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점차 사라져 가는 ‘열쇠꾸러미’]【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4. 7. 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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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사라져 가는 ‘열쇠꾸러미’]【윤경변호사】

 

어느 집이나 잡동사니로 가득한 부엌 싱크대 서랍에는 정체불명의 열쇠꾸러미가 있다.

다른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짐정리를 하기 전까지는 그런 열쇠꾸러미가 있는 줄도 모를 거다.

그 열쇠가 어디에 맞는지 알고 싶다면 모조리 내다버리면 된다.

그러면 단 몇 시간 안에 알아낼 수 있다.

 

과거에 남자들은 자동차 키와 함께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다녔다.

묵중한 열쇠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것은 여간 끔찍한 일이 아니다.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여성이나 왕실금고지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값비싼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죽으로 만든 조그만 열쇠 지갑을 사용하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따분한 부부동반 파티장에서 파트너에게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는 신호를 보내기엔, 이제 곧 출발할 듯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열쇠꾸러미를 흔들어 보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가죽으로 만든 조그만 열쇠지갑을 흔들어 보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열쇠꾸러미를 허리 춤에 차고 다니길 좋아한다.

보기에는 흉물스럽지만, 현명한 처사다.

집을 나설 때 도저히 깜박 잊고 나올 수 없는 물건 중 하나가 바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열쇠꾸러미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동 도어락(Auto door locking device)’이 ‘열쇠 문’을 대체한지 이미 오래다.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카드 키(Card Key) 또는 손톱 크기의 썸네일 보안카드(thumbnail security card)를 갖다 대기만 하면 된다.

지갑 속에 든 스마트 카드(Smart Card)는 사람이 다가가면 자동차문을 저절로 열어준다.

 

이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던 무거운 열쇠꾸러미는 작고 가벼운 ‘USB 메모리카드’, ‘은행 OTP 카드’, ‘터취(touch)식 썸네일 키(thumbnail key)’로 바뀌었다.

가지고 다니는 유일한 열쇠는 아무도 건들지 않는 사무실 책상서랍의 열쇠뿐이다.

 

조만간 보편화될 ‘생체인식기술’은 똑똑한 것이든 멍청한 것이든 모든 열쇠꾸러미의 종말을 예고한다.

집 앞이나 자동차 앞에 흥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 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네, 주인님!(Yes, My Lord!)” 하면서, 언제나 반갑게 활짝 문을 열어 주겠지.

비록 기계에 불과하지만, 그 변치 않는 충성심에 우리들 모두 기분이 흐믓할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변덕스런 당신의 여자 친구나 부인이 그러듯이 ‘최첨단 잠금장치’가 당신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편리해도 가끔은 옛 것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