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그래서 버나드 쇼가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고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 속 민태원의 「청춘예찬」에서 처음 만난 문장이다.
그때의 나는 그 문장을 읽고도 가슴이 설레지 않았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청춘 한가운데 있던 나는 청춘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안다.
청춘이란,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결코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 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간절해지는 어떤 것.
위 문장은 청춘을 떠나보낸 나이든 세대들의 말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닿을 수 없는 육지를 바라보듯 청춘을 그리워한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삶은 밀도가 달랐다.
모든 것이 빠르고, 모든 감정이 과했고, 모든 선택이 즉각적이었다.
사랑은 깊이 재지 않았고, 결정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폭발하듯 분출되던 시간이었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눈이 맞자마자 그날 바로 남녀 간에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열여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론 그쪽 계통의 노련한 큰손 월매의 의향대로 흘러간 감이 있지만, 어쨌든 열여섯 살의 나이가 아니었다면 사건 발생은 좀 더 숙고되어야 했을 것이고 춘향이 옥살이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모르는 외간남자의 키스 한 번에 눈이 번쩍 떠졌다는 것도 그녀가 열여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줄리엣은 열네 살 때 열다섯 살의 로미오를 만나서 순식간에 결혼해버린다. 모든 사건 사고가 일어난 날이 닷새 밖에 안 된다.
심청이 과도한 효심 때문에 인당수에 뛰어든 때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다.
열여섯 살 이쪽 저쪽의 나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도 쉽게 버릴 수 있고, 나라를 구하는 일처럼 대의명분이 있으면 나의 목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생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고, 계산보다 충동이 먼저 움직이며, 삶이 아니라 순간이 전부가 되는 시기.
그래서일까. George Bernard Shaw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노년은 그 모든 시간이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고요다.
번뇌도, 방황도, 사랑도, 아픔도 모두 한 겹의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진다.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짊어질 수 없는 것은 내려놓으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은 그저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노년은 단순히 식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청년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라면 노년은 깊이 눌러 담긴 화롯불이다.
겉은 잿빛일지라도 그 속에는 여전히 붉은 불씨가 살아 있다.
그 불씨의 이름은 ‘이상’이고, ‘새로움’이며, ‘호기심’이고, ‘희망’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탄력 있는 몸매가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 왕성한 감수성과 강한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꿈과 호기심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상상력과 영감이 끊기고 마음이 냉소의 눈에 덮히고
비탄과 절망의 얼음 속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과 호기심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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