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27).】《시간마저 쉬어가는 곳, 벨몽테의 수도원 호텔 ‘포자다 콘벤투 드 벨몽테(Pousada Convento de Belmonte)’에서의 만찬과 와인.》〔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시간마저 쉬어가는 곳, 벨몽테의 수도원 호텔에서>
여행이란 때로 낯선 공간에서 뜻밖의 평온을 마주하는 일이다.
도착한 곳은 '포자다 콘벤투 드 벨몽테(Pousada Convento de Belmonte)'. 본래 '노사 세뇨라 다 에스페란사(Convento de Nossa Senhora da Esperança, 희망의 성모 수도원)'라 불리던 이곳은 수백 년 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기도를 올리던 신성한 장소였다.
13세기에 지어진 프란체스코회 수도원(Convento de Nossa Senhora da Esperança)을 개조하여 만든 유서 깊은 호텔에 들어서니, 거친 돌벽과 고풍스러운 조명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함이 나를 압도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온 듯,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처럼 다가왔다.
<보랏빛 노을과 수도사들의 숨결>
짐을 풀기도 전에 내 시선을 뺏은 것은 창밖의 풍경이었다.
노을이 막 산 너머로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창밖을 물들이던 주홍빛이 천천히 식어가며, 수도원의 두꺼운 돌벽은 그 빛을 한 겹 품듯 반짝였다.
가슴이 일렁인다. 세라 다 에스페란사(Serra da Esperança) 산맥 너머로 보랏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노을이 내려앉고, 저 멀리 마을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는 순간은 그야말로 '감동'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객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의 방에는 숫자가 없다.
대신 'Frei(수사)'라는 호칭이 붙은 수도승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들의 맡은 직함을 나타내는 그림이 방 앞에 있다.
내 방 앞을 그려져 있는 'Frei Tomé(프레이 토메)'. 그는 양손 가득 술병을 들고 서 있었다. 혹시 수도원의 술주정뱅이였을까?
사실 그는 수도원의 살림을 책임지던 '셀러 담당 수도사(Celeireiro)'이다.
수도원에서 와인과 식량 창고를 관리하는 일은 가장 믿음직하고 중요한 인물에게 맡겨지는 소임이었다.
그림 속 그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넉넉하고 즐거워 보이는 것은, 그가 빚어낸 와인이 동료 수도사들에게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참고로 옆 방에 그려진 빵을 굽는 삽을 든 'Frei Ramiro'는 제빵 담당 수도사라고 한다.
<따스한 모닥불 곁에서의 만찬>
저녁이 되어 찾은 곳은 호텔 내에 위치한 '콘벤투 벨몽테 구르메(Convento Belmonte Gourmet)' 레스토랑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고, 벽난로에서는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벽이 주는 차분함과 불빛의 따스함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돌벽과 촛불,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오래된 성탄 동화 속 식탁에 초대된 듯했다.
이곳에서 맛본 음식들은 포르투갈의 미식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전채 요리(Entrada)로 나온, 숲의 향기를 머금은 듯한 '야생 버섯 소테(Sinfonia de cogumelos silvestres)'는 바삭한 빵 위에 올려져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메인 요리(Prato Principal)는 포르투갈의 소울 푸드인 '대구 요리(Bacalhau)'.
올리브오일을 듬뿍 머금은 대구살에 구운 감자(Batatas a Murro)와 피망을 곁들인 이 요리는 화이트 와인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식사의 마무리는 달콤한 '크레페와 아이스크림'. 붉은 베리류의 상큼함이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 주었다.
화이트 와인은 아침의 들꽃 향이 조용히 부서지는 듯했고, 레드 와인은 벽난로의 불빛처럼 깊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갔다.
화이트 와인의 산뜻함과 레드 와인의 깊은 풍미가 번갈아 가며 혀끝을 감돌았고, 모닥불의 온기는 여행자의 노곤함을 부드럽게 녹여주었다.
이날 밤, 나는 단순히 잠을 청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의 이야기가 깃든 역사 속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술병을 든 프레이 토메가 꿈속에 나타나 맛있는 와인 한 잔을 더 권할 것만 같은, 낭만적이고 황홀한 밤이었다.
돌벽은 여전히 오래된 침묵을 품고 있었지만 그 침묵은 차갑지 않았다.
그 안에는 수도승들의 기도, 빛, 노동, 노래, 그리고 오늘 내가 마신 와인의 향까지 모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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