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랑.】《내 삶의 속도를 내가 결정했듯, 마침표의 위치도 내가 정하고 싶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오전에 PT를 마치고 또르와 산책에 나섰다.
우면산이나 서리풀 공원에 모두 무장애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또르와 함께 걷기 너무 편리해서 좋다.
바람은 차가와도 또르와 함께 걷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젊은 시절 힘들고 괴로울 때는 깜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깜비를 볼 때마다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잔디밭에 앉아 푸르른 신록과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오만 가지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기쁨인지 몰랐다.
그런데 건강하던 깜비가 쓰러진 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다.
힘없이 누워 있다가도 안아주면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얼굴을 핥았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물 한모금 삼키지 못할 때 깜비가 건강하게 뛰놀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그때는 몰랐다.
답은 하나다.
“또르와 함께 있는 지금의 이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잘 보내야지”
그래야 덜 아프고, 덜 후회한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이별을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떠날 사람을 떠날테고,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다.
이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쉽지만 행복한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말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나는 언제까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요즘 부쩍 주변에서 파킨슨이나 치매로 고생하는 이들의 소식을 자주 듣는다. 평생을 명석하게 살아온 이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마지막 페이지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흔히 '살아있음' 그 자체에 집착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삶의 본질은 조금 다르다.
나에게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맞추며 교감하고, 내 손으로 정갈한 글 한 줄을 써 내려가며, 내 의지대로 대지를 딛고 서는 과정이다.
만약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신적인 죽음과 다름없다.
의식 없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삶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에게는 그것이 죽음보다 더 깊은 고통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약 없는 간병의 굴레에 갇혀 삶의 생기를 잃어가는 것,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따뜻한 추억이 아닌 '무거운 짐'으로 남겨지는 것.
나는 그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존엄사(尊嚴死)를 원하고, 연명치료도 거부한다는 의사를 가족들에게 분명히 밝혔다.
내 삶의 방향과 속도를 내가 결정했듯, 마침표의 위치 또한 내가 정하고 싶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결심은 차가운 거절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떠올릴 때 고통이 아닌 미소를 머금길 바라는 나의 마지막 사랑이자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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