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17). 파두, 삶을 감추지 않는 노래.】《영혼을 적시는 검은 옷의 노래, 파두(Fado)의 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리스본의 밤은 낮보다 더 깊고 진한 색채를 띠고 있다.
내가 경험한 그 밤은 낭만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금 더 ‘사적인 감정’이다.
거대한 국립 판테온(Panteão Nacional)이 침묵 속에 도시를 내려다보는 캄포 데 산타 클라라(Campo de Santa Clara) 거리. 그 고요하고, 노란 가스등 불빛에 적셔진 돌길 위에 자리한 '오 코히도(O Corrido)'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식사와 함께 수준 높은 파두(Fado)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명성 있는 ‘파두 하우스’다.
투박하지만 멋스러운 주철 기둥과 붉은 카펫이 깔린 목재 바닥, 그리고 복층을 가로지르는 은은한 조명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자리에 앉아 포르투갈의 와인 한 잔을 기울였다.
입안을 감도는 와인의 풍미와 함께, 고소한 호박 샐러드와 부드럽게 조리된 뽈보(Polvo, 문어) 요리가 테이블을 채웠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문어의 식감은 이 도시가 가진 여유로움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날의 진정한 만찬은 미각이 아닌, 청각과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실내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12줄의 포르투갈 기타(Guitarra Portuguesa)가 영롱하면서도 서글픈 울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검은 옷을 입은 파디스타(Fadista)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스페인의 플라멩코가 발을 구르며 밖으로 터트리는 뜨거운 '불꽃'이라면, 이곳 리스본의 파두는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침전하는 차가운 '바다'였다.
화려한 기교나 몸짓은 없다.
그저 마이크도 없이, 오직 목소리 하나로 자신의 운명(Fate)을 노래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만은 통역이 필요 없었다.
그들의 노래 속에는 '사우다드(Saudade)'라 불리는, 설명하기 힘든 그리움과 한(恨),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애수가 짙게 배어 있다.
마치 내 지나온 삶의 기쁨과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듯, 파디스타의 떨리는 목소리는 나의 가슴을 파고들어 깊은 공명을 일으켰다.
파두의 세계에는 ‘화려한 도발’이 없다.
대신에, 한 인간이 살아낸 시간의 무게가 있다.
말로는 차마 건네지 못한 마음을, 노래에 실어 비밀스럽게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마음을 대신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 슬픔은 나를 무겁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묵은 먼지를 떼어내듯 마음을 씻어주는 위로였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 안 어딘가가 젖어 있었다.
배터리 사정으로 남성 가수의 모습과 노래는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많이 아쉽다.
와인잔을 비우고 파두 하우스를 나서는 길, 리스본의 밤공기가 유난히 차갑고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귓가에는 여전히 그 애절한 기타 선율이 맴돌았다.
화려하지 않아 더 사무쳤던 그 밤.
파두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리스본이 나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영혼의 대화였다.
리스본의 밤은 그렇게 나를 감동시켰다.
강렬하지 않은 공연, 소박한 음식, 낡은 건물, 언덕길의 바람.
모든 것이 겸손했고, 모든 것이 솔직했다.
그리고 나는 인생에서 왠지 그런 순간들이 제일 소중하다는 걸 느꼈다.
살아있어서 좋다고.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고.
아직 내가 나에게 무관심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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