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평석>당사자 사이의 묵시적 합의에 의한 임의충당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2다12871,12888 판결】(윤경변호사 / 민사소송전문변호사 / 부동산경매변호사)
【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2다12871,12888 판결】
◎[요지]
[1] 비용, 이자, 원본에 대한 변제충당에 있어서는 민법 제479조에 그 충당 순서가 법정되어 있고 지정 변제충당에 관한 같은 법 제476조는 준용되지 않으므로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비용, 이자, 원본의 순서로 충당하여야 할 것이고, 채무자는 물론 채권자라고 할지라도 위 법정 순서와 다르게 일방적으로 충당의 순서를 지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지만, 당사자의 일방적인 지정에 대하여 상대방이 지체없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함으로써 묵시적인 합의가 되었다고 보여지는 경우에는 그 법정충당의 순서와는 달리 충당의 순서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2] 당사자 사이에 민법 제479조의 변제충당순서와는 다른 순서로 충당하기로 하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한 사례.
[3] 채권자에 대한 변제자의 공탁금액이 채무의 총액에 비하여 아주 근소하게 부족한 경우에는 당해 변제공탁은 신의칙상 유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제목 : 당사자 사이의 묵시적 합의에 의한 임의충당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1. 사안의 개요 및 쟁점
가. 사안의 개요
① 원고는 피고에 대한 외상 물품대금채무의 담보를 위하여 피고에게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1988. 2. 6. 채권최고액 금 1억 원의 1번 근저당권(이하 1번 근저당권이라 한다)을, 1990. 3. 23. 채권최고액 금 1억 원의 2번 근저당권(이하 이 사건 근저당권이라 한다)을 설정하여 주었다.
② 피고는 1번 근저당권에 기하여 금 1억 원을 청구금액으로 부동산임의경매신청을 하여 1998. 5. 12. 부동산임의경매 절차가 개시되었다.
③ 원고는 1999. 3. 31. 피고에게 금 1억 원을 지급하면서, 피고와 사이에 나머지 물품대금채무가 금 88,259,505원임을 확정하고, 1999. 5. 31.까지 금 2,000만원을, 1999. 6. 30.까지 나머지 잔금 및 연 13%의 비율에 의한 이자를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이하 “이 사건 약정”이라 함)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는 위 1번 근저당권을 말소하고 위 부동산임의경매신청을 취하하였다.
④ 피고는 원고로부터 위와 같이 정산한 채무 중 1999. 5. 31. 800만원, 1999. 6. 8. 1,200만원, 1999. 7. 5. 1,000만원 등 합계 3,000만원을 변제 받았을 뿐 이 사건 약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아니하자, 이 사건 근저당권에 기하여 부동산임의경매신청을 하여 경매목적 부동산에 관하여 1999. 8. 18. 부동산임의경매 절차가 다시 개시되었다.
⑤ 이에 원고는 2000. 3. 31. 피고의 수령거절을 이유로 피고를 피공탁자로 하여 위 경매사건의 경매비용 2,438,010원을 포함한 69,135,945원을 이 사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의 변제를 위하여 공탁하였고, 피고는 2001. 1. 15. 위 공탁금 및 이에 대한 이자 등 합계 70,014,833원을 이의를 유보한 채 수령하였다.
나. 쟁 점
이 사건의 쟁점은, ① 당사자 사이의 묵시적 합의에 의한 임의충당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② 공탁금액이 채무총액에 비추어 아주 근소하게 부족한 경우 변제공탁이 유효한지 여부이다.
2. 당사자 사이의 묵시적 합의에 의한 임의충당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제1 쟁점)
가. 변제충당의 의미{이홍철, “수개의 비용 간, 수개의 이자 간 지정충당의 효력”, 사법연수원 논문집 제1집 51-54쪽 참조}
⑴ 변제충당의 의미
채무자가 동일한 채권자에 대하여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수개의 채무를 부담한 경우에 변제의 제공이 그 채무 전부를 소멸하게 하지 못하는 때에 어느 채무를 소멸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변제충당이다(민법 제476조, 제477조, 제479조).
⑵ 계약충당(합의충당)
변제충당의 경우에도 당사자 일방의 지정에 의한 충당 방법(민법 제476조)이나 법률의 규정에 따른 충당순서에 의한 충당 방법(민법 제477조, 제479조)이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 앞서 당사자 사이의 계약 또는 합의에 의한 충당 방법이 우선한다.
다만, 경매에 의한 변제 등과 같이 법률관계의 성질상 합의충당이나 지정충당을 허용할 수 없고 법률의 규정에 의한 충당만을 인정하여야 하는 경우(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51339 판결 등)가 있는데 이는 특별한 예외이다.
⑶ 지정충당
민법 제476조는 “① 채무자가 동일한 채권자에 대하여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수개의 채무를 부담한 경우에 변제의 제공이 그 채무 전부를 소멸하게 하지 못하는 때에는 변제자는 그 당시 어느 채무를 지정하여 그 변제에 충당할 수 있다. ② 변제자가 전항의 지정을 하지 아니할 때에는 변제받는 자는 그 당시 어느 채무를 지정하여 그 변제에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변제자가 그 충당에 대하여 즉시 이의를 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당사자 일방의 지정에 의한 충당 방법인 지정충당이다.
민법 제476조의 취지는, 지정권이 우선 변제자에게 있고 변제자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으며 상대방은 이의할 수도 없는 반면, 변제자의 지정이 없는 경우에 지정권은 변제받는 자에게 넘어가지만 이에 대하여 변제자의 이의가 있으면 변제받는 자의 지정은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제자의 지정권도 항상 최우선일 수는 없으며 일정한 제한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 경매 등의 영역과 뒤에서 보는 비용, 이자, 원본의 순서를 정한 민법 제479조이다.
⑷ 법정충당
민법 제477조는 “당사자가 변제에 충당할 채무를 지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다음 각호의 규정에 의한다. 1. 채무 중에 이행기가 도래한 것과 도래하지 아니한 것이 있으면 이행기가 도래한 채무의 변제에 충당한다. 2. 채무 전부의 이행기가 도래하였거나 도래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무자에게 변제이익이 많은 채무의 변제에 충당한다. 3. 채무자에게 변제이익이 같으면 이행기가 먼저 도래한 채무나 먼저 도래할 채무의 변제에 충당한다. 4. 전 2호의 사항이 같은 때에는 그 채무액에 비례하여 각 채무의 변제에 충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정충당이 없는 경우 또는 변제받는 자의 지정충당에 대하여 변제자가 이의한 경우에는 법정충당을 하여야 한다.
⑸ 비용, 이자, 원본에 대한 변제충당의 순서
민법 제479조는 “① 채무자가 1개 또는 수개의 채무의 비용 및 이자를 지급할 경우에 변제자가 그 전부를 소멸하게 하지 못한 급여를 한 때에는 비용, 이자, 원본의 순서로 변제에 충당하여야 한다. ② 전항의 경우에 제477조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지정충당과 법정충당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이에 어긋나는 일방적인 충당지정은 효력이 없다(대법원 1981. 5. 26. 선고 80다3009 판결).
나. 대상판결의 경우(제1 쟁점의 해결)
⑴ 비용, 이자, 원본에 대한 변제충당에 있어서는 민법 제479조에 그 충당 순서가 법정되어 있고 지정 변제충당에 관한 같은 법 제476조는 준용되지 않으므로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비용, 이자, 원본의 순서로 충당하여야 할 것이고, 채무자는 물론 채권자라고 할지라도 위 법정 순서와 다르게 일방적으로 충당의 순서를 지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지만, 당사자의 일방적인 지정에 대하여 상대방이 지체없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함으로써 묵시적인 합의가 되었다고 보여지는 경우에는 그 법정충당의 순서와는 달리 충당의 순서를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1981. 5. 26. 선고 80다3009 판결, 1990. 11. 9. 90다카7262 판결, 1998. 4. 24. 선고 97다48562 판결, 2001. 7. 10. 선고 2001다16449 판결, 2002. 5. 10. 선고 2002다12871,12888 판결).
⑵ 피고가 위 경매를 청구하면서 이 사건 약정금 88,259,505원에서 30,000,000원을 차감한 58,259,505원을 그 경매 청구금액의 원금이라고 특정을 하였고 그 신청원인에서도 위 금원이 잔여 외상매출금이라는 취지로 주장하였는데,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이미 원고의 위 30,000,000원 변제시점에서 피고 스스로 이를 원금에 충당한 것을 전제로 이런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이고, 이에 대하여 원, 피고 쌍방 모두 이의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원, 피고 사이에 위 30,000,000원을 원금에 충당하기로 한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대상판결은, 원심으로서는 어떤 연유에서 피고가 위 경매시점에서 청구금액을 그렇게 특정한 것인지, 원, 피고 사이에 위 30,000,000원의 원금 충당에 관한 묵시적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합의충당 여부)를 더 나아가 심리할 필요가 있었다 할 것인데, 이 점을 신중하게 따져보지 아니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3. 공탁금액이 채무총액에 비추어 아주 근소하게 부족한 경우 변제공탁의 유효 여부(= 제2 쟁점)
가. 변제공탁
⑴ 조건부 공탁
① 채무의 변제가 유효하려면 채무의 본지에 따른 이행이어야 하듯이 변제공탁에 있어서도 공탁의 목적물은 본래의 채무의 목적물이어야 한다.
② 따라서 채권자의 본래의 채권에 동시이행 또는 선이행의 항변권이 붙어 있는 경우에는 공탁자는 반대급부의 이행을 공탁금 수령의 조건으로 하여 공탁을 할 수 있으나 본래의 채무에 부착하지 않고 있는 조건을 붙여서 한 공탁은 채권자가 이를 수락하지 않는 한 조건뿐만 아니라 공탁 전체가 무효가 된다. 대법원도 ‘변제공탁에 있어서 채권자에게 반대급부 기타조건의 이행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이를 조건으로 공탁한 때에는 채권자가 이를 수락하지 않는한 그 변제공탁은 무효이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1970. 9. 22. 선고 70다1061 판결, 1984. 4. 10. 선고 84다77 판결, 2002. 12. 6. 선고 2001다2846 판결).
⑵ 일부 공탁
변제공탁이 유효하려면 채무 전부에 대한 변제의 제공 및 채무전액에 대한 공탁이 있을 것을 요한다.
변제공탁이 유효하려면 채무 전부에 대한 변제의 제공 및 채무 전액에 대한 공탁이 있어야 하고, 채무 전액이 아닌 일부에 대한 공탁은 그 부족액이 아주 근소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채권자가 이를 수락하지 않는 한 그 공탁 부분에 관하여서도 채무소멸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대법원 1993. 11. 23. 선고 93다25127 판결, 1998. 10. 13. 선고 98다17046 판결).
또한 일부의 공탁을 한 후 새로운 공탁시점까지의 나머지 채무액을 다시 공탁하였다고 하여도 두 개의 일부공탁은 모두 무효이고 재공탁시 전채무액에 대한 유효한 공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종래 채권자가 계속하여 일부변제를 수령하여 왔다거나 갑자기 영업소를 폐쇄하고 그 소재를 불명하게 하는 바람에 행하여진 변제공탁이라고 하여 달라지지 아니한다.
채무의 액수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 채무자가 채무 전액의 변제임을 공탁원인 중에 밝히고 공탁을 하였는데, 채권자가 그 공탁금을 수령하면서 공탁공무원이나 채무자에게 채권의 일부로 수령한다는 등 이의 유보 의사표시를 한 바 없다면, 채권자는 그 공탁 취지에 따라 이를 수령하였다고 보아야 하지만, 공탁금 수령시 채무자에 대한 이의 유보 의사표시는 반드시 명시적으로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1997. 11. 11. 선고 97다37784 판결).
⑶ 변제공탁의 효과
변제공탁은 공탁공무원의 수리처분과 공탁물보관자의 공탁물 수령으로 그 효력이 발생하여, 채무소멸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고, 채권자에 대한 공탁통지나 채권자의 수락의 의사표시가 있는 때에 공탁의 효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1972. 5. 15.자 72마401 결정). 변제공탁이 적법한 경우에는 채권자가 공탁물 출급청구를 하였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공탁을 한 때에 변제의 효력이 발생한다(대법원 2002. 12. 6. 선고 2001다2846 판결).
나. 공탁금액이 채무총액에 비추어 아주 근소하게 부족한 경우 변제공탁의 유효 여부
⑴ 판례의 태도
① 대법원 1988. 3. 22. 선고 86다카909 판결 : 일부공탁이 채무의 총액에 비하여 아주 근소하게 부족한 경우(채무총액 4,905만원에서 63,700원 부족한 48,986,300원 공탁), 그러한 일부 변제공탁을 신의칙상 유효한 것으로 본 사례이다(부족비율 0.12%).
② 대법원 1998. 10. 13. 선고 98다17046 판결 : 채무총액 68,831,061원에서 18,544,016원 부족한 50,287,000원 공탁한 사안에서, 일부 변제공탁을 무효로 보았다(부족비율 26.94%).
③ 대법원 1996. 7. 26. 선고 96다14616 판결 : 채무총액 73,282,521원에서 25,360,168원이 부족한 47,922,353원 공탁한 사안에서, 일부 변제공탁을 무효로 보았다(부족비율 34.6%).
⑵ 대상판결의 경우(제2 쟁점의 해결)
대상판결의 사안을 보면, 채무총액 69,384,761원서 248,816원이 부족한 69,135,945원 공탁하여 그 부족비율은 0.35%이다. 원고가 이 사건 공탁을 할 시점에서 피고와 주된 다툼으로 되었던 것은 지연손해금율을 13%로 할 것인지, 아니면 25%로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고, 원고는 그 지연손해금율을 13%로 주장하는 바탕하에서 나름대로 계산을 하여 채무원리금 전액을 변제공탁한다는 취지로 공탁을 하였던 것인데 집행비용의 차이, 계산상 과오 등으로 인하여 근소한 부족금액이 발생하였고 그 부족비율이 0.35%에 지나지 않는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공탁은 그 공탁시점에서 유효한 변제로서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함에도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의 판단에는 잘못이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