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단순한 남자의 뇌]【윤경변호사】
<생각이 많은 그녀의 복잡하고 분주한 뇌>
그녀는 그 남자에게 만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를 묻는다.
“피자를 주문하고, TV로 영화를 보는 거지 뭐.” 그 남자는 대답한다.
그녀는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그 남자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슬쩍 말을 바꾼다.
“피자가 싫다면, 군만두와 탕수육을 시켜 먹을 수도 있어.”
“좋아요!”라고 그녀는 대답했지만, 곧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는 계속 생각한다.
“이 집의 융자대출기간인 1년이 곧 끝나겠군. 그 은행담당자는 대출기간을 연장해 준다고 했는데, 왜 연락이 없지?”
한편 그녀는 생각한다.
“1주년 기념일에 피자를 먹겠다니, 저 남자는 우리 관계를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게 틀림 없어. 난 촛불을 켜놓고 근사한 식사를 하고, 그 다음엔 느린 춤을 추면서 우리의 장래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저 남자는 부담스러워 하는 거야.”
그 남자는 대출만기를 고민하며 인상을 쓰다가 생각에 잠긴다.
“대출만기 연장이 거절되면 이를 어쩐다!”
그녀는 그 남자를 쳐다보더니 또 다른 생각의 흐름을 엮어간다.
‘저 봐, 저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 행복하지 않은 거야. 내가 너무 뚱뚱하니까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이 문제를 친구들과 의논해 봤어. 친구들은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했어. 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거였어. 그래, 내 친구들의 말이 맞는 거야.’
그 남자는 다시 고민한다.
“내일 담당자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연장요청을 해야겠어. 당장 말이야.”
그녀는 계속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생각한다.
‘저 남잔 이제 아주 당황하고 있어. 저 얼굴에 씌여 있어.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야. 그래, 바로 그거야. 그는 내가 자기를 거절할지 몰라서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는 거야. 난 저 남자의 눈빛에서 고통을 읽을 수 있어.’
그녀가 남자에게 말한다.
“제발 자기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지 말아요.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잘못되었는지도 몰라요. 아, 나는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요. 난 시간이 더 필요한건지도 모르겠어요. 내 말을 인생이 이처럼 까다로와서는 곤란하다는 말이예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는 대꾸하면서 생각한다.
‘도대체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오케이라고 대답해야지. 그녀는 내일이면 기분이 다시 좋아질 거야. 그녀는 지금 ’월경 전 긴장증세‘를 겪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한편 그녀는 그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가 아주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지만, 그와의 교제를 좀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밤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인다.
그러다가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껴 울면서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긴 것이 틀림 없어. 이제 내 인생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린 거야.’
남자는 생각한다.
‘대출 문제로 다소 우울하긴 하지만, 내일 저녁 그녀와 함께 해물아구찜에 소주 한 잔하면서 기분전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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