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따라서,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여행(20)】《알마티의 젠코바 성당(Zenkov Cathedral)과 판필로바 28인 공원(Panfilov Park)에서의 봄날》〔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중심에 자리한 판필로바 28인 공원을 찾았다.
1941년, 모스크바 근교에서 나치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28명의 병사를 기리는 공간.
그들은 알마티 출신의 판필로프 장군 부대 소속이었다.
공원 한복판에는 과거 소련에 속했던 15개 공화국의 병사들을 형상화한 거대한 청동 조각상이 서 있다.
거친 눈썹과 굳게 다문 입술, 총검을 움켜쥔 손끝까지,
전장(戰場)의 긴장과 결연한 의지가 조각 하나하나에 서려 있다.
그 앞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른다.
러시아 내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산화한 모든 이들을 위한 영원의 불꽃.
도시의 소음은 멀고, 경건한 침묵만이 공기를 감싼다.
공원 중앙의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젠코바 성당(Zenkov Cathedral)이 모습을 드러낸다.
1903년부터 1906년에 걸쳐 지어진 이 성당은
단 한 개의 못도 없이, 오직 목재로만 완성된 러시아 정교회의 걸작이다.
1911년, 알마티를 강타한 대지진 속에서도 유일하게 온전히 살아남은 건축물.
그래서일까.
성당은 시간과 역사의 흔적을 껴안은 채, 고요하고도 우아하게 서 있다.
화사한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와
성당 내부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 풍경은
마치 신의 빛이 머무는 장소처럼 경이롭다.
유난히 화창한 봄날이다.
성당 앞 잔디밭에는 미술대학생들이 이젤을 펼치고 건물을 그리고 있었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가볍고 향기로웠다.
나는 숲길 옆 벤치에 앉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그 순간은 평화로웠고, 완전했다.
지금의 이 감미로운 순간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 봄날의 알마티가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