던 종전 대법원 판례의 존재는 권리행사에 대한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대법원 1993. 4. 13. 선고 93다3622 판결,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⑶ 민법은 제한능력자에게 법정대리인이 없는 경우, 제한능력자가 법정대리인에 대하여 권리를 갖고 있는 경우, 천재 기타 사변으로 인하여 시효중단 조치를 할 수 없는 경우 등과 같이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한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소멸시효 ‘완성의 정지’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바(제179조~제182조 참조), 이러한 입법태도는 권리행사에 대한 사실상의 장애사유는 시효기간의 진행 그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위와 같은 통설과 판례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 따라서 권리자가 권리의 존재를 몰랐다거나 질병 등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였다는 등의 사유는 사실상의 장애에 불과하여 시효기간의 개시나 진행에 장애가 되지 않으며, 또한 권리자가 제한능력자인데 그에게 법정대리인이 없어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는 사정도 소멸시효 완성의 정지사유(제179조 참조)로 고려될 수 있을 뿐 시효기간의 개시나 진행에 대한 법률상의 장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⑷ 다만, 대법원은 근래 들어 정의와 형평의 관념 및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이유 등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원칙에 대하여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법인의 이사회결의가 부존재함에 따라 발생하는 제3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처럼 법인이나 회사의 내부적인 법률관계가 개입되어 있어 청구권자가 권리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고 청구권자가 과실 없이 이를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사회결의부존재확인판결의 확정과 같이 객관적으로 청구권의 발생을 알 수 있게 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하고(대법원 2003. 2. 11. 선고 99다66427,73371 판결, 대법원 2003. 4. 8. 선고 2002다64957,64964 판결 등), 보험사고가 발생하였는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아니하여 보험금청구권자가 과실 없이 보험사고의 발생을 알 수 없었던 경우에는 보험금청구권자가 보험사고의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때부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한다(대법원 2001. 4. 27. 선고 2000다31168 판결 등).
권리자에게는 소멸시효가 완성하기 전에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므로, 위와 같이 ‘권리의 성립에 필요한 요건사실의 존부가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아니하여’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기간이 있는 경우에는 사후적으로 확인된 권리발생시점부터 시효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인정하는 것은 확실히 부당하다.
나. 기한을 정한 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⑴ 확정기한부 채권 : 확정기한이 도래한 때
⑵ 불확정기한부 채권 : 그 기한이 객관적으로 도래한 때
⑶ 기한의 이익이 상실된 경우
①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은 그 내용에 의하여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채권자의 청구 등을 요함이 없이 당연히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어 이행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하는 정지조건부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과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후 채권자의 통지나 청구 등 채권자의 의사행위를 기다려 비로소 이행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하는 형성권적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의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고,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 위의 양자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느냐는 당사자의 의사해석의 문제이지만 일반적으로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 채권자를 위하여 둔 것인 점에 비추어 명백히 정지조건부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형성권적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② 그리고 이른바 형성권적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그 특약은 채권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기한이익의 상실 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나머지 전액을 일시에 청구할 것인가 또는 종래대로 할부변제를 청구할 것인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기한이익 상실의 특약이 있는 할부채무에 있어서는 1회의 불이행이 있더라도 각 할부금에 대해 그 각 변제기의 도래시마다 그 때부터 순차로 소멸시효가 진행하고 채권자가 특히 잔존 채무 전액의 변제를 구하는 취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 한하여 전액에 대하여 그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는 것이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2다28340 판결).
⑷ 기한 유예의 합의가 있는 경우
기한이 있는 채권의 소멸시효는 이행기가 도래한 때부터 진행하지만, 그 이행기가 도래한 후 채권자와 채무자가 기한을 유예하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그 유예된 때로 이행기가 변경되어 소멸시효는 변경된 이행기가 도래한 때부터 다시 진행한다. 이와 같은 기한 유예의 합의는 명시적으로뿐만 아니라 묵시적으로도 가능한데, 계약상의 채권관계에서 어떠한 경우에 기한 유예의 묵시적 합의가 있다고 볼 것인지는 계약의 체결경위와 내용 및 이행경과, 기한 유예가 채무자의 이익이나 추정적 의사에 반하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4. 13. 선고 2016다274904 판결).
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반환시기의 정함이 없는 소비대차의 경우 대주는 언제든지 반환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제603조 제2항), 소멸시효는 채권이 성립한 때부터 진행한다.
라. 예금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소멸시효기간은 상법상의 소멸시효기간인 5년인데, 그 기산점에 관하여는 각 예금의 종류마다 차이가 있다.
① 우선 예치기간을 정하지 않은 채 언제든지 예입·반환을 반복할 수 있는 보통예금의 경우에는 계약 성립과 동시에 소멸시효가 진행하지만, 계약 기간에 예입과 반환이 되풀이될 때에는 금융기관 측의 채무승인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최후의 예입 또는 반환 시부터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22. 4. 28. 선고 2020다268265 판결 : 금융기관 직원의 예금 무단 인출로 인하여 이자가 지급되지 않아 예금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한 사안).
② 그리고 기한의 정함이 있는 정기예금의 경우에는 기한이 도래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③ 당좌예금의 경우에도, 당좌예금은 그 계약이 존속하는 한 예금주는 수표에 의하지 않고는 함부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고, 반환은 그 계약이 종료한 때에 비로소 청구할 수 있다는 견해와, 당좌예금주는 단순히 수표만에 의하여 반환을 받는 제한을 받을 뿐 반환의 청구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므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소비임치와 마찬가지로 예금계약 성립시가 소멸시효의 기산점이라고 하는 견해가 대립한다.
마. 정지조건부 권리의 소멸시효 기산점 : 조건이 성취된 때
바. 선택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선택권의 귀속에 관한 약정이 없는 상태에서 채무자가 선택권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 채권자의 선택권 행사로 인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채권자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때 즉 채무자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선택하지 아니한 때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때부터 진행한다.
◎ 대법원 2000. 5. 12. 선고 98다23195 판결 : 이 사건에서 매립지 중 100평을 선택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하여 당초 약정이 없었으므로 민법 제380조에 의하여 채무자인 피고에게 있다고 볼 것이고, 피고가 선택권을 행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381조에 따라서 채권자인 김종택이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선택을 최고할 수 있고, 그래도 피고가 그 기간 내에 선택하지 아니할 때에 김종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므로, 김종택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기산점은 자신이 100평의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때, 즉 피고가 100평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선택하지 아니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때라고 보아야 할 것인바(대법원 1965. 8. 24. 선고 64다1156 판결 참조), 피고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고 도시계획결정 및 지적고시가 이루어져 피고가 소유할 토지의 위치와 면적이 확정되어 공부상 정리가 마쳐진 1987. 2. 26.에는 피고가 100평의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이때로부터 선택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날로부터 김종택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볼 것이다).
사.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7. 13. 선고 2001다22833 판결,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09다10249 판결, 대법원 2020. 6. 11. 선고 2020다201156 판결 : 甲 주식회사가 잠수함 건조계약에 따라 해군에 인도한 잠수함의 추진전동기에서 이상 소음이 발생하자, 이에 국가(해군)가 甲 회사를 상대로 계약의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甲 회사가 해군에 잠수함을 인도한 후 항해훈련 전에는 이상 소음이 발생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는 점, 추진전동기의 하자는 사단법인 한국선급과 국방기술품질원이 고장 원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방기술품질원장에게 제출함으로써 밝혀진 점 등에 비추어, 국가(해군)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때는 추진전동기에서 이상 소음이 처음 발생한 때 또는 사단법인 한국선급과 국방기술품질원이 추진전동기의 고장 원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때이고,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한 사례].
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⑴ 제766조 제1항(3년) :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
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제766조 제1항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고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한다. 특히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안 날은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된 것을 안 날을 의미한다() 대법원 1992. 12. 8. 선고 92다29924 판결, 대법원 2001. 1. 19. 선고 2000다11836 판결, 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6다1687 판결 등).
② 나아가 피해자 등이 언제 위와 같은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다7577 판결 등).
◎ 대법원 1995. 2. 10. 선고 94다30263 판결 : 피해자 등에게 손해의 발생사실과 그 손해가 가해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만한 정신적 능력 내지 지능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아니한다면 설사 사고 발생 후 피해자 등이 사고 경위 등에 관하여 들은 적이 있다 하더라도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위 법조항 소정의 단기소멸시효는 진행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러한 정신적 능력 내지 지능이 있었는지 여부는 결국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여러 사정들을 참작하여 판단할 사실인정의 문제라고 하였다.
◎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다71592 판결 : 경찰관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甲이 그 경찰관들을 폭행죄로 고소하였으나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되어 제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상고심에서 무죄로 확정된 사안에서, 甲의 무고죄가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甲이 가해 경찰관들이나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가해 경찰관들에게 손해를 배상해 주어야 할 입장에 놓일 수도 있게 될 것이어서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甲이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이므로, 甲의 손해배상청구는 무고죄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에야 비로소 사실상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甲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하였다.
◎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9다259371 판결(甲의 소유인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후 건물 임차인인 乙 주식회사가 임대인인 甲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원심이 위 건물의 다른 임차인이 甲을 상대로 임대차계약상 수선의무 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한 관련사건에서 위 화재에 관하여 甲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제1심판결이 선고될 무렵에 乙 회사가 화재의 원인 및 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의 요건사실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보아 乙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한 사안에서, 甲은 관련사건의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 화재가 공작물의 하자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화재의 원인, 발화지점, 임대인인 甲의 수선의무 불이행 여부, 면책가능성 등을 주된 쟁점으로 다투었던 점, 甲과 보험계약을 체결한 丙 보험회사가 乙 회사의 대표이사 등에 대하여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그 소송이 진행되던 중에 관련사건의 제1심판결이 선고되었으나, 甲의 항소 및 상고로 관련사건 결과를 기다리기 위하여 상당기간 추정되다가 관련사건 상고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야 丙 회사의 패소 판결이 선고된 점 등을 종합하면, 화재의 원인이나 발화지점, 책임의 주체 등 위법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乙 회사의 대표이사에 대하여 구상금 청구에 관한 소가 진행 중이었던 사정, 위 구상금 청구 소송의 진행경과 등에 비추어, 乙 회사의 입장에서 관련사건 제1심판결 선고 무렵에 화재의 원인 및 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의 요건사실에 관하여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관련사건 상고심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때에 비로소 화재로 인한 위법한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 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2다206384 판결 : 청소년 시절 피해를 당하였던 ‘위력에 의한 추행, 간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이 문제 된 사안에서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 제1심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된 때부터 시효가 진행한다고 판단한 사례.
③ 그리고 신체에 대한 가해행위가 있은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치료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증상이 발현되어 그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된 사안이라면, 법원은 피해자가 담당의사의 최종 진단이나 법원의 감정결과가 나오기 전에 손해가 현실화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해행위가 있을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왕성하게 발육ㆍ성장활동을 하는 때이거나, 최초 손상된 부위가 뇌나 성장판과 같이 일반적으로 발육ㆍ성장에 따라 호전가능성이 매우 크거나(다만 최초 손상의 정도나 부위로 보아 장차 호전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 치매나 인지장애 등과 같이 증상의 발현 양상이나 진단 방법 등으로 보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 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6다1687 판결 : 원고는 만 1세 때 교통사고를 당하여 뇌 손상을 입은 후 발달지체 등의 증세를 보여 계속 치료를 받던 중 만 6세 때 처음으로 의학적으로 언어장애 등의 장애진단을 받았다. 이러한 경우 위 판시와 같은 사정들을 포함하여 사고 당시 피해자의 나이, 최초 손상의 부위 및 정도, 치료경과나 증상의 발현시기, 최종 진단경위나 병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언어장애 등의 손해가 언제 현실화되어 원고나 그 법정대리인이 언제 그에 관하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 심리할 필요가 있음에도, 원심이 이러한 심리 없이 곧바로 교통사고 당시 손해의 발생 사실을 알았다고 인정한 다음 그에 따라 교통사고일을 소멸시효 기산일로 삼아 피고(가해자)의 소멸시효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한 것은 잘못이라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한 사례이다.
④ 여기서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미성년자’로 행위능력이 제한된 자인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아야 위 조항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다79897 판결 : 피고가 2000. 7. 25. 05:30경 안양산 휴양림 청소년수련원의 여학생 숙소 내에서 잠을 자던 원고를 간음한 사안에서, 피고로부터 위와 같이 간음을 당할 당시 만 15세로서 미성년자이던 원고의 법정대리인이 원고의 피해사실 및 그 가해자를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가 성년이 된 2005. 4. 25.경까지는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사례이다.
⑤ ‘법인’의 경우에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통상 대표자가 이를 안 날을 뜻한다. 그렇지만 법인의 대표자가 법인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인과 그 대표자의 이익은 상반되므로 법인의 대표자가 그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 대표권도 부인된다고 할 것이어서 법인의 대표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적어도 법인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다른 대표자, 임원 또는 사원이나 직원 등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이를 안 때에 비로소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할 것이고, 만약 다른 대표자나 임원 등이 법인의 대표자와 공동불법행위를 한 경우에는 그 다른 대표자나 임원 등을 배제하고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8. 11. 10. 선고 98다34126 판결, 대법원 2012. 7. 12. 선고 2012다20475 판결,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3다50435 판결 등 참조. 하지만 법인이 대표자의 신원보증인에게 갖는 권리의 소멸시효는 대표자가 안 때가 기산점이 되고, 다른 임원, 사원, 직원 등이 안 때로 기산점이 늦추어지지 않는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13614 판결)].
⑥ 권리자인 피해자의 위와 같은 주관적 용태, 즉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가 증명할 책임이 있다(대법원 2006. 10. 27. 선고 2005다32913 판결).
⑦ 한편,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데(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7001 판결: 군인 등이 공상을 입은 경우에 유공자예우법 등 다른 법령에 의하여 보상을 받을 수 없음이 판명되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 규정의 적용이 배제됨이 확정될 때까지는 같은 항 본문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법률상 이를 행사할 수가 없다 할 것이므로, 이처럼 다른 법령에 의하여 보상을 받을 수 없음이 판명되지 않고 있다는 사정은 위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에 대한 법률상의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판례는 “공무원의 직무수행 중 불법행위에 의하여 납북된 것을 원인으로 하는 국가배상청구권의 행사에 있어, 남북교류의 현실과 거주·이전 및 통신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 사회의 비민주성이나 폐쇄성 등을 고려하여 볼 때,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북한에 납북된 사람이 피고인 국가를 상대로 대한민국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는 등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객관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하겠으므로, 납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은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다만 이 사건에서와 같이 납북자에 대한 실종선고심판이 확정되게 되면 상속인들에 의한 상속채권의 행사가 가능해질 뿐이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채권자가 북한에 납북되어 있다는 사정은 기본적으로 권리행사에 대한 ‘사실상의 장애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이 판결은 이를 법률상의 장애사유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납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⑵ 제766조 제2항(10년) : 불법행위를 한 날
① 제766조 제2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위와 같은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 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한다(대법원 2007. 11. 16. 선고 2005다55312 판결).
◎ 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0다54566 판결 : 甲 은행 등이 수출계약서 등 근거서류를 확인하지 않은 채 乙 회사 등에 구매승인서를 발급해 주었고, 丙 회사 등이 위 구매승인서에 의하여 乙 회사 등에 물품을 공급하였는데, 관할 세무서장이 구매승인서에 하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丙 회사 등에 위 거래에 관한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을 하였으나 그에 대한 취소판결이 확정되어 부가가치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국가가 甲 은행 등을 상대로 부가가치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甲 은행 등이 수출계약서 등 근거서류를 확인하지 않은 채 乙 회사 등에 구매승인서를 발급해 준 것 때문에 국가가 입은 손해는 乙 회사 등에 물품을 공급한 丙 회사 등으로부터 부가가치세를 부과 징수할 수 없게 됨으로써 발생한 것인데, 국가가 부가가치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는지는 乙 회사 등이 구매승인서 내용대로 물품을 수출하지 않고 불법으로 내수 유통시킨다는 것을 丙 회사 등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였는지에 달려 있고, 이는 丙 회사 등에 대하여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이 된 후 그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패소 여부가 확정된 후에야 비로소 가려지는 것이므로 부가가치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다는 손해의 결과 발생이 현실화된 시점은 부과처분을 한 세무서장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판결이 확정된 때이고, 국가의 甲 은행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역시 위 판결 확정일이라고 한 사례.
◎ 대법원 2022. 1. 14. 선고 2019다282197 판결 : 수사기관의 위법한 폐기처분으로 인한 피압수자의 손해는 형사재판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 아직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수사기관의 위법한 폐기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위법한 폐기처분이 이루어진 시점이 아니라 무죄의 형사판결이 확정되었을 때로 봄이 타당하다.
② 그 발생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97137 판결).
③ 하지만 그 손해의 결과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면 그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의 결과 발생을 알았거나 예상할 수 있는가 여부에 관계없이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가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④ 그런데 예를 들어 제약회사가 공급한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제제를 통하여 환자인 피해자가 감염되었는데, 감염의 잠복기가 길거나, 감염 당시에는 장차 병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을 일률적으로 감염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감염일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에는 감염 자체로 인한 손해 외에 증상의 발현 또는 병의 진행으로 인한 손해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손해는 증상이 발현되거나, 병이 진행된 시점에 현실적으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08다16776 판결 : AIDS의 잠복기는 약 10년 정도로 길고, HIV 감염 당시 AIDS 환자가 될 것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며, AIDS 환자가 되었다는 것과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은 구별되는 개념이므로, AIDS 환자가 되었다는 손해는 HIV 감염이 진행되어 실제 AIDS 환자가 되었을 때 현실적으로 그 손해의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한 사례이다.
⑤ 또한,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증상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와 친족관계를 비롯한 피보호관계에 있었던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인지적, 심리적, 관계적 특성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 법원은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기 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 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97137 판결 : 甲이 초등학교 재학 중 테니스 코치 乙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는데, 약 15년 후 甲이 乙과 우연히 마주쳤고 성폭력 피해 기억이 떠오르는 충격을 받아 3일간의 기억을 잃고 빈번한 악몽, 불안, 분노 등을 겪으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게 되어, 乙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이다.
⑥ 한편,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등 전원재판부 결정은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같은 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위 위헌결정의 효력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이나 같은 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위헌결정 당시까지 법원에 계속되어 있는 경우에도 미친다. 따라서 그러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른 10년의 소멸시효 또는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에 따른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33686 판결,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8다238865 판결).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정한 단기소멸시효만이 적용될 수 있다. 원고는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이후에야 비로소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9다276307 판결).
⑶ 계속적 불법행위의 경우
불법행위가 계속적으로 행하여지는 결과 손해도 역시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손해는 날마다 새로운 불법행위에 기초하여 발생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그 각 손해를 안 때부터 각별로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고(대법원 2008. 4. 17. 선고 2006다35865 전원합의체 판결), 이와 함께 각 손해가 발생한 때부터 각별로 10년(국가배상채무의 경우 5년)의 장기소멸시효가 진행한다(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다18935 판결).
◎ 대법원 2008. 4. 17. 선고 2006다35865 전원합의체 판결 :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위법한 건축행위에 의하여 건물 등이 준공되거나 외부골조공사가 완료되면 그 건축행위에 따른 일영의 증가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고 해당 토지의 소유자는 그 시점에 이러한 일조방해행위로 인하여 현재 또는 장래에 발생가능한 재산상 손해나 정신적 손해 등을 예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그 때부터 진행한다. 다만, 지극히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일조방해로 인하여 건물 등의 소유자 내지 실질적 처분권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건물 등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철거의무를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러한 철거의무를 계속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부작위는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고 그 손해는 날마다 새로운 불법행위에 기초하여 발생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그 각 손해를 안 때로부터 각별로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다18935 판결 : 피고는 방OO에 대한 수사 및 재판과정을 통하여 망 김OO이 소대장인 방OO의 구타 등으로 인하여 사망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를 알 수 있었음에도, 만연히 망 김OO의 사망원인을 병사로 처리하고 망 김OO의 유족들에게 망 김OO이 병사하였다는 부실한 통지를 함으로써 망 김OO의 사망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이를 망 김OO의 유족들에게 정확하게 통지해야 할 의무를 불이행하였고, 이러한 위법한 부작위는 해군참모총장이 2008. 4. 15. 원고 측에게 망 김OO이 군복무 중이던 1958. 1. 28. 진해해군병원에서 순직하였다는 순직확인서를 발송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며, 이로 인하여 망 김OO의 유족들의 손해도 계속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망 김OO의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날마다 새로운 피고의 불법행위가 있는 날로부터 각별로 진행한다.
⑷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침해에 관한 특례
①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그 밖의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에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진행되지 아니한다(제766조 제3항).
이는 민법이 2020. 10. 20. 법률 제17503호로 개정되면서 신설된 조항으로, 해당 부칙 제2조에 따라 개정 법률의 시행 전에 행하여진 성적 침해로 발생하여 개정 법률 시행 당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한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범죄 등은 주변인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아 대리인을 통한 권한 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해당 미성년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아니하도록 하여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성년이 된 후 스스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성적 침해를 당한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이 입법 취지이다.
자.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며, 그 성립과 동시에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청구권이 성립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8다47886 판결).
◎ 대법원 2017. 7. 18. 선고 2017다9039, 9046 판결 : 갑의 보험금 납부 등 보험관리업무를 맡은 을이 갑이 송금한 돈 중 일부를 사용하고 갑의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용한 사안에서, 을의 사용 권한 범위, 갑의 허락 여부 등을 밝힘으로써 용도 외 사용 당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을이 갑의 보험관리업무를 종료한 때부터 갑의 을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이다.
차. 부작위채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 위반행위를 한 때(제166조 제2항)
카. 구상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⑴ 보증인의 구상권
구상권이 발생한 때이다. 사전구상권과 사후구상권은 별개로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⑵ 공동불법행위자의 구상권
피해자에게 현실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때이다.
파. 소멸시효의 기산일은 변론주의 적용 대상
① 판례는 취득시효와는 달리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소멸시효 주장 내지 항변의 법률요건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사실에 해당하여 변론주의 적용대상인 주요사실로 보아 당사자가 주장하는 기산일과 다른 날짜를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할 수 없다고 한다(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35886 판결, 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다22852, 22869 판결,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7다20111 판결).
② 이때 당사자가 본래의 기산일보다 뒤의 날짜를 기산일로 하여 주장하는 경우(예컨대 본래의 기산일이 2018. 7. 1.인데 2019. 1. 1.을 기산일로 주장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반대의 경우(예컨대 본래의 기산일이 2018. 7. 1.인데 2018. 1. 1.을 기산일로 주장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 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35886 판결 : 피고는 위 물품대금 채무에 대하여 거래 종료 시점인 1990. 9. 30.을 기산점으로 하여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원심은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991. 3. 30.을 기산점으로 하여 소멸시효 기간을 산정하였는바, 위 양 기간 사이에 동일성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므로 이는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어서 변론주의에 위배되고 나아가 판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③ 당사자가 주장하는 기산일을 기준으로 심리·판단하여야만 상대방으로서도 법원이 임의의 날을 기산일로 인정하는 것에 의하여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음이 없이 이에 맞추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및 소멸시효의 중단 사유가 있었는지의 여부 등에 관한 공격방어방법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한 원고의 시효중단 재항변이 이유 있는 경우에, 설령 시효중단 시점부터 기산하더라도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피고가 그 점을 항변으로 다시 주장하지 않는 이상 법원은 시효중단 시점부터 기산하여 소멸시효가 완성하였다고 판단할 수 없다(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다22852, 22869 판결,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60244 판결,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7다20111 판결, 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8다214241 판결).
9.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189-1191 참조]
⑴ 이 사건 불법행위로 원고가 입은 손해는 원고가 성인이 되어 피고를 우연히 만나기 전까지는 잠재적ㆍ부동적인 상태에 있었다가 피고를 만나 정신적 고통이 심화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음으로써 객관적ㆍ구체적으로 발생하여 현실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⑵ 민법 제766조 제2항에서 정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정확하게는 원고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병한 때’가 될 것이나, 이 사건에서 과거 일부 증상이 발현되었으나 고착화되지 않은 점, 피고를 조우하기 전후에 겪은 정신적 고통의 현저한 차이 등을 고려하여 원고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때’ 그 손해가 현실화된 것으로 보아 이를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았다.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 또한 원고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때’가 될 것이다.
⑶ 대상판결은, 원고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때인 2016. 6. 7.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이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았다.
원고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때인 2016. 6. 7.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이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