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26).】《수르텔랴(Sortelha), 중세의 바람을 맞으며 13세기 성벽 위에서 노을을 바라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시간이 성곽 안에 갇힌 마을, 수르텔랴(Sortelha)>
몬산투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에 순응하고 기대어 살아온 마을이라면, 수르텔랴는 그 척박한 자연의 가장 높은 곳에 인간의 의지로 쌓아 올린 견고한 '시간의 요새'다.
해발 760미터, 광활한 고원 위에 홀연히 나타난 이 화강암 성채는, 굴러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던 몬산투의 바위와는 다른, 굳건하고 빈틈없는 방어의 언어를 속삭인다.
포르투갈 중부의 언덕 위, 오래된 바위 위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돌집들.
13세기에 생긴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 마을 중의 하나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둥근 성벽이 마을을 폭 감싸고 있다.
돌 하나하나가 마치 이야기를 담은 책 같았다.
<성문 안, 모든 것이 돌로 이루어진 세계>
수르텔랴의 '빌라 문(Porta da Vila)'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을 연 듯했다.
거친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과 그 안을 빼곡히 채운 돌집들.
이곳은 21세기의 소란스러움이 닿지 않는, 중세의 시간이 고여 있는 섬 같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화강암이었다.
발밑을 구르는 돌길,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벽, 그리고 그 집들을 굳건히 감싸 안은 성벽까지.
온통 회색빛과 옅은 갈색빛으로 이루어진 이 단단한 세계는, 화려함 대신 묵직한 견딤의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골목은 좁고 집들은 소박하다.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치장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 지어진 공간들.
모든 집이 성벽의 보호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서, 스페인 국경과 맞닿은 이 요새 마을의 숙명적인 긴장감이 전해져 왔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발코니가 있는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세엔 1층을 동물의 축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벽 위, 고독한 파수꾼이 되어>
가파른 돌계단을 딛고 성벽 위로 올랐다.
수르텔랴 여행의 백미는 단연, 마을 전체를 완벽하게 두르고 있는 성벽 위를 걷는 것이다.
발아래로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붉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너머로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걷는 걸음마다 수백 년 전 이곳을 지켰을 누군가의 시선이 겹쳐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일었다.
가장 황홀했던 것은 해 질 무렵의 빛이었다.
성채의 끝자락에 서자 하늘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다시 붉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차가웠던 회색빛 돌들은 따스한 온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멀리 이어지는 산맥은 그 빛에 잠겨 원래의 경계를 잃고, 황금빛과 주홍빛과 은은한 보랏빛 사이 어딘가에 파묻혀 있었다.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기울며 쏟아내는 마지막 빛이 성곽의 틈새와 이끼 낀 바위 위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바람 소리와 내 숨소리만이 성벽을 맴돌았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시간, 지나온 길,
그리고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 자신까지 모두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 속에서도 하루가 천천히 저물고 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본 수르텔랴는 단순한 옛 중세 마을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바위와 인간의 삶이,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얽혀 빚어낸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 마을에 하나둘 가로등 불빛이 켜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돌의 마을이 건네는 무언의 위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