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의 위력】《이 추운 겨울도 곧 끝이 날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수천 개의 말로도 내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림은 나에게 느낌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그림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림 앞에 서면 나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드러난다.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그림의 힘을 믿는다.
아래 그림은 러시아 화가인 블라디미르 예르고비치 마코프스키(Vladimir Yegorvich Makvsky)의 “길거리에서(At the Boulevard, 1887, Oil)”라는 작품으로 트레야코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겨울 초입 벤치에 앉은 부부의 모습이 애처롭다.
옆에 보따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일을 찾아 올라온 것 같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좌절이 어렸고 눈은 생기를 잃었다.
부부가 꿈꾸었던 세상은 벤치 뒤 철책 너머이다.
1861년 허울뿐인 농노해방 이후 러시아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 없었다.
수많은 농노들은 토지를 잃고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의 최하층을 구성한다.
그리고 산업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한다.
도시 이주 농노들은 춥고 헐벗고 굶주린 최악의 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보드카에 쩔어 사는 젊은 남자가 무릎에 아코디언을 끼고 벤치에 걸터 앉아 있다.
온몸에 적당히 퍼진 알코올의 힘으로 아코디언을 켜는 남자에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등 돌리고 있는 남자와 먼 데서 이를 지켜보는 여인이 있을 뿐이다.
옆에는 시골서 갓 올라온 듯한 그의 앳된 아내가 갓난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일하지 않고 돈도 벌지 못하는 남편 곁에서 근심 어린 얼굴로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곧 칼바람과 눈보라가 휘몰아 칠텐데 아내의 마음엔 이미 걱정이 폭풍우가 되어 내리친다.
남편의 대책 없는 낙관과 아내의 현실 비관이 교차하는 그림의 느낌이 발밑에 구르는 가을 낙엽만큼이나 메마르고 우울하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와 황량한 거리마저 쓸쓸함을 자아내 그림을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한 폭의 그림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력해서 넋을 잃었다.
주제를 표현한 회화적 기법 역시 아주 뛰어나다.
유화지만 마치 맑고 투명한 수채화처럼 농도가 가볍고 산뜻하다.
배경의 초록빛과 노란빛의 자연스런 조화, 회색빛 하늘의 쓸쓸한 초겨울의 정취, 오래된 명화의 한 장면처럼 그림이 주는 아우라가 참으로 강렬하다.
19세기 말엽 제정 러시아의 모습이다.
추운 날씨에 추위와 궁핍에 찌들어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선 어떤 희망도 볼 수 없고, 남자는 술 한 잔으로 추위를 겨우 면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부부의 모습이 애처롭다.
생각처럼 일자리를 얻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좌절감이 어려 있고, 눈에는 생기마저 사라졌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가 닥쳐왔다.
마치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러시아 작가 푸슈킨의 시이다.
인간은 끊임 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다.
Dum spīro spēro(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역경과 고난의 긴 터널도, 이 추운 겨울도 곧 끝이 날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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