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해설<손해배상>】《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사안의 요지
일본은 1930년대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거듭된 전쟁으로 노동인력 확보가 급해지자 일본 군수기업들과 협력하여 조직적으로 한국인들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원고들은 이러한 배경 하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이었다.
이들은 1941년부터 1943년 사이에 피고회사의 전신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구 일본제철’이라고 한다)의 제철소에서 노역에 종사하면서 구타와 감금 등에 시달리고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였다.
이후 일본이 패전하였고, 그 무렵 원고들은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 1951. 9. 8.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4조 a항은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1951년부터 한일 양국 간에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교섭이 시작되었다.
14년에 걸친 장기간 교섭 결과 양국 정부는 1965. 6. 22.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의 부속협정 중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무상제공 및 차관 형태로 자금을 제공하여야 하고, 제2조에 따르면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이로써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
한편 원고들 중 일부는 1997. 12. 24. 일본에서 피고회사를 상대로 임금 지급 및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고, 그 판결은 2003. 10. 9. 확정되었다.
원고들은 한국에서 다시 피고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회사는 청구권협정 및 그 후속조치로 인하여 또는 시효 완성으로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심법원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였고, 원심법원도 그 판단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소멸되었을 뿐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고, 피고회사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이하 ‘환송판결’이라고 한다).
환송 후 원심판결은 환송 취지에 따라 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대상판결은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피고회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① 원고들 중 일부가 일본 법원에서 받은 패소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 효력을 미치는지 여부, ② 구 일본제철의 손해배상채무가 피고회사에 승계되는지 여부, ③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 ④ 피고회사가 소멸시효 항변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2. 판시사항
[1] 조약의 해석 방법
[2]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 노동에 종사한 甲 등이 위 회사가 해산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甲 등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3. 판결요지
[1] 조약은 전문ㆍ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다)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의미를 밝혀야 한다.
[2] [다수의견]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甲 등이 위 회사가 해산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주금 주식 회사(이하 '신♡♡주금'이라 한다)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甲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라 한다)인 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의 체결 경과와 전후 사정들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ㆍ민사적 채권ㆍ채무관계를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이는 점,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아니한 점,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甲 등이 주장하는 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 이미 환송판결은 '甲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설령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고, 환송 후 원심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할 때에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된다.
이러한 환송판결의 기속력은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 청구권협정 및 그에 관한 양해문서 등의 문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나 체결 당시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따른 후속 조치 등의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러나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甲 등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甲 등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신♡♡주금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甲 등이 일본 국민인 신♡♡주금을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옳다.
4. 판례 해설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환송판결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의 판결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므로 우리나라에 효력을 미치지 않고(① 쟁점), 구 일본제철의 손해배상채무가 피고회사에 승계되며(② 쟁점),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④ 쟁점).
한편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③ 쟁점)에 관하여는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렸다.
다수의견(7명)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별개의견 1은 이미 2012. 5. 24. 선고된 환송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별개의견 2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대의견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 개인의 소 제기에 따른 권리행사가 제한된다고 보았다.
다만 반대의견은, 청구권협정으로 인하여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되어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국가는 지금이라도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