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급격한 우울감】《머리카락이 점점 가늘어지고 머리숱이 줄어들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흰머리가 생긴 지는 오래다.
하지만 요즘 나를 더 괴롭히는 건 흰머리가 아니다.
흰머리 정도야 염색을 하면 되고, 흰수염은 면도기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머리숱이다.
언젠가부터 모발이 힘을 잃더니
두피가 훤히 비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돼지털처럼 뻣뻣했던 머리카락이 점점 가늘어지고 힘 없이 찰랑거린다.
샤워할 때마다 한 움큼의 머리카락과 이별을 한다.
어느 순간 믿었던 머리카락이 말한다.
“나 이제 떠나요.”
그러고는 세면대에 떨어져 있는 몇 놈이 나를 향해 외친다.
“붙잡으려 애쓰지 마요. 날 붙잡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 머리에 처발랐던 모든 것들이 미처 두피에 전달되지 못했거든요. 난 당신과 더 이상 공동의 뿌리를 느낄 수 없어요.”
정수리에서부터 시작된 빈 공간, 힘없이 가라앉아 두피를 드러내는 머리칼은 흰머리와는 또 다른 무게로 마음을 내리누른다.
풍경을 담고,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 찍기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은 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
렌즈 속에 담긴 내 모습이, 특히 위에서 내려다본 앵글 속 휑한 정수리가, 너무도 낯설기 때문이다.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은 좁은 엘리베이터에 홀로 섰을 때이다.
사방을 둘러싼 차가운 거울은 피할 곳 없이 적나라하게 지금의 나를 비춘다.
그 속에 비친 모습, 머리숱이 적어져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워, 애써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곤 한다.
시간은 언제나 나보다 조금 앞서 걷는다.
나는 늘 그 뒤를 따라가며
조금씩 변해가는 나를 발견한다.
머리숱이 줄어든다는 건
세월의 잔인함이 아니라,
그 세월을 살아냈다는 증거 아닐까.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답이 안나온다.
급격히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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