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보디빌딩협회’의 위촉패】《“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단순한 말은,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주문이 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서울특별시 보디빌딩협회로부터 위촉패를 받았다.
운동과는 별 인연도 없고, 근육이라곤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에나 붙어 있었던 인생을 살아온 내가, 그런 자리에 초대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런 식이다.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 삶의 가장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내곤 한다.
옛날에 어느 왕이 사냥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왕은 사냥을 나갈 때면 언제나 자신을 수행하던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왕의 상처에 붕대를 감았다.
왕이 물었다.
“아무 일 없겠는가?”
의사가 대답했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왕과 일행들은 사냥을 계속했다.
궁으로 돌아오고 나서 상처가 덧나자 왕은 그 의사를 다시 불렀다.
의사는 상처를 소독하고 조심스럽게 연고를 바르고는 붕대를 감았다.
왕이 걱정되어 물었다.
“확실히 괜찮겠는가?”
의사는 또다시 답했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왕은 불안해졌다.
왕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며칠 만에 왕의 손가락은 너무 심하게 곪아서, 결국 의사는 왕의 손가락을 잘라야만 했다.
무능한 의사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왕은 직접 의사를 지하 감옥으로 끌고가 감방에 처넣었다.
“감방에 갇히니까 기분이 어떤가, 이 돌팔이야!”
의사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대답했다.
“폐하, 감옥에 갇힌 게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요.”
“무능하기만 한 게 아니라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왕은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몇 주 후, 상처가 아물자 왕은 다시 사냥을 하러 궁 밖으로 나갔다.
동물을 쫓다가 일행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왕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길을 헤매던 왕은 숲 속 야만인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날은 마침 야만인들의 축제날이었는데, 그들로서는 밀림의 신에게 바칠 제물이 생긴 셈이었다.
야만인들이 왕을 큰 나무에 묶어놓고 제물을 잡기 위해 칼을 가는 사이 무당은 주문을 외우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당이 날카롭게 간 칼로 왕의 목을 치려다가 소리쳤다.
“가만! 이 사람은 손가락이 아홉 개밖에 없다. 신께 바칠 제물로는 불경스럽다. 풀어줘라.”
풀려난 왕은 며칠 만에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고,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가서 그 지혜로운 의사에게 말했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느냐고 실없는 소릴 할 때는 멍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대가 옳았네. 손가락을 잃어버린 게 좋았던 거야. 하지만 그대를 감옥에 가둔 건 내가 나빴던 것이네. 미안하이.”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감옥에 갇힌 게 나빴다니요? 저를 감옥에 가두신 건 아주 좋은 일이었습니다. 아니면 저는 그 사냥에 폐하를 따라나섰을 테고 제가 잡혔다면 제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열 손가락을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다.
위 이야기처럼 그 순간엔 불행이라 믿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 돌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방식이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단순한 말은,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주문이 된다.
실패한 줄로만 알았던 어떤 일이,
잘못된 선택이라 믿었던 어떤 길이,
나중에 돌아보면 정확히 우리를 살린 갈림길이기도 하다.
예측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건 때로 막막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이 우리 삶을 흥미롭고 유연하게 만든다.
그래서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오늘이 나빠 보여도,
그게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 우리는 믿고 걸어가야 한다.
언젠가 우연히 산책 나온 행운이
조용히, 우리 편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