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23). 투마르의 크리스투 수도원(Convento de Cristo).】《시간이 멈춘 템플 기사단의 거대한 성소, 그 안에서 느낀 역사의 무게》〔윤경 변호사〕
<돌의 미로에서 마주한 전율, 크리스투(그리스도) 수도원.>
리스본의 제로니모스 수도원이 정교하게 세공된 하얀 보석함이라면, 투마르의 크리스투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은 대지 위에 뿌리내린 거대한 고목과도 같았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였지만, 막상 마주한 그 실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수도원이라기보다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가까운 그 압도적인 규모.
성벽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그 장엄한 돌의 무게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수도원의 규모는 처음부터 사람을 놀라게 한다. 거대한 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템플 기사단의 심장, 샤롤라(Charola).>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수도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샤롤라(Charola)'였다.
12세기 템플 기사단이 말을 탄 채로 미사를 드렸다는 이 원형 성소는 밖에서 볼 때의 투박함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품고 있었다.
금빛과 색채, 벽을 가득 채운 상징들. 높은 돔 천장 아래, 벽면을 가득 채운 황금빛 성화와 조각들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수백 년 전, 성전을 향해 떠나기 전 비장한 마음으로 이곳을 돌았을 기사들의 거친 숨결과 기도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섬세함과는 결이 다른, 힘이 넘치는 웅장함이었다.
<돌로 쌓은 미로, 수도사들의 삶을 엿보다.>
크리스투 수도원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로였다.
발길 닿는 곳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회랑(Cloister)과 수많은 방들은 이곳이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하나의 자급자족하는 '도시'였음을 짐작게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지하 저수조(Cistern)였다.
수도원 지하 깊은 곳, 맑은 물을 가득 담아두었던 그 서늘한 공간은 마치 시간을 가두어 둔 듯 신비로웠다.
수십, 수백 명의 수도사가 함께 식사를 했을 ‘대리석 식당(Refectory)’과 거대한 ‘부엌’을 거닐면서는 엄격하고도 절제된 그들의 일상을 상상해 보았다.
이 거대한 돌산 위에서 물을 관리하고 불을 피우며 삶을 영위했을 그들의 생활이 피부로 느껴진다.
<끝없는 복도, 십자가 위를 걷다.>
수도원의 가장 깊숙한 곳, 나는 또 한 번 숨을 죽여야 했다.
바로 '주 기숙사(Dormitório Principal)'의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 앞에 섰을 때였다.
마치 거대한 십자가(Cruzeiro)의 형상으로 설계된 이 긴 복도는, 소실점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길고 장엄하게 뻗어 있었다.
양옆으로 늘어선 40여 개의 작은 방(Cell)들은 수도사들이 묵언 수행을 하며 잠을 청했던 공간이라 한다.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 오직 높은 나무 천장과 차가운 돌벽, 그리고 복도를 따라 길게 비치는 빛과 그림자만이 존재하는 곳.
이 끝없는 십자가 위를 홀로 걸으며 수도사들은 신을 향한 길고도 고독한 여정을 매일 반복했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길이감이 주는 적막함은 그 어떤 화려한 성당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대항해 시대의 염원, 마누엘 양식의 창>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마누엘 양식의 창(The Manueline Window)'.
사진으로 수없이 보았던 그 창문 앞에 섰을 때, 나는 감탄을 넘어선 경외감을 느꼈다.
단단한 돌을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다루어 밧줄, 산호, 해초, 십자가를 정교하게 엮어낸 그 솜씨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바다 너머 미지의 세계를 향한 포르투갈인들의 뜨거운 열망과 모험심이 차가운 돌 위에 피어난 꽃이었다.
창문 하나에 한 시대의 정신이 온전히 깃들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성전(聖殿) 기사단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투마르의 전경은 시원하고 평화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리스본의 제로니모스 수도원보다 이곳 투마르가 훨씬 더 마음에 깊게 남는다.
더 거대하고, 더 웅장하며, 무엇보다 화려함 속에 깃든 역사의 무게와 비장미가 여행자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기 때문이다.
돌 하나, 기둥 하나에도 템플 기사단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대항해 시대의 꿈이 서려 있는 곳.
투마르 크리스투 수도원은 포르투갈 여행 중 만난 가장 강렬한 '역사의 지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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