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29).】《벨몽테(Belmonte),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중세마을. 빛과 그림자, 두 개의 역사를 품은 언덕.》〔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구름 아래에서 더 깊어지는 마을의 숨결.>
태양이 잠시 구름 뒤로 숨을 고르는 날이다.
쨍한 햇살 대신 하늘을 덮은 묵직한 구름은 오히려 벨몽테(Belmonte)라는 마을에 깊이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세가 다에스트렐라(Serra da Estrela)를 배경으로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을이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 중에는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분한 흙내음과 오래된 돌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햇살이 모든 것을 환하게 덮어버리는 날보다, 오늘처럼 구름이 마을의 숨결을 가만히 감싸주는 날이 더 운치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걷다.>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 벨몽테(Belmonte).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길이었다.
돌담 위에 달린 작은 화분들, 낡은 목재문에 걸린 장식들, 세월이 묻어 있는 외벽의 흔적들.
거창한 화려함 대신, 투박한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풍경.
그 회색빛 돌담 사이사이에는 정성스레 내어놓은 화분들과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놓여 있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살짝 경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고요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벨몽테의 성채다.
<바람이 잠시 쉬어가는 성채 위에서.>
발걸음을 옮겨 언덕을 올랐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 벨몽테 성채(Castelo de Belmonte)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거칠게 다듬어진 성벽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노장의 주름살처럼 강인해 보였다.
성채 안으로 들어서니 뜻밖에도 근사한 원형 극장이 나타났다. 지금은 비어 있는 그 돌계단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과거 이곳에서 울려 퍼졌을 함성과 노랫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섞여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성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기와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 낀 하늘 아래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을의 색감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했다.
붉은 기와지붕들이 차분하게 앉아 있고, 바람은 과거와 현재를 가볍게 섞어 속삭인다.
<유대인의 자취를 마주하다.>
다시 골목을 따라 내려오는 길, 작은 광장과 마주했다.
그곳엔 유난히 독특한 기운이 감돌았다.
거대한 메노라(Menorah, 촛대) 조형물이 서 있는 곳, 바로 유대인 지구(Judiaria)였다.
박해를 피해 수백 년간 자신들의 신앙을 숨죽여 지켜왔던 ‘크립토 주이시(Crypto-Jews)’들의 터전.
척박한 산악 지대에 요새처럼 자리 잡은 역사적인 마을, 벨몬트(Belmonte)는 겉보기와 달리 두 개의 거대하고도 상반된 역사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하나는, 1500년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연 브라질의 발견자,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이 태어난 곳이라는 '드러난 영광'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종교 재판의 광풍이 몰아치던 500년 전, 죽음의 위협 앞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척하며 유대교의 신앙을 비밀리에 지켜내야 했던 '숨겨진 유대인(Crypto-Jews)'들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비밀스러운 아픔'이다.
유대인 박물관 옆에 자리한 작은 상점에 들렀다.
화려하지 않지만, 만든 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몇 가지 기념품들을 골라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모진 역사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한 조각 건네받는 기분이었다.
<아기자기함 속의 고요함.>
벨몽테는 고즈넉해서 좋았다.
흐린 날씨 덕분에 돌벽의 질감은 더욱 도드라졌고, 고요한 골목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었다.
아기자기함 속에 묵직한 역사를 품은 마을.
주머니 속에 넣은 작은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벨몽테의 회색빛 평온함을 마음에 담았다.
잔잔한 흙냄새와 바람이 섞여 마치 오래 전에 묻어둔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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