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해프닝.】《취객의 기둥이 된 폐형광등.》〔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그 남자는 홀로 남아 서류와 씨름하던 중 갑자기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의 형광등이 수명을 다했다.
유일한 빛줄기가 사라지자 어둠이 순식간에 머리까지 차올랐다.
까다로운 건물 관리인의 얼굴을 떠올리니 한숨부터 나왔다. 뭘 하나 고쳐달라고 할 때마다 묘하게 눈치를 주던 그였다.
결국 "에이, 내가 하고 말지"라는 심산으로 그는 직접 밖에 나가 새 형광등을 사 왔다.
의자를 딛고 올라가 낡은 등과 새 등을 교체하는 그 짧은 순간, 그는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느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수명을 다한 길쭉한 형광등은 쓰레기통에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밀어 넣었다가 내일 아침 미화원 아주머니에게 들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 처치 곤란한 '유리 막대기'를 품에 안고 퇴근길에 올랐다. 길가 쓰레기 수거함에 버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까지 적당한 수거함은 나타나지 않았다.
손에는 1미터가 넘는 형광등이 들려 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최대한 덜 방해되도록 형광등을 마치 '깃대'처럼 똑바로 들고서 지하철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 형광등을 든 그의 모습은 꽤나 기이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성 한 분이 비틀거리며 그의 옆자리에 앉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형광등을 꽉 움켜쥐었다. 그 취객은 이 가녀린 유리 막대기를 지하철 중앙에 설치된 튼튼한 쇠기둥이라고 굳게 믿는 눈치였다.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했을 무렵에도 그 취객은 여전히 형광등을 붙잡고 있었다.
순간 짓궂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대로 손을 놓고 내리면 이 골치 아픈 쓰레기에서 해방되는 게 아닐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재빨리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은 유혹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남자는 취객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저기요, 선생님. 이건 제 겁니다. 이 기둥(진짜 쇠기둥)을 잡으세요.”
그리고 형광등은 그의 아파트 단지에 비치된 전용 수거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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