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돈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돈 때문에 울게 되는 날이 온다.]【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5. 1. 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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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돈 때문에 울게 되는 날이 온다.]【윤경변호사】

 

<돈은 ‘경멸’의 대상도, ‘집착’의 대상도 아니다.>

 

‘돈’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한 번쯤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은 ‘물욕을 버리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교육받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실천은 정말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한 푼 없이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방법은 성철스님처럼 도를 닦으면 가능하다.

문제는 아무나 성철스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 얘기하는 것을 천박하게 생각한다.

돈을 중시하는 사람을 속물이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

돈을 경멸하는 사람은 오히려 돈에 휘둘리고 돈 때문에 울게 된다.

 

돈 문제야 말로 자긍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심리적으로도 독립할 수 없다.

누군가의 경제력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떳떳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 대상이 부모든 배우자이든 예외 없이 상대방은 ‘상대에게 의존하는 당신’을 자신의 취향대로 조종하고 싶어 한다.

 

사랑으로 결합한 부부의 이혼 사유가 표면적으로는 ‘성격 차이’가 많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경제적 이유인 ‘돈’ 때문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무척 씁쓸하게 만든다.

 

많은 책들이 ‘성공 법칙’을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이란 게 사실은 “얼마나 효율적인 행동을 통해 경제적인 결과물을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말에 불과하다.

즉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수 있는가이다.

돈 이야기를 직접 하면 경박해 보이기 때문에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유를 위한 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시 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소유하라.”

 

<‘적당한 돈’은 인간다운 존엄함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는데, 많은 돈은 필요 없다.

자기 형편에 맞는 ‘적당한 돈’이면 된다.

 

‘적당한 돈’은 인간다운 존엄함을 지키게 해주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자기 노력과 땀이 들어간 돈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그런 돈에는 자부심과 가치가 있다.

 

돈을 ‘경멸’하는 사람이나 돈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오지 않는다.

돈은 최상의 종이고, 최악의 주인이다.

 

돈이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이 될 때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불행해 진다.

적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가 주인이 되어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

따라서 돈에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다.

 

돈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손쉬운 방법 찾기에 골몰한다.

이것은 나무를 심지 않으면서 과일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무를 심으려면 먼저 땅부터 파야 한다.

삽을 쥐고 기꺼이 땀을 흘려야 한다.

 

https://www.facebook.com/pages/%EC%9C%A4%EA%B2%BD%EB%B3%80%ED%98%B8%EC%82%AC/458972567566275?fref=ts

 

 

제가 이 포스팅을 하게 된 것은 아사디 지로의 소설 “천국까지 100마일”에 나온 ‘한 구절’ 때문입니다.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어머니가 가난한 모습으로 찾아 온 막내 아들에게 말합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치스러운 사람이야. 뼈저리게 가난을 겪어 본 사람은 행복 같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는 걸 알아.”

 

죽음을 앞 둔 저 어머니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어”라는 말이 상당히 불편하고 거북스럽게 다가오면서도, 그 말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물론 소설에서의 그 말은 ‘나는 가난한 네게 도움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부자인 네게 버림받고 싶다’는 뜻입니다만, 내게는 또 다른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