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내게 건넨 조용한 항의】《늦게서야 알게 된 나의 또 다른 나》〔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내 자신에게 소홀했던 단 한 가지>
스스로를 꽤 잘 돌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몸의 비명을 기분 좋은 근육통으로 바꾸는 PT를 받고, 저울 위에 그램(g) 수를 재어가며 식단을 조절하고, 질 좋은 잠을 위해 수면 환경을 가꾸는 일까지.
이만하면 나이 듦에 맞서 꽤 성실하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자부했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치과에서 반짝이는 치아를 확인할 때면, 그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지요.
하지만 그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벽에, 유독 한 곳, 제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은 무방비 지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머리카락'입니다.
물론 세월의 흔적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요.
하루가 다르게 가늘어지고, 샤워 후 빠지는 머리카락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마치 노안이 와서 신문 글씨가 흐려지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노화'의 훈장쯤으로 여겼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그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외면했던 그 문제를, 실은 수많은 사람이 '어쩔 수 있다'고 맞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탈모도, 관리할 수 있는 ‘건강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젊은이들조차 미녹시딜과 두타스테리드 같은 약을 복용하고, 모발 이식을 상담받는 등, 자신의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저처럼 '당연한 것'이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늘어지는 머리카락 한 올,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을 안타까워하며 미리부터 관리하고 아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과 노력은 단순히 외모가 아닌,
‘자신을 아끼는 태도’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제 머리카락이 나를 향해 작은 항의를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몸은 그렇게 아꼈으면서, 왜 나는 잊었나요?”
그제야 저는 제 머리카락을 돌아보았습니다.
제 머리카락은 오랜 세월 절 감싸며, 봄의 바람과 여름의 햇살, 가을의 비를 함께 견뎌왔는데, 저는 그 고마움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세월, 나의 무관심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온몸의 근육과 치아, 피부는 그토록 정성 어린 돌봄을 받는 동안, 머리카락만은 홀로 비바람을 맞으며 천대받고 괄시받았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라는 주인의 냉정한 선고 아래, 서서히 힘을 잃어가면서도 저를 원망했을지 모릅니다.
왜 나는 내 몸의 다른 모든 부분에는 그리도 살뜰했으면서, 유독 머리카락에는 이토록 무심했을까.
뒤늦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이제라도 이 무관심을 거두어야겠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으로.
조금 늦었지만, 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었던 그들을 위해, 이제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합니다.
늦은 후회가 아닌, 새로운 관리의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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