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돋보기를 걸쳐 쓴 나의 하루】《그래도 이 미련한 몸뚱이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5. 5. 1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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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를 걸쳐 쓴 나의 하루】《그래도 이 미련한 몸뚱이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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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안경을 자주 바꿔 낍니다.

책을 읽을 때 하나, 컴퓨터 앞에 앉을 때 또 하나,

운전할 때는 다시 다초점렌즈로 갈아타야 합니다.

이쯤 되면 나도 꽤 숙련된 '안경의 연주자'가 되어버린 셈이죠.

 

처음에는 단지 초점이 안 맞는 불편함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책의 작은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는 순간

나는 알았습니다.

, 인생의 정점을 지났구나.

 

중년과 노년을 구별하는 대표적 증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이나 신문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

우리는 단지 '눈이 나빠졌다'는 사실 이상의 슬픔과 마주합니다.

 

눈이 흐릿해진다는 건,

어쩌면 세상이 나를 조금씩 놓아주는 기분이 들게도 하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햇살 드는 거실에서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책을 읽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마치 영화 속 따뜻한 장면의 한 장면처럼요.

 

예전엔 나와 상관없을 거라 여겼던 그 풍경,

그 장면 속 주인공이 이제는 나인 겁니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기특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경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합니다.

때론 귀찮고, 때론 우울하지만,

그래도 이 미련한 몸뚱이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초점은 흐려졌을지라도,

삶을 바라보는 눈은 오히려 더 깊고 또렷해졌습니다.

 

그래, 그래도 참 고맙다.

평생을 버텨주며 여기까지 함께 와준 이 몸이,

기특하고, 대견하고, 참으로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