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강박증과 마음의 구덩이】《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고통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나는 수면에 대한 강박이 있다.
하루라도 숙면을 못 하면, 온종일 머릿속이 뿌옇고, 가슴은 불안하게 두근거린다.
제대로 잔 날엔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고, 모든 것이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매일 밤 갤럭시워치와 갤럭시 링을 착용한 채 잠자리에 든다.
수면 시간, 심박수, 피부 온도, 호흡률…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내 몸은 데이터로 분석되고, 수면의 ‘질’은 점수로 환산된다.
이것이 습관이 되고, 관리가 되다가, 언젠가는 강박으로 바뀌는 건 아닐까.
가끔은 기계가 내 잠을 지배하는 느낌마저 든다.
어느 분의 경험담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어느 날 낯선 사람에게 문자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거칠고 인신공격적인 말들이 가득했다.
그 사람은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그저 스쳐간 인연이었다.
왜 이런 말을 보내는 걸까?
분노와 혼란 속에서 밤새 뒤척였고,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어젯밤 술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보낼 문자를 나에게 보냈다는 사과였다.
그 분은 멍한 눈으로 그 문자를 읽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집착’이라는 건 생각에 걸려드는 낚싯바늘 같은 것 아닐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바늘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 버리면, 나는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몸부림치게 된다.
가려운 곳을 긁으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점점 더 가려워지고 결국엔 상처만 남는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도 집착에 관한 이야기다.
극장에서 재채기를 한 뒤, 뜻하지 않게 장관의 머리에 침이 튄 남자.
그는 반복적으로 사과하고 또 사과하지만, 상대는 이미 괜찮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말 뒤에 숨겨진 표정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결국엔 자기 자신을 무너뜨린다.
끝없이 반복되는 해명, 과잉 해석, 걱정의 미로 속에서 그는 자신을 가두고 마침내 숨을 거둔다.
그 이야기가 슬픈 건, 그 남자의 상황이 결코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매일 그런 작은 구덩이에 빠진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내 실수 하나, 놓쳐버린 타이밍 하나에 밤새 괴로워하며 깊은 구덩이를 판다.
더 무서운 건, 그 구덩이를 빠져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더 파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티베트 속담이 말하듯,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러니 이제는 알아야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고통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그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그것이 스스로의 영혼을 돌보는 첫걸음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시계를 벗고 기기를 내려놓는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수면의 질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 느끼는 평안이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늘은 그저 '괜찮은 밤'이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