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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에 처음 접했다.
1950년대 폐허의 서울에 이런 시가 나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각박한 시대에도 ‘순수함’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
잔인하고 난폭한 세상에서도 삶을 어루만져 준다.
단순한 언어의 유희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마음을 쇠꼬챙이로 휘젓어 놓는다.
백만번 천만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가슴이 에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