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나쁜 날】《어제만 해도 화창했던 나의 시간은 무슨 곡절로 변심한 여인처럼 서둘러 내 곁은 떠나가 버린 것일까?》〔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또르와 애견카페로 향했다.
또르를 볼 때마다 허랑방탕한 종자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다.
음식에 대한 애착이 없다.
통상의 강아지들은 먹을 때 건들면, 으르렁거리기 마련이다.
또르는 먹다 말고 내게 달려와 함께 장난을 친다.
심심하면 나에게 와서 다리를 툭툭 건들면서 별별 애교를 다 떤다.
난 열심히 놀아준다.
내가 심심해서 부르면, 이 녀석이 날 개무시 한다.
불러도 오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 그냥 꼬리만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고작이다.
큰 소리로 혼을 내면, 그냥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버린다.
어이가 없다.
타고난 도도함과 거만함이 드러나는 행동거지에다가 아름다운 야생화만 보면 달려가 짓밟는 방탕아의 소양까지 두루 갖추었다.
세상에는 방탕아로 청춘을 불사르다가 나이가 든 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가 복음처럼 퍼져 있지만, 갑질의 황제 또르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래도 또르의 천연덕스럽고, 낙관적인 삶의 태도는 배울 만하다.
애견카페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망했다.
오늘은 운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다.
어제만 해도 화창했던 나의 시간은 무슨 곡절로 변심한 여인처럼 서둘러 내 곁을 떠나가 버린 것일까?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 까닭마저 드러내지 않을 때, 비 속에 남겨진 이는 끝없이 길고 어둠이 드리워진 적막한 터널에 하릴 없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라고 잠시 청승을 떨어 봤다.
또르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비오는 걸 즐기고 있다.
허랑방탕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