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동식이의 네 번째 자두】《그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지 않으면 가르침은 강요에 지나지 않으며 때로는 상처를 주는 일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스물 초반, 신림동 대학교 앞의 하숙집에 머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볕은 따뜻했고, 나는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주인집 아들 동식이를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동식이는 말이 조금 어눌하고 셈이 서툰,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은 세상 누구보다 맑았고, 나를 유난히 잘 따랐습니다.
햇살이 식탁 위에 부서지던 어느 오후, 탐스럽게 익은 자두 몇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빨간 자두를 보며, 동식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서툰 오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동식아, 자두 하나를 주고, 또 하나를 주고, 다시 하나를 주면, 모두 몇 개가 될까?"
내 다정한 물음에 동식이는 작은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맑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개요."
나는 웃으며 다시 설명했습니다.
"아니, 봐봐. 하나, 둘, 셋. 모두 세 개잖아."
하지만 다시 물어도 동식이의 대답은 "네 개요"였습니다.
몇 번의 물음과 같은 대답이 오가자, 내 마음에 조급함이 피어났습니다.
"왜 세지를 못하니!"
결국 나는 아이를 다그치듯 큰 소리로 하나하나 손가락을 짚어주었습니다.
그 순간, 동식이의 맑은 눈에 물기가 차오르더니,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려왔습니다.
아이는 잔뜩 위축되어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덜컥,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쳤습니다.
"아, 아니야. 괜찮아. 동식아. 이 자두는 네가 다 가져도 돼."
나는 황급히 아이를 달랬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동식이는 울먹이던 작은 손을 바지 주머니 속으로 꼼지락거리며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내게 무언가를 조심스레 꺼내 보였습니다.
그 작은 손바닥 위에는, 내가 준 세 개의 자두와 함께, 이미 그 아이의 것이었던 또 하나의 자두가 놓여 있었습니다.
동식이의 손에는, 처음부터 '네 개의 자두'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동식이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의 작은 주머니 속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내가 정해놓은 '정답'만을 강요했던 나 자신이었습니다.
나의 가르침은 그저 폭력적인 강요였고, 맑은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날 나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꽃피우게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 본연의 꽃이 활짝 피어나도록 곁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햇살을 비춰주는 일이지, 그 사람에게서 엉뚱하게 나의 꽃을 피워내려 애쓰는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주머니를, 자신만의 고독과 고유한 세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빛나는 모습뿐 아니라 그 비밀스러운 주머니 속 어둠까지도, 그 고유성 자체를 함께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날 동식이의 네 번째 자두는, 스물 청년이던 내게 아직도 속삭이고 있습니다.
"진실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 전에는,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마. 너의 정답이, 나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