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보험계약의 기초가 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 인정 여부 및 그 인정 요건과 해지의 범위-신뢰관계 파괴를 이유로 한 보험계약(계속적 계약)의 해지(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7020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보험자가 보험계약자 측의 부당한 행위 등을 이유로 보험계약의 해지를 구하는 사건]
【판시사항】
[1] 보험계약 존속 중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상대방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보험계약자 측이 입원치료를 지급사유로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이를 지급받았으나 입원치료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경우,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한정 적극) / 보험자에게 위 해지권에 관한 사전 설명의무가 있는지 여부(소극) 및 보험자의 위 해지권 행사를 상법 제663조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호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심사 단계에서 지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을 밝히지 못하고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위 해지권 행사를 보험계약상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 구체적 사안에서 보험자가 위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방법
[3] 보험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가 해당 보험계약의 특약에 관한 것이더라도 그 행위가 중대하여 계약 자체의 유지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 이로 인한 해지의 효력이 보험계약 전부에 미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판결요지】
[1] 보험계약은 장기간의 보험기간 동안 존속하는 계속적 계약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위험의 우려가 있어 당사자의 윤리성과 선의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당사자 사이에 강한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보험계약의 존속 중에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상대방은 그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다.
[2] 보험계약자 측이 입원치료를 지급사유로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이를 지급받았으나 그 입원치료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경우, 입원치료를 받게 된 경위,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입원을 하였는지 여부,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없는 입원 일수나 그에 대한 보험금 액수, 보험금 청구나 수령 횟수, 보험계약자 측이 가입한 다른 보험계약과 관련된 사정, 서류의 조작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험계약자 측의 부당한 보험금 청구나 보험금 수령으로 인하여 보험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보험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면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위 계약은 장래에 대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
한편 이러한 해지권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정한 민법 제2조에 근거한 것으로서 보험계약 관계에 당연히 전제된 것이므로, 보험자에게 사전에 설명할 의무가 있다거나 보험자가 이러한 해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상법 제663조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호를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에 관한 심사를 하는 단계에서 지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을 밝히지 못하고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자가 이러한 해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험계약상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만 이러한 해지권은 보험약관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또 구체적 사안에서 해지사유가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험자가 부당한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거나 기지급 보험금을 반환받는 것을 넘어서 보험계약 자체를 해지하는 것은 자칫 보험계약자 측에 과도한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구체적 사안에서 보험자가 이와 같은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3] 보험계약은 당사자의 윤리성과 선의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특성으로 인하여 당사자 사이에 강한 신뢰관계를 요구한다. 따라서 보험계약이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로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상대방이 그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당사자의 부당한 행위가 해당 보험계약의 주계약이 아닌 특약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중대하여 이로 인해 보험계약 전체가 영향을 받고 계약 자체를 유지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지의 효력은 해당 보험계약 전부에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2. 사안의 요지 및 쟁점
가. 사실관계
⑴ 원고는 피고(보험회사)와 피보험자 및 수익자를 각 원고로 하는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⑵ 원고는 통원치료가 가능함에도 장기간 입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고를 포함한 8개 보험회사로부터 실제 지급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다액의 입원 의료비 등 보험금을 지급받아 편취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⑶ 피고는 원고가 관련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음을 이유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보통 약관 제14조 제1항 제1호, 제3호 등을 근거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해지한다는 통지를 하였다.
이 사건 보험약관 제14조(보상하지 아니하는 손해) 제1항은 피보험자나 계약자의 고의를 원인으로 하여 생긴 손해는 보상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이러한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⑷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존재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⑸ 원심은 원고가 행한 허위·과다 입원은 이 사건 보험계약의 보통약관 제14조 제1항의 ‘피보 험자, 보험계약자가 고의로 보험사고를 발생시킨 경우’에 해당하므로, 같은 조 제2항에 따 라 피고의 계약 해지는 적법하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피고가 신뢰관계 파괴를 원인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표시가 담긴 이 사건 항소이유서가 원고에게 도달한 시점에는 보험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었다고 보았다.
⑹ 대법원은 원고가 행한 허위·과다 입원은 실제 질병은 발생했으나 그로 인한 입원의 필요성이 없음에도 입원치료를 받은 경우이므로, 위 약관상 해지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뢰관계 파괴를 이유로 이 사건 보험계약이 전부 해지되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보아 상고기각하였다.
나. 쟁점 : [신뢰관계 파괴를 이유로 한 보험계약(계속적 계약)의 해지]
⑴ 이 사건의 쟁점은, 보험계약 존속 중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상대방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이다.
⑵ 보험자인 피고가 보험계약자인 원고에게, 원고가 입원치료를 지급사유로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이를 지급받았으나 그 입원치료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보험계약의 해지 통지를 하자,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보험계약의 존재 확인을 구한 사건에서, 부당 지급 보험금의 액수, 관련 형사사건의 경과 등의 사정을 고려하여 보험계약 전부가 해지되었다고 판단하여 상고기각한 사안이다.
3. 보험계약에서 보험계약의 기초가 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5호, 이종욱 P.3-29 참조]
가. 판례의 태도
⑴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계속적 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하였고, 그 근거로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기도 하였다(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1999. 5. 14. 선고 99다106 판결,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59629 판결,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58237 판결 등).
⑵ 보험계약에도 같은 법리를 적용하여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지 문제 된다.
보험계약에 관하여 직접적인 설시를 한 대법원 판례는 없으나, 보험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 법리가 적용된다는 긍정설의 입장에서 심리불속행 기각한 대법원판결이 다수 있다(대법원 2015. 12. 24.자 2015다52541 판결, 대법원 2016. 3. 24.자 2015다75124, 75131 판결, 대법원 2017. 5. 12.자 2017다209303 판결, 대법원 2018. 2. 28.자 2017다283905 판결, 대법원 2019. 3. 14.자 2018다292500 판결, 대법원 2019. 5. 30.자 2019다212358 판결, 대법원 2019. 7. 24.자 2019다227947 판결, 대법원 2019. 7. 25.자 2019다232185 판결, 대법원 2019. 8. 29.자 2019다228551 판결, 대법원 2019. 11. 28.자 2019다260371 판결, 대법원 2020. 2. 6.자 2019다279801 판결, 대법원 2020. 2. 13.자 2019다292408 판결, 대법원 2020. 3. 27.자 2019다297786, 297793 판결 등).
⑶ 한편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의 보험계약자 또는 보험수익자에 대한 신뢰가 깨졌는지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피보험자는 그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례가 있다(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1다101520 판결).
나. 표준약관
2010년 이후 보험 표준약관에 보험사고 유발과 사기적 보험금 청구 등 중대사유로 인한 해지 조항이 도입되었고, 현재 실무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사건 보험계약은 이러한 보험 표준약관이 도입되기 전에 체결되어 약관에 중대사유로 인한 해지 조항이 없었다.
다. 검토
⑴ 보험계약은 그 법적 성질이, 부당한 이득을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사행계약(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1다101520 판결)이고, 정보의 비대칭성과 도덕적 위험의 우려 등의 특성으로 인해 선의계약성이 인정되며(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다49064 판결), 당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한 계속적 계약이므로 신의성실의 원칙(민법 제2조)에 근거하여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할 수 있다.
⑵ 이미 신뢰관계가 파괴된 당사자 간에 지속적으로 배신행위의 우려 등을 가진 채 계속적 계약인 보험계약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해지를 인정하되 그 발생 요건을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남용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는것이 가능하다.
4. 보험계약에서 보험계약의 기초가 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 요건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5호, 이종욱 P.3-29 참조]
가. 판례의 태도
⑴ 약관 면책조황
약관에 사기적 보험금 청구에 대한 면책조항을 둔 경우에 관해서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6603, 56610 판결).
◎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6603, 56610 판결 : 위와 같은 약관조항을 문자 그대로 엄격하게 해석하여 조금이라도 약관에 위배하기만 하면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본래 피해자 다중을 보호하고자 하는 보험의 사회적 효용과 경제적 기능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 된다는 점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으므로, 위 약관조항에 의한 보험금청구권의 상실 여부는 그 취지를 감안하여 보험금청구권자의 청구와 관련한 부당행위의 정도 등과 보험의 사회적 효용 내지 경제적 기능을 종합적으로 비교․교량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보험금청구권자의 청구와 관련한 부당행위의 정도 등과 보험의 사회적 효용 내지 경제적 기능을 종합적으로 비교․교량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법리는 보험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사기적 보험금 청구에 의한 해지의 경우에도 참고할 수 있다.
⑵ 인정사례
대법원 판례는 주로 허위 청구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그 정도가 중대한 경우 사기적 보험금 청구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 대법원 2003. 5. 30. 선고 2003다15556 판결
피고 1은 2000. 2. 하순경 원고로부터 이 사건 화재에 대한 손해사정 권한을 위임받은 손해사정인에게 이 사건 화재로 인한 손해액을 3억 6,800만 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금액을 과대 기재하는 등 허위 내용이 담긴 거래내역서 등을 첨부하여 제출한 사실, 그러나 손해사정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이 사건 화재로 인한 피고 1의 피해액은 161,818,159원인데, 피고 1이 청구한 보험금은 이 금액보다 두 배 이상이나 더 많았던 사실, 피고 1은 원고에게 이 사건 화재로 인한 보험금을 허위로 과다 청구한 사실로 인하여 2001. 3. 23. 대전지방법원에서 사기미수죄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같은 해 5. 29. 그 판결이 확정된 사실, (중략) 위 인정 사실과 이 사건 보험계약의 체결 및 보험금청구 경위, 허위로 기재한 금액이 총청구금액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 등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 1의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위 보험금청구권 상실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피고 1은 이 사건 화재로 인한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면책 주장 인용하였다.
원심판결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주장과 같은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없다.
㈏ 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6다72093 판결
이 사건 각 보험계약의 피보험자인 소외 2가 이 사건 각 보험계약의 보험목적물 중 동산과 관련하여 거래처들로부터 판매금액을 과다하게 기재하여 받은 허위의 거래명세표 등을 보험금청구의 증거서류로 피고들에게 제출하면서 실제 동산에 관한 손해액의 1.7배에 이르는 금원을 손해액으로 하여 보험금을 각 청구한 것은 이 사건 각 보험계약의 약관이 정한 보험금청구권 상실 사유에 해당하므로, 소외 2는 각 약관에 정한 대로 피고들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하게 되고, 그 상실의 효과는 보험목적물 중 동산에 관한 보험금청구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시설에 관한 손해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에도 미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동산에 관한 보험금청구권뿐만 아니라 건물과 시설에 관한 보험금청구권까지 상실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할 수 없다(동산에 관한 보험금청구권은 상실되었다는 취지임).
㈐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6603, 56610 판결
위 공사금액들은 원심이 채택한 △△손해사정법인이 2004년도를 기준으로 하여 조명시설 공사비로 추정한 약 1억 3천만 원과 비교하여 약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그 허위성의 정도도 작다고 할 수 없고, 나아가 위 견적서는 법원 감정인 중 재단법인 ○○종합경제연구원이 감정을 하는 데 기초자료로 삼기까지 한 사정(기록에 의하면, 원심도 위 재단법인 ○○종합경제연구원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하지 아니하였음을 알 수 있다)을 엿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나 소외 1이 손해의 통지나 보험금 청구에 관한 서류에 고의로 사실과 다른 것을 기재함으로써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사기적인 방법으로 과다한 보험금을 청구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⑶ 부정례
대법원 판례 중 부정례로, 증빙서류 구비의 어려움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른 서류를 제출한 사례, 보험목적물의 가치에 대한 견해 차이 등으로 보험목적물의 가치를 다소 높게 신고한 사례가 있다.
㈎ 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6다29105 판결
피보험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서 실손해액에 관한 증빙서류 구비의 어려움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른 서류를 제출하거나 보험목적물의 가치에 대한 견해 차이 등으로 보험목적물의 가치를 다소 높게 신고한 경우 등까지 이 사건 약관조항에 의하여 보험금청구권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원심은 이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하여, 원고가 제출한 판매사실확인서 등에 기재된 판시 기계들의 대금은 165,000,000원인데, 실제 감정가는 153,000,000원으로서 그 차이가 크지는 않은 점, 피고의 약관에 의하면 피고 및 피고의 손해사정인은 원고가 제출한 서류에 기재된 금액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감정 내지 시장조사 등을 통하여 실제 손해액을 확정할 수 있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피고의 손해사정인에게 판시 기계들의 가액과 관련하여 그 판시와 같이 일부 과장된 자료를 제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약관조항에 따라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이 들고 있는 위와 같은 사정들에 원고가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소훼된 목적물 자체를 허위로 기재한 서류를 제출하지는 않은 점을 더하여 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33496 판결
이 사건 보험목적물인 건물 전부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취지의 건축물공사비 개산서가 허위로 작성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또 원고가 피고 측 손해사정인의 견적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의 개산서나 견적서 등을 제출하였더라도, 이는 피고 측 손해사정인의 요구로 제3자로 하여금 작성하게 한 것으로서 현장조사를 제대로 거치지 아니한 채 건축물대장등 서류만을 근거로 작성되었던 것이어서 그 액수의 차이는 보험목적물의 평가방법상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일 뿐이므로,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가 고의로 위 개산서 등에 허위의 기재를 하여 피고에게 제출함으로써 이 사건 보험약관 제28조가 규정하고 있는 보험금청구권의 상실사유인 피고 회사의 손해조사업무를 방해한 때에 해당하게 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음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⑷ 검토
사기적 보험금 청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추출할 수 있다.
㈎ 적극적 요건으로는 ① 고의, ② 부당 청구의 중대성이 해당한다.
즉, 보험계약자 측의 고의와 부당 청구의 중대성이 인정돼야 해지를 인정할 수 있다.
㈏ 소극적 요건으로는 ③ 보험자의 심사의 용이성, ④ 보험계약자 측의 불이익이 해당한다.
즉, 보험자가 용이하게 사기적 보험금 청구임을 알 수 있었다거나, 해지로 인하여 입게 될 보험계약자 측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면 해지를 부정할 여지가 있다.
㈐ 그런데 여기서 ③ 요건과 ④ 요건은 독자적인 요건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다.
③ 요건을 명시적으로 소극적 요건으로 본다면 보험자가 해지권 상실의 우려를 이유로 정당한 보험금 청구에 대해서도 심사를 지연하거나 지급을 거부할 우려가 있다.
④ 요건 역시 전반적인 이익형량에서 고려할 것이지, 보험자의 해지권을 제한하는 독자적인 요건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러므로 ③ 요건과 ④ 요건은 별도의 독자적인 요건으로 보지 않고, 제반 사정으로 참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① 요건과 관련해서는, 단순한 오기나 착오에 의한 경우, 보험금의 협상을 위한 경우에는 고의가 부정될 수 있다.
② 요건과 관련해서는, 기망으로 인해 보험자의 보험금 지급 여부에 관한 결론이 달라지는지 여부, 부당 청구액의 액수, 허위 자료 작출 여부 등의 사정이 고려될 수 있다.
이 사건과 같은 허위․과다입원을 이유로 한 보험금 청구에서 ① 요건과 ② 요건을 파악하는 데에는, 입원치료를 받게 된 경위,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입원을 하였는지 여부,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없는 입원 일수나 그에 대한 보험금 액수, 보험금 청구나 수령 횟수, 보험계약자 측이 가입한 다른 보험계약과 관련된 사정, 서류의 조작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 가령, 보험계약자 측이 처음부터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허위․ 과다입원을 한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허위의 서류를 조작하지도 않았으며, 부당입원 일수도 많지 않고 보험금 부당 청구액도 크지 않은 경우에는 해지를 부정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5. 보험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당사자의 부당한 행위가 해당 보험계약의 주계약이 아닌 특약에 관한 것일 때, 해지의 범위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5호, 이종욱 P.3-29 참조]
⑴ 보험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당사자의 부당한 행위가 해당 보험계약의 주계약이 아닌 일부 특약에 관한 것일 때, 보험계약 전부의 해지를 인정할 것인지, 직접 관련된 특약에 대해서만 일부 해지를 인정할 것인지 문제 된다.
보험계약에서 주계약과 특약, 특약과 특약 사이에 가분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일부 해지를 인정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일 뿐, 가분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해지가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추심권자가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 보험계약에 가분성이 있다면 일부 해지가 가능하다고 본 사례(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5다50286 판결)는 보험계약자 측의 채권자가 집행을 위해 해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다른 국면이라고 볼 수 있고, 보험목적 중 일부에 대해서만 고지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 그 해당 보험목적에 대해서만 보험계약을 일부 해지할 수 있다고 본 사례(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다8599 판결)는, 고지의무 위반은 보험계약의 선의성이 아닌 기술성이 문제 된다는 점에서 사안이 다르다.
대법원 판례 중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전부 해지를 인정한 사례(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9다249640 판결)도 있는데, 보험계약의 선의성에 중점을 두어 전부 해지를 인정한 것으로 선해할 여지가 있다.
이 사건 보험계약에도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의 법리가 적용된다.
⑵ 이 사건 보험금 청구와 관련한 부당 지급 보험금의 액수, 관련 형사사건의 경과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의 이 사건 보험금 청구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보험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원고의 위 행위는 중대하여 이로 인해 보험계약 전체가 영향을 받고 계약 자체를 유지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해지의 효력은 이 사건 보험계약 전부에 미친다.
⑶ 대상판결(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7020 판결)은 보험계약에도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의 법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허위․과다입원을 이유로 한 보험금 청구의 경우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 요건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설시하였다.
또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당사자의 부당한 행위가 보험계약의 주계약이 아닌 특약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보험계약 전체가 영향을 받고 계약 자체를 유지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원칙적으로 해지의 효력이 보험계약 전부에 미친다는 법리를 최초로 판시하였다.
대상판결(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7020 판결)은 보험계약의 체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고가 허위·과다 입원을 하여 실제 지급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다액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것이 문제된 경우다.
피고는 보험계약 자체의 무효를 주장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7020 판결)은 신뢰관계의 파괴를 이유로 보험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사례이다.
기존에도 계속적 계약과 관련하여 신뢰관계 파괴를 이유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사례들로는 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다48165 판결 등이 있다.
보험계약의 해지는 장래효만 인정된다.
6.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561-562 참조]
⑴ 일반적으로 보험사기사건(과다보험가입)과 관련하여서는, 보험자가 보험계약이 민법 제103 조 위반으로 무효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23858 판결).
민법 제103조 위반이 인정되어 보험계약이 무효가 되는 경우, 설령 그 보험계약이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이나 제3자를 위한 계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험자는 보험수익자에게 급부한 것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6다255125 판결).
⑵ 대상판결은 보험계약의 체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고가 허위·과다 입원을 하여 실제 지급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다액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것이 문제된 경우다.
피고는 보험계약 자체의 무효를 주장할 수는 없다.
⑶ 대상판결은 신뢰관계의 파괴를 이유로 보험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사례이다.
기존에도 계속적 계약과 관련하여 신뢰관계 파괴를 이유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사례들로는 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다48165 판결 등이 있다.
보험계약의 해지는 장래효만 인정된다.
7. 계약관계의 해지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970-973 참조]
가. 의의
⑴ 당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하여 계속적 계약관계를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⑵ 임대차계약, 고용계약, 위임계약 등에서와 같이 계약으로부터 생기는 채권·채무의 내용을 이루는 급부가 일정 기간 계속하여 행하여지게 되는 경우 이는 이른바 계속적 계약에 해당한다(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등 참조).
⑶ 개별 사안에서 계약당사자 사이의 약정이 계속적 계약인지 여부는 계약 체결에 이르게 된 경위와 사정, 당사자의 의사,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이행의 형태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20다297430 판결).
나. 법정해지권의 발생
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임대차에 관하여 제640조 등)
⑵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해지권
① 제544조 내지 제546조가 계속적 계약의 해지에도 적용되는지 문제 된다.
② 긍정설은 민법이 각종의 전형계약에서 해지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법정해지권의 발생을 인정하여야 할 경우를 망라하고 있지 않으므로 계속적 계약에서도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일반적으로 해지권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반면 부정설은 제544조 내지 제546조에는 해지에 관하여 언급이 없고, 민법은 그 조항들이 유추적용 되어야 할 만한 경우에 관하여는 각종의 계약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주로 쌍무계약의 상환적 채무를 염두에 둔 제544조 내지 제546조를 해지에 유추적용 하는 것은 1회의 이행지체와 최고만으로 계약의 소멸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고 한다.
③ 계속적 계약에서도 민법이 각종의 계약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외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는 제544조 내지 제546조를 유추적용 하여 해지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가 주된 채무의 불이행의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약의 해지 또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두5948 판결).
⑶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권
① 판례는 이를 긍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계속적 보증에 관하여 대법원은 “계속적 보증계약에 있어서 보증인의 주채무자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등 보증인으로서 보증계약을 해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보증인으로 하여금 그 보증계약을 그대로 유지존속케 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그 계약해지로 인하여 상대방인 채권자에게 신의칙상 묵과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하는 등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보증인은 일방적으로 이를 해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계속적 보증계약을 해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보증을 하게 된 경위, 주채무자와 보증인간의 관계, 보증계약의 내용, 채무증가의 구체적 경과와 채무의 규모, 주채무자의 신뢰상실 여부와 그 정도, 보증인의 지위변화, 주채무자의 자력에 관한 채권자나 보증인의 인식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37937 판결 등).
② 나아가 최근의 대법원 판례는 계속적 공급계약의 해지가 문제 된 사안에서도 “계속적 계약은 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으로서, 당해 계약의 존속 중에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상대방은 그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다 할 것이다. 한편 계속적 계약 중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일정 규모의 설비가 필요하고 비교적 장기간의 거래가 예상되는 계속적 공급계약의 해지에 있어서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관계, 공급계약의 내용, 공급자가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설치한 설비의 정도, 설치된 설비의 원상복구 가능성, 계약이 이행된 정도, 해지에 이르게 된 과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59629 판결 :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乙 도시가스 주식회사와 체결한 도시가스 공급계약이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 파괴 등을 이유로 한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해지에 의하여 적법하게 해지되었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乙 회사는 계약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아파트에 도시가스를 공급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신뢰를 전제로 계약 직후 상당한 비용을 들여 아파트 외부 경계까지 도시가스 배관공사를 하고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 아파트 단지 내 정비사업비용을 지급한 점,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역시 아파트 부지에 정압기를 설치하는 것에 동의하는 내용의 부지사용동의서를 작성해 주는 행위 등을 통하여 乙 회사에 위 계약이 상당기간 지속되리라는 점에 대한 신뢰를 부여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를 이유로 하는 계약의 해지가 인정된다고 하기 어려운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결에 계속적 계약의 해지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③ 한편,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의 의무 중 여러 부분이 이미 이행되고 상당한 기간이 흐른 경우 상대방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킬 때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에 따른 효과를 장래에 향하여 발생시키는 제550조의 ‘해지’만 가능할 뿐 제548조에서 정한 ‘해제’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20다297430 판결).
다. 합의해지
계약의 합의해지는 계속적 채권채무관계에서 당사자가 이미 체결한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 계약의 합의해지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70884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하므로 계약당사자 일방이 계약해지에 관한 조건을 제시한 경우 그 조건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43044 판결, 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8다1477 판결 등 참조).
한편 당사자 사이에 계약을 종료시킬 의사가 일치되었더라도 계약 종료에 따른 법률관계가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경우 그러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고, 이 경우 합의해지가 성립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1994. 9. 13. 선고 94다17093 판결, 대법원 2004. 6. 11. 선고 2004다11506 판결,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이 사건 계약을 합의해지하는 경우 이행보증금의 귀속은 당사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그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이 사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다) 등 참조].
8. 사정변경의 원칙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15-22 참조]
가. 의의
법률행위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인해 현저히 변경되고, 그리하여 당초의 내용대로 그 효과를 강제하는 것이 당사자 일방에게 가혹하게 된 경우, 그 내용을 변경된 사정에 맞게 수정하거나 또는 그 법률행위를 해소시킬 수 있다는 원칙을 말한다.
나. 일반원칙으로서 ‘사정변경의 원칙’ 인정 여부
⑴ 문제점
민법은 개별적인 계약 유형에 따라 계약 체결 후의 사정 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해제등 계약관계의 조정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557조, 제628조 등. 한편 신원보증법 제4조, 제5조도 참조). 문제는 이러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일반원칙으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⑵ 판례의 태도
종래에는 대체로 일시적 계약관계에서는 부정하고 계속적 계약관계에서는 긍정하였으나, 최근에는 일시적 계약관계에서도 이를 긍정하는 추세이다.
나아가 최근의 판례는 “계약을 체결할 때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 발생함으로써 야기된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신의성실 원칙의 파생원칙으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즉,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76338 판결 등 참조).
다. 일시적 계약관계
⑴ 매매계약
대법원은 매매계약에서 사정변경으로 인한 해제가 문제 된 사안에서도 일반론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다만, 이 사건의 경우 결론적으로 사정변경으로 인한 해제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함). 그 이전에 대법원 1963. 9. 12. 선고 63다452 판결은 “매매계약을 맺은 때와 그 잔대금을 지급할 때와의 사이에 장구한 시일이 지나서 그동안에 화폐가치의 변동이 극심하였던 탓으로 매수인이 애초에 계약할 당시의 금액표시대로 잔대금을 제공한다면 그동안에 앙등한 매매 목적물의 가격에 비하여 그것이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이행이 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민법상 매도인으로 하여금 사정변경의 원리를 내세워서 그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라고 판시하여 사정변경으로 인한 해제권을 부정하였지만, 그 뒤 대법원 1991. 2. 26. 선고 90다19664 판결은 “원심이 판시와 같은 사실에 터 잡아 비록 이 사건 매매계약이 체결된 후에 9년이 지났고 시가가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피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할만한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도 기록에 비추어 옳게 수긍이 된다.”라고 하여 사정변경으로 인한 해제권도 인정될 수 있음을 전제로 판시하였다].
⑵ 특정채무에 대한 보증계약
대법원은 계속적 보증의 경우와 달리 특정채무에 대한 보증의 경우에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권을 인정하지 않고(대법원 2006. 7. 27. 선고 2004다30675 판결), 신의칙에 의한 책임의 감경 또한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04. 1. 27. 선고 2003다45410 판결 : 이른바 계속적 보증의 경우뿐만 아니라 특정채무를 보증하는 일반 보증의 경우에 있어서도 채권자의 권리 행사가 신의칙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때에는 보증인의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단 유효하게 성립된 보증계약에 따른 책임을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초하여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 보증인이 구상보증인에게 책임을 물은 사안에서 원심은, 원고의 채권 즉 구상금채권이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약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 사건 소가 제기됨으로써 그 사이에 다액의 지연이자가 발생하였고 특히 1998. 1.경부터 1999. 8.경까지는 IMF사태의 영향으로 연 21% 내지 27%의 높은 연체이율이 적용되었다는 점, 피고는 보증 당시 주채무자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보증하게 되었다는 점, 연대보증인 중 1인이 그 후 사망하고 그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피고 사이의 내부적 구상관계에서 부담부분이 증가되게 되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의 보증책임을 25% 감액하였는데, 대법원은 원고(보증보험회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환송 하였다).
다. 계속적 계약관계
⑴ 대법원은 계속적 보증의 경우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권 및 신의칙에 의한 책임의 감경을 인정하고 있다.
⑵ 사용대차에서 제613조 제2항에 정하여진 ‘사용수익에 충분한 기간’이 경과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사정변경의 원리를 고려하고 있다.
⑶ 보험계약은 장기간의 보험기간 동안 존속하는 계속적 계약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위험의 우려가 있어 당사자의 윤리성과 선의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당사자 사이에 강한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보험계약의 존속 중에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상대방은 그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다. 이러한 해지권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정한 민법 제2조에 근거한 것으로서 보험계약 관계에 당연히 전제된 것이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7020 판결 참조. 이 판결은 나아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보험계약자 측이 입원치료를 지급사유로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이를 지급받았으나 그 입원치료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경우, 입원치료를 받게 된 경위,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입원을 하였는지 여부, 입원치료의 필요성이 없는 입원 일수나 그에 대한 보험금 액수, 보험금 청구나 수령 횟수, 보험계약자 측이 가입한 다른 보험계약과 관련된 사정, 서류의 조작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험계약자 측의 부당한 보험금 청구나 보험금 수령으로 인하여 보험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보험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면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위 계약은 장래에 대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 한편 이러한 해지권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정한 민법 제2조에 근거한 것으로서 보험계약 관계에 당연히 전제된 것이므로, 보험자에게 사전에 설명할 의무가 있다거나 보험자가 이러한 해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상법 제663조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호를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에 관한 심사를 하는 단계에서 지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을 밝히지 못하고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자가 이러한 해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험계약상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만 이러한 해지권은 보험약관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또 구체적 사안에서 해지사유가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험자가 부당한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거나 기지급 보험금을 반환받는 것을 넘어서 보험계약 자체를 해지하는 것은 자칫 보험계약자 측에 과도한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구체적 사안에서 보험자가 이와 같은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⑷ 대법원은 임대차계약을 사정변경을 이유로 해지할 수 있는지 문제된 사안에서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권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하였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 甲이 주택건설사업을 위한 견본주택 건설을 목적으로 임대인 乙과 토지에 관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대차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위 목적을 명시하였는데,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가설건축물 축조신고 반려통보 등을 받고 위 토지에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게 되자, 甲이 乙을 상대로 임대차계약의 해지 및 임차보증금 반환을 구한 사안에서, 견본주택건축은 위 임대차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인데,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어 甲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고, 위 임대차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甲과 乙 사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위 임대차계약은 甲의 해지통보로 적법하게 해지되었고, 乙이 甲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
⑸ 대법원은 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에 관하여도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를 인정하였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76338 판결 : 갑 등이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을 주식회사와 미국 비숙련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한 후 이민허가를 받고 이에 따라 을 회사에 국외알선 수수료를 모두 지급하였는데, 주한 미국대사관이 갑 등에 대한 이민비자 인터뷰에서 추가 행정검토(Administrative Processing) 및 이민국 이송(Transfer in Progress) 결정을 하여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사안에서, 위 계약은 성립의 기초가 되었던 비자발급 절차나 기간에 관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었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전혀 예견할 수 없었으며, 계약을 유지해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갑 등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사례).
라. ‘사정변경의 원칙’의 요건
⑴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 사정이 계약 성립 후 현저히 변경될 것
①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을 가리키고,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원심이 인정한 사실과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매매계약은 일반 매수예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피고의 공개매각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서, 공개매각조건에는 이 사건 토지가 개발제한구역에 속해 있고, 이 사건 토지의 매각 후 행정상의 제한 등이 있을 경우 피고가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으며, 이 사건 매매계약에서도 피고는 이 사건 토지의 인도 후에 발생한 일체의 위험부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을 뿐 당시 이 사건 토지상의 건축가능 여부에 관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토지상의 건축가능 여부는 원고가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게 된 주관적인 목적에 불과할 뿐 이 사건 매매계약의 성립에 있어 기초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 후 이 사건 토지가 공공공지에 편입됨으로써 원고가 의도한 음식점 등의 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변경은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할 만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할 것이고, 이러한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원고가 의도한 주관적인 매수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어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매매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할 것이다.
②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 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⑵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사정변경을 예견할 수 없었을 것
① 사정변경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추상적ㆍ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계약의 유형과 내용, 당사자의 지위, 거래경험과 인식가능성, 사정변경의 위험이 크고 구체적인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때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당사자들이 사정변경을 예견했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다른 내용으로 체결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견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76338 판결).
② 경제상황 등의 변동으로 당사자에게 손해가 생기더라도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사정변경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없다(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다85881 판결 :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후 위와 같은 도시관리계획 결정이 고시됨으로써 원고가 의도한 주택개발사업이 사실상 곤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토지매매계약 체결 후 관련 법령의 개정 등으로 인하여 새로운 건축상의 제한이 생기거나 기존의 건축상의 규제가 없어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위험은 통상적으로 거래상 매수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 밖에 기록에 나타난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한다고 볼 수 없다).
③ 특히 계속적 계약에서는 계약의 체결 시와 이행 시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예상할 수 없었던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위 계약을 해지하려면 경제적 상황의 변화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⑶ 사정변경을 주장하는 자에게 사정변경에 대해서 귀책사유가 없을 것
⑷ 계약 내용대로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길 것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마. 사정변경의 원칙의 효과
⑴ 계약의 수정권
⑵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권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의 의무 중 여러 부분이 이미 이행되고 상당한 기간이 흐른 경우 상대방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킬 때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에 따른 효과를 장래에 향하여 발생시키는 제550조의 ‘해지’만 가능할 뿐 제548조에서 정한 ‘해제’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20다297430 판결 : 甲 등이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乙 주식회사와 미국 비숙련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한 사안).
사. ‘재교섭조항’이 있는 경우
⑴ 재교섭조항의 의의
계약체결 후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쌍방이 재교섭을 거쳐 계약의 존속 여부 및 내용을 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말한다. 특히 계속적 계약에서 자주 활용된다. 계속적 계약에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미처 계약에 반영하지 못했던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⑵ 재교섭사유
재교섭사유는 개별 계약에서 당사자가 임의로 정하는 것이므로 사안별로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
⑶ 재교섭의무
재교섭사유가 발생하였다면 당사자에게는 신의성실에 따른 재교섭의무가 발생한다.
신의성실에 따른 재교섭의무는 ① 스스로 재교섭을 시도하거나 상대방의 재교섭 시도에 응할 것, ② 재교섭 과정에서 부당하게 재교섭을 파기하지 않을 것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물론 재교섭의무가 새로운 합의를 할 의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교섭의무 위반이 있으면 손해배상, 계약해제 또는 해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강제이행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적어도 교섭 그 자체를 강제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⑷ 재교섭이 결렬된 경우
㈎ 원칙
재교섭이 결렬되면 본래 계약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법원은 이를 정당화하는 법조항이나 계약조항이 없는 이상 본래 계약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일방적으로 계약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 만약 재교섭 결렬 시 제3자에게 계약내용을 결정하게 하고 싶다면 그에 관한 조항을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예외
계약에 명문의 조항이 없다고 하여 법원의 관여가 일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가 묵시적으로 이러한 여지를 남겨 놓을 수도 있고, 신의칙상 법원의 계약형성이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甲 회사가 온라인연합복권 운영기관인 乙 은행과, 甲 회사가 온라인연합복권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용역을 제공하는 대가로 乙 은행이 온라인연합복권 매회 매출액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계약조항에서 ‘관계 법령에 의한 통제가격, 정부 등의 규제가격, 인허가 또는 고시가격, 세법 등이 변동된 경우 상호협의하여 수수료를 조정할 수 있고, 변경된 수수료의 적용시기는 협의하여 정한다.’고 규정한 사안에서, “이 사건 계약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위 규정에 따른 수수료율 조정사유가 발생하였음에도 수수료율 조정을 위한 협의 결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법원이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범위에서 위 계약조항에 따라 변경·적용할 수수료율을 정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다44368 판결).
대법원은 이 경우 법원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하여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은데, 위 계약이 정부의 강한 규제의 대상이 되는 복권업에 관련되어 있음을 고려하여, 위 계약조항에는 재교섭 결렬 시 법원이 정하는 바에 따르기로 하는 당사자의 의사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1993. 3. 23. 선고 92다39334, 39341(병합) 판결은, ‘대부기간은 1985. 5. 17.부터 1995. 5. 16.까지 10년간으로 하되 대부기간 완료 후에도 피고가 대부기간의 연장을 요구할 때는 원고는 이의 없이 대부기간을 연장한다(제2조). 임대료는 연 3,500,000원으로 하되(제3조 제1항) 3년간을 기준으로 3년이 경과한 후 물가상승요인 및 공공기관의 공인인상요금의 비율에 의거 원고와 피고의 합의에 의하여 인상지급한다(제3조 제3항).’고 약정한 사안에서, “위 임료증액에 관한 약정은 임대차기간이 10년으로 장기간이어서 그 기간 중에 물가상승 등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약정한 임료가 상당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 대비하여 민법 제628조와 같은 취지에서 임대인인 원고에게 위 10년의 임대차기간 중 3년이 지났을 때마다 그 다음 3년간의 임료를 상호 합의에 의하여 증액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임차인인 피고에 있어서는 3년간의 기간 중에는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약정된 임료가 상당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도 임료인상을 할 수 없도록 하고 그 3년의 고정기간이 지난 후에도 원고의 일방적인 임료인상요구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상당한 액수로 곧바로 임료가 변경되는 것은 아니고 원고와 피고에게 적정한 임료액의 합의를 위하여 신의에 따라 성실히 노력하도록 하여 그 인상금액에 관하여 합의가 성립되면 그것이 상당한 금액인 여부에 관계없이 이에 의하는 것이고, 한편 임료의 인상요인이 생겼는데도 임차인이 인상을 전혀 거부하여 합의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인상에 관한 합의가 없었다 하여 종전의 임료에 의하도록 하는 것은 신의칙이나 형평에 반한다고 할 것이므로 인상액에 관한 협의가 있었으나 합의가 성립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임료의 증액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물가상승요인 등을 고려하여 법원이 인정하는 상당한 액수의 임료에 의하는 취지의 약정이라고 볼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는데, 이 역시 재교섭 결렬 시 법원의 개입 근거를 당사자의 묵시적인 의사에서 찾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임대인이 제628조에 따라 장래에 대한 차임의 증액을 청구하는 경우(형성권) 객관적으로 상당한 차임액이 얼마인지는 결국 법원이 이를 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점도 위 사안에서 법원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9. 계속적 계약의 해지 (= 계약위반과 사정변경 및 합의해지)
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ㆍ해지의 요건
⑴ 대법원 판례
◎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①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②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③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라 함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으로서,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을 포함되지 않는다.
⑵ 판례의 태도
위 판례들이 서로 다른 요건을 설시한 것은 아니다.
위 요건 ①, ②는 실질적으로 요건 ③을 판단하는 하나의 사정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사정변경 해제ㆍ해지의 인정 여부는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나. 계속적 계약의 종료 사유
⑴ 우선 당사자들이 계약에서 정한 해지사유가 발생하거나 일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 상대방은 일정한 요건하에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45553, 45560, 45577 판결 등).
⑵ 그 외에도 계속적 계약에서는 그 특수성에 기인한 해지권이 인정된다. 신뢰관계가 파괴되는 등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거나 계속적 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 성립 당시의 사정에 현저한 변경이 생긴 경우에는 일정한 요건하에 계약 해지를 인정한다(사정변경의 원칙).
실익이 크다.
다. 계속적 계약과 사정변경의 원칙
⑴ 사정변경의 원칙
①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칙이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다44368 판결, 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다85881 판결,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1다5578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등. 다만 이들 판결에서는 결론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하는 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② 계속적 채권관계에서도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이른바 KIKO 계약에 관한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휘트니스 클럽의 운영 중단에 관한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등).
③ 다만 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그 요건을 충족하였는지를 검토하였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이유로 계약의 해제나 해지를 인정한 예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에서 견본주택 건축을 목적으로 체결된 임대차계약에서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여 대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실천적인 법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⑵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의 해지 사유로서의 사정변경의 원칙
계속적 채권관계가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서 지속된다면, 계약기간 중에 당사자들이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참조). 따라서 사정변경의 원칙은 일시적, 일회적 계약보다는 계속적 계약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는 대상판결에서 원고가 주장한 여러 해지 사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정변경의 요건으로는 ① 계약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③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 요구된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등). 각각의 요건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
우선 변경된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 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에서도 “환율의 변동가능성은 이 사건 각 통화옵션계약에 이미 전제된 내용이거나 그 자체이고, 원고와 피고는 환율이 각자의 예상과 다른 방향과 폭으로 변동할 경우의 위험을 각자 인수한 것이지,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됨을 계약의 기초로 삼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경우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사정변경에서의 예견가능성은 당사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이 발생하였는지보다는 가정적인 원인과 결과를 고려하여 당사자가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것을 예견하였다면 계약을 그대로 체결하였을 것인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장기간 계약을 예정하는 계속적 계약의 당사자들은 어느 정도 사정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고 그 위험을 인수하므로, 경미한 불균형이 발생한 정도로는 현저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라. 계속적 계약의 합의해지요건
⑴ 계속적 계약의 합의해지
계속적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은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것을 합의할 수 있다. 합의해지는 이미 체결한 계약을 종료하는 또 다른 계약으로, 그 사유는 제한이 없다.35)
특별한 사유가 없이 당사자들이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하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는 물론, 채무불이행이나 사정변경 또는 신뢰관계 파괴와 같이 해지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기존 계약에 정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합의로써 기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판례는 계약의 합의해제 또는 합의해지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고 하여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핀다(대법원 1994. 9. 13. 선고 94다17093 판결, 대법원 1998. 8. 21. 선고 98다17602 판결, 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70884 판결,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5336, 5343 판결 등). 더 나아가 계속적 계약을 해지하기로 합의하는 때에는 계속적 계약의 종료에 따른 법률효과를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관계의 청산과 합의해지의 요건
계속적 계약이 종료되면 계약은 장래를 향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 이미 이행한 계약의 원상회복이 아니라, 그동안 계약으로 형성된 당사자들의 관계를 청산하여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사전 또는 사후 약정이나 개별 법령가맹사업거래의공정화에관한법률 제10조 제1항 제4호, 대규모유통업에서의거래 공정화에관한 법률 제16조 제1호 등 참조)에 따라 청산의무가 발생한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라는 것은 단순히 계약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 즉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계약 자체를 해지하는 것보다 계약으로 형성된 이해관계들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묵시적 해지합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계약 종료에 따른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라고 하면서 합의해지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도 있다(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
마. 계속적 계약의 해지 가능 여부
⑴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의 기초가 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 판례의 태도
①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계속적 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하였고, 그 근거로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기도 하였다(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1999. 5. 14. 선고 99다106 판결,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59629 판결,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58237 판결 등).
② 계속적 계약인 보험계약에도 같은 법리를 적용하여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지 문제 된다.
보험계약에 관하여 직접적인 설시를 한 대법원 판례는 없으나, 보험계약에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 법리가 적용된다는 긍정설의 입장에서 심리불속행 기각한 대법원판결이 다수 있다(대법원 2015. 12. 24.자 2015다52541 판결, 대법원 2016. 3. 24.자 2015다75124, 75131 판결, 대법원 2017. 5. 12.자 2017다209303 판결, 대법원 2018. 2. 28.자 2017다283905 판결, 대법원 2019. 3. 14.자 2018다292500 판결, 대법원 2019. 5. 30.자 2019다212358 판결, 대법원 2019. 7. 24.자 2019다227947 판결, 대법원 2019. 7. 25.자 2019다232185 판결, 대법원 2019. 8. 29.자 2019다228551 판결, 대법원 2019. 11. 28.자 2019다260371 판결, 대법원 2020. 2. 6.자 2019다279801 판결, 대법원 2020. 2. 13.자 2019다292408 판결, 대법원 2020. 3. 27.자 2019다297786, 297793 판결 등).
③ 한편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의 보험계약자 또는 보험수익자에 대한 신뢰가 깨졌는지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피보험자는 그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례가 있다(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1다101520 판결).
㈏ 검토
① 보험계약은 그 법적 성질이, 부당한 이득을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사행계약(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1다101520 판결)이고, 정보의 비대칭성과 도덕적 위험의 우려 등의 특성으로 인해 선의계약성이 인정되며(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다49064 판결), 당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한 계속적 계약이므로 신의성실의 원칙(민법 제2조)에 근거하여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를 인정할 수 있다.
② 이미 신뢰관계가 파괴된 당사자 간에 지속적으로 배신행위의 우려 등을 가진 채 계속적 계약인 보험계약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해지를 인정하되 그 발생 요건을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남용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는것이 가능하다.
③ 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7020 판결은 보험계약에도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중대사유에 의한 해지의 법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허위․과다입원을 이유로 한 보험금 청구의 경우 해지를 인정할 수 있는 요건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설시하였다.
또한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당사자의 부당한 행위가 보험계약의 주계약이 아닌 특약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보험계약 전체가 영향을 받고 계약 자체를 유지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원칙적으로 해지의 효력이 보험계약 전부에 미친다는 법리를 최초로 판시하였다.
위 대법원 2019다267020 판결은 신뢰관계의 파괴를 이유로 보험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사례이다.
④ 기존에도 계속적 계약과 관련하여 신뢰관계 파괴를 이유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사례들로는 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다48165 판결 등이 있다.
보험계약의 해지는 장래효만 인정된다.
⑵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연히 해지가 인정되어야 함
㈎ 문제의 소재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당사자 사이에 소송이 다수 진행되는 등 분쟁이 발생한 상황인데도 계약의 이행을 강제시키는 하급심 판결들이 다수 존재한다.
공기업이 입찰을 진행하여 A업체와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B업체가 A업체 제출 서류의 하자를 문제 삼으며 계약무효확인, 낙찰지위확인 등을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하는 경우 상대방과 계약 체결하기 싫다는 의사가 분명한데 분쟁의 상대방에게 공사를 맡기도록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가, 근대 민법의 원칙 중 계약자유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 있다.
㈏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58237 판결의 판시
연예인전속계약 성질상 계약 목적 달성 위해 고도의 신뢰관계 유지가 필수이다.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이다.
계약 당사자 상호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면 이 사건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58237 판결의 이러한 법리는 전속계약 이외에도 계속적 계약관계에 있어서의 계약 체결 및 해지에 관하여 계약자유의 원칙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확장․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 계속적 계약인지 여부의 판단 기준 및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 알선계약에 대한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제 가부(대법원 2022. 3. 11. 선고 2020다297430 판결)
⑴ 임대차계약, 고용계약, 위임계약 등에서와 같이 계약으로부터 생기는 채권·채무의 내용을 이루는 급부가 일정 기간 계속하여 행하여지게 되는 경우 이는 이른바 계속적 계약에 해당한다. 개별 사안에서 계약당사자 사이의 약정이 계속적 계약인지 여부는 계약 체결에 이르게 된 경위와 사정, 당사자의 의사,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이행의 형태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⑵ 갑 등이 해외이주 알선업체인 을 주식회사와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알선업무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을 회사의 업무 수행에 따라 갑 등이 미국 노동부의 노동허가, 이민국의 이민허가를 받았으나 이후 추가 행정검토 결정 등이 내려지면서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 절차가 진척되지 않았고, 이에 갑 등이 을 회사를 상대로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 등을 주장하며 국외알선 수수료의 반환을 구한 사안에서, 을 회사는 상당히 장기간 동안 지속되는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 절차가 단계적으로 원활하게 진행되어 갑 등이 비숙련 취업이민을 위한 비자를 발급받고 성공적으로 미국에 취업이민할 수 있도록 계약에서 정한 여러 업무를 계속해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바, 이러한 의무를 정한 계약의 체결 경위, 당사자들의 의사,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이행의 형태와 방법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위 계약은 계속적 계약에 해당하므로, 위 계약에서 정한 을 회사의 업무 중 여러 부분이 이미 이행되고 상당한 기간이 흐른 경우 갑 등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킬 때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에 따른 효과를 장래에 향하여 발생시키는 민법 제550조의 ‘해지’만 가능할 뿐 민법 제548조에서 정한 ‘해제’를 할 수는 없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10. 계속적 계약과 계약이행보증금
가. 계약이행보증금의 법적 성질
⑴ 초기 판례 (= 위약벌)
초기 상당수의 판례들은 계약이행보증금을 일종의 위약벌로 보았다. 특히 도급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의 약정이 있으면, 지체상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계약이행보증금은 위약벌 또는 제재금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대법원 1989. 10. 10. 선고 88다카25601 판결, 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다11436 판결, 대법원 1997. 10. 28. 선고 97다21932 판결 등).
⑵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여부 (= 의사해석의 문제)
그러나 대법원이 도급계약서에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이 함께 규정되어 있는 것만으로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이래(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35771 판결), 계약이행보증금의 성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는 판결들이 이어졌고(대법원 2001. 1. 19. 선고 2000다42632 판결, 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1다14689 판결,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2다73852 판결 등), 현재 다수의 판례들은 계약이행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는 도급계약서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 사건에서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의사해석의 문제라고 한다.
⑶ 원칙적으로 위약금 (손해배상액의 예정 또는 위약벌)
기본적으로 법원은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금의 일종 또는 대표적인 위약금 약정으로 보고 있다. 위약금이란 채무불이행의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지급할 것을 약속한 금전을 말하는데, 위약금의 종류나 성질에 대하여는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위약벌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⑷ 손해배상액의 예정 또는 위약벌의 구별실익 (= 재량 감액 여부)
그 구별 실익은 법원이 재량으로 위약금 액수를 감액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는데,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면 민법 제389조 제2항에 따라 그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은 이를 적절히 감액할 수 있으나, 위약벌은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해지는 것으로 손해배상의 예정과는 그 내용이 다르므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그 액을 감액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2. 4. 23. 선고 2000다56976 판결, 대법원 2013. 7. 25. 선고 2013다27015 판결 등. 다만 예외가 있어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서 당사자들이 약정한 위약금 조항이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질을 함께 가진다고 판단한 예도 있다(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112032 판결)].
⑸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
더 나아가 법원은 “위약금은 민법 제398조 제4항에 의하여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므로 위약금이 위약벌로 해석되기 위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주장·입증되어야 한다.”라고 하여(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35771 판결, 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1다14689 판결 등), 원칙적으로는 위약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⑹ 판례의 법리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즉, 위약금 약정에 대한 일반론에 근거하여 “계약 당시 일방의 책임으로 계약이 해지되면 계약이행보증금이 상대방에게 귀속된다고 정한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은 위약금으로서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라고 하였다.
나아가 추가 손해에 대한 배상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경우 다른 특약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손해가 예정액에 포함된다. 그 계약과 관련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채무불이행과 별도의 행위를 원인으로 손해가 발생하여 불법행위 또는 부당이득이 성립한 경우 그 손해는 예정액에서 제외되지만, 계약 당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로 예정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를 발생시킨 원인행위의 법적 성격과 상관없이 그 손해는 예정액에 포함되므로 예정액과 별도로 배상 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의 성질
⑴ 계속적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들은 장기간 계약을 유지하면서 해당 거래와 관련된 협력을 거듭하고, 이를 통하여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일단 계약이 체결되면 계속적 계약도 그 내용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일방 당사자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위험을 줄여보려는 여러 노력이 동원된다. 계약기간이나 기간 만료 시 연장 여부, 주요한 급부와 그 불이행에 대한 효과, 계약의 해지 사유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고, 계약의 중도 해지와 관련하여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더해질 수도 있다.
⑵ 계속적 계약에서 손해배상액의 예정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이 있을 경우 채무자가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서,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입증의 곤란을 덜고 분쟁의 발생을 미리 방지하여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할 뿐 아니라, 채무자에게 심리적 경고를 함으로써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대법원 1991. 3. 27. 선고 90다14478 판결, 대법원 1993. 4. 23. 선고 92다41719 판결 등. 손해배상액예정이 손해배상적 기능만 있다고 보는 일원적 기능설도 있으나 손해배상적 기능과 제재적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원적 기능설이 판례와 다수설의 입장이다).
잔존기간이 장기일수록,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장래 수익을 기초로 손해배상액
을 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에서 당사자들은 계속적 계약에 앞서 손해배상액을 미리 예정해 둠으로써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입증의 곤란을 덜고 분쟁의 발생을 미리방지하여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⑶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의 의미와 기능
① 계약이행의 담보
계속적 계약에서 보증금 약정은 장기간 계속적인 급부를 하여야 하는 채무자의 급부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담보하는 의미도 있겠으나, 장기간 계약이행에 대한 약속과 그 불이행에 보다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들은 계약에서 해당 보증금을 ‘위약벌’이라고 명시하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위약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하여 보증금의 성질이 그에 구속되는 것은 아님은 물론이나, 당사자들의 의사를 해석할 때 약정의 문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참고로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18969 판결과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2다65973 판결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당사자들이 보증금을 ‘위약벌’이라고 명시하였는데, 앞의 판결에서는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해석하여 감액을 부정하였고, 뒤의 판결에서는 그 문언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하여 감액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계약이행보증금은 계약불이행 시 예상되는 손해액과의 비례성보다는 채무자에게 계약이행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계약당사자들이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상당한 금액을 보증금으로 약정하고 이를 교부 및 지급받았다면, 계약기간 동안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행되는 것을 담보하고자 하는 강한 의도가 담겨 있다.
② 상호신뢰의 보완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자의 계약이행을 보증하는 것 이외에도 계속적 계약의 체결에 앞서 채무자가 계약이행의 의지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자가 자신이 계약이행에 대하여 진지한 의지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계속적 계약에서 부족한 당사자의 신뢰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이는 신규 사업자나 채권자와 거래를 한 경험이 없는 사업자를 시장에 쉽게 참여시켜 경쟁을 촉진하는 의미가 있다.
③ 계약의 유지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은 계속적인 급부 이행을 담보하고 계약의 위반을 제재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만큼 계약이 중도에 해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다.
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과 관련 쟁점
⑴ 계약이행보증금의 감액
판례는 보증금 약정을 일반적인 위약금 약정과 다름없이 취급하여,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고 이에 대한 직권감액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보증금 약정이 위약벌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주장·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⑵ 계약이행보증금과 손해배상청구와의 관계 (= 계약이행보증금과 별도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에 따른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하고자 당사자들이 미리 손해배상액을 정하여 두는 것이므로, 실제 손해액이 예정된 배상액보다 많더라도 채권자는 예정된 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하여 위약벌로 판단되면 채무자는 실제 발생한 손해를 위약금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1988. 5. 10. 선고 87다카3101 판결 등).
당사자들이 계약이행보증금과는 별도로 지연손해금과 같은 손해배상에 관한 약정을 하였다면 계약이행보증금을 단순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이후 계약불이행이 발생하면 보증금을 몰취하는 것 이외에 적어도 지연손해금은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고 새겨야 한다.
판례는 과거에는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이 함께 규정되어 있는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았으나, 이후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이 함께 규정되어 있다는 점만을 이유로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변경하였다. 이는 과다한 계약이행보증금이 약정된 경우 감액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법원의 정책적인 고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계속적 계약의 계약이행보증금에 관한 판례는 아니지만, 법원이 공사도급계약에서 하자보수보증금과 관련하여 실손해가 하자보수보증금을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액의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다는 명시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도급인은 수급인의 하자보수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하자보수보증금 외에 그 실손해액을 입증하여 수급인으로부터 그 초과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는 특수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0다17810 판결, 대법원 2009. 7. 9. 선고 2009다9034 판결).
11.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가. 이행거절권의 발생 여부와 그 행사의 당부
피고들은 이 사건 대여거부의 이유로 ‘일정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가와 분양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성 악화’를 내세웠고, 재판 과정에서도 조합운영비를 포함한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무 일체를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유로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의 존재를 내세웠다.
나. 일반론
⑴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소비대차계약의 효력 내지 대주의 권리와 관련하여서는 민법 제536조 제2항, 제559조 및 제601조를 참조할 수 있다.
● 민법 제536조(동시이행의 항변권)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이행하여야 할 경우에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전항 본문과 같다.
● 민법 제599조(파산과 소비대차의 실효) 대주가 목적물을 차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때에는 소비대차는 그 효력을 잃는다.
● 민법 제601조(무이자소비대차와 해제권) 이자없는 소비대차의 당사자는 목적물의 인도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생긴 손해가 있는 때에는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
⑵ 다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 각 규정이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
① 먼저 민법 제536조 제2항은 쌍무계약에만 직접 적용되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계약은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으로 편무계약에 해당한다.
② 다음으로 민법 제599조는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만 직접 적용되나,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경우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
③ 마지막으로 민법 제601조는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 있어서의 해제권을 인정하나, 이 사건의 경우 해제권이 직접 문제되지 않았을뿐더러,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이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상 민법 제601조에 따라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만을 별도로 해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④ 결국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간의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 있어, 재개발사업이 지연되어 추후 대여금반환청구권의 행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민법 제536조 제2항, 제599조 및 제601조를 유추적용하거나 그 입법 취지를 확장함으로써 시공사 측에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다.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⑴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의 원칙은 모두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민법상 대원칙에 대한 예외로 모두 신의칙에 근거한다.
⑵ 불안의 항변권(민법 제536조 제2항)은 선이행의무 있는 당사자도 상대방의 불이행이 예상되는 경우 동시이행항변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행거절권능이다(권리행사저지사유).
◎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5541 판결
[1]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상 선이행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와 대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채무가 아직 이행기에 이르지 아니하였지만 이행기의 이행이 현저히 불투명하게 된 경우에는 민법 제536조 제2항 및 신의칙에 의하여 그 당사자에게 반대급부의 이행이 확실하여질 때까지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대가적 채무 간에 이행거절의 권능을 가지는 경우에는 비록 이행거절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행거절 권능의 존재 자체로 이행지체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3] 이행거절의 권능은 어디까지나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권능에 지나지 아니할 뿐 당초에 약정된 변제기를 변경시키거나 변제기의 정함이 없는 채무로 그 성질을 변경시키는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설사 이행거절 권능을 가지는 매수인이 이를 행사하지 않고 대금채무를 이행하였다고 할지라도 납부기한 전에 선납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⑶ 대금지급거절권(민법 제588조)은 계약에 따른 의무이행이 완료되더라도 권리박탈의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인정되는 이행거절권능으로, 주로 동시이행관계에서 문제될 수 있으나 당사자가 선이행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본질은 담보책임에 가깝다(권리행사저지사유).
⑷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체결 후 사정변경이 발생하고 계약의 이행이 신의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경우 계약관계의 해소(해제ㆍ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ㆍ해지의 요건
⑴ 대법원 판례
◎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①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②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③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라 함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으로서,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을 포함되지 않는다.
⑵ 판례의 태도
위 판례들이 서로 다른 요건을 설시한 것은 아니다.
위 요건 ①, ②는 실질적으로 요건 ③을 판단하는 하나의 사정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사정변경 해제ㆍ해지의 인정 여부는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⑶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칙이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다44368 판결, 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다85881 판결,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1다5578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등. 다만 이들 판결에서는 결론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하는 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그 요건을 충족하였는지를 검토하였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이유로 계약의 해제나 해지를 인정한 예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에서 견본주택 건축을 목적으로 체결된 임대차계약에서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여 대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실천적인 법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사정변경의 요건으로는 ① 계약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③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 요구된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등). 각각의 요건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
우선 변경된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 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에서도 “환율의 변동가능성은 이 사건 각 통화옵션계약에 이미 전제된 내용이거나 그 자체이고, 원고와 피고는 환율이 각자의 예상과 다른 방향과 폭으로 변동할 경우의 위험을 각자 인수한 것이지,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됨을 계약의 기초로 삼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경우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마. 견해의 대립
⑴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의 재산상태에 현저한 변경이 생겨 대주의 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 대주에게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한다.
⑵ 긍정설이 타당하다.
민법 제599조에서 대주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파산선고의 존부 자체가 계약 실효의 중요한 이유가 되나, 차주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파산선고의 존부 자체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차주의 재산상태 악화가 계약 실효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따라서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의 재산상태에 현저한 변경이 생겨 대주의 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에도, 위 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대주에게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⑶ 다만 이행거절권의 실제 발생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마다 당사자들의 의사, 사정변경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따져보아야 할 것인데,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의 피고들에게도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이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⑷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의 가부 (= 적극)
㈎ 사정변경의 원칙의 이론적인 근거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있다.
그 용어에도 불구하고 계약준수가 원칙이고,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제, 해지 등은 예외일 뿐이다.
계약체결 이후에는 사정이 변경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신의칙상 도저히 보아 넘기기 어려운 경우에만 사정변경의 원칙으로 계약관계 해소를 인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7다224302 판결은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에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여 대주가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근본적으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대주의 이행거절권을 인정하였다.
위 판결은 ‘①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 차주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으로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 사정변경이 생기고, ②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대여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 대주는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민법 제536조 제2항, 민법 제599조 등이 선이행의무를 진 경우에 있어서의 불안의 항변권, 당사자 일방이 파산한 경우에 있어서의 소비대차계약의 실효 등을 정하고 있기는 하나, 위 각 규정은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가 파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이 생겨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된 경우 등에 대하여는 예정하고 있지 않다.
결국 위 각 규정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금전소비대차계약의 대주를 보호하고 당해 계약의 당사자 간 형평성을 도모하기에 불충분하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위 판결은 위 각 규정의 내용과 그 입법 취지를 참조하되, 근본적으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대주의 이행거절권을 인정하였다.
㈐ 위 판결은 위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의 원칙 중 ‘불안의 항변권’에 가장 가까운 사례지만, 피고들이 동시이행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불안의 항변권’을 유추적용하여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을 인정한 최초의 판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