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이 삼킨 것.】《끝까지 남아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 채 자기 방식대로 삶을 살다간 사람.》〔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위싱턴주 올림피아 인근 세인트 헬렌스 산의 푸른 줄기가 붉은 숨을 몰아쉬던 1980년의 봄, 그곳에는 세상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사는 한 노인이 있었다.
83세의 해리 트루먼 할아버지는 화산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상황임에도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는 1차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고, 미국에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는 주류밀매를 하기도 했다. 그는 반세기 넘게 세인트 헬렌스 산 북쪽에 위치한 스피리트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살았다. 5년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산 아래 자리한 54에이커 땅에서 고양이 열여섯 마리하고만 살고 있었다.
3년 전에는 지붕 위에 쌓인 눈을 치우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당시 의사는 그 나이에 지붕에 올라간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며 나무랐다.
"염병할!" 트루먼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내 나이 여든이요. 여든 말이요. 내 마음먹은 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가 있는 나이라고요."
그 외침은 단순히 노인의 객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조각해온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당당한 권리 선언이었다.
화산 폭발 조짐이 보이자, 관계 당국에서는 인근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트루먼 할아버지는 집에서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대지가 부글거릴 때, 모두가 안전을 찾아 떠나갔다. 하지만 그는 고양이들과 함께 낡은 오두막을 지켰다.
그에게 그 집은 5년 전 먼저 떠난 아내와의 기억이 서린 곳이다. 산은 그의 삶이었고, 오두막은 그의 시간이었고, 그곳의 공기와 물까지 모두 그의 일부였다.
"집이 없어질 거라면 나도 운명을 같이하겠소." 그가 말했다. "이 집을 잃으면 어차피 일주일도 못 가서 나도 죽을 테니."
그 투박한 말 속에 담긴 진심은, 집을 잃는 것이 곧 자아를 잃는 것과 같다는 고백이었다. 삶의 배경이 사라진 무대에서 억지로 연명하기보다, 가장 사랑하는 무대 위에서 마지막 막을 내리겠다는 결연한 선택이었다.
초록색 존 디어 모자를 쓰고 버번 코크 칵테일 잔을 한 손에 든 채 직설적이고 괴퍅한 어투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트루먼 할아버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역 경찰은 할아버지의 안전을 위해 체포도 고려했지만, 결국 그의 나이와 여론의 비난을 고려해 포기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죽는다 해도 참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고, 원하는 것도 다 누려 봤으니까."
1980년 5월 18일 오전 8시 40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은 무너져 내렸고, 뜨거운 용암은 호수와 오두막, 그리고 할아버지의 흔적을 켜켜이 덮었다.
누군가는 비극이라 말하겠지만, 그는 행복했을지 모른다. 타인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해리 트루먼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느냐고.
거대한 화산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 노신사의 고집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인간다운 존엄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세인트 헬렌스 산 어딘가, 깊은 잿더미 아래에서 그는 여전히 버번 코크 한 잔을 기울이며 웃고 있을 것만 같다. 가장 그다운 모습으로, 가장 평온하게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