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32).】《빗물 젖은 코임브라, 그 '등골 부수는' 계단을 내려오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코임브라(Coimbra)에 부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기엔 번거롭고, 맞기엔 제법 서늘한 빗방울이 천 년의 시간을 머금은 돌바닥을 촉촉하게 적신다.
나는 지금 코임브라 대학에서 시작되는 그 가파른 내리막길, 일명 '퀘브라 코스타스(Quebra Costas)' 위에 서 있다. ‘등골을 부수는 계단’이라니.
코스타스는 영어로 등(back), 퀘브라는 브레이커( breaker)라는 뜻이다.
신입생이 새 학기에 술을 마시고 계단을 내려오다 구르면 허리가 부러진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 발 한 발,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내려 디딛는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잊게 만드는 건, 좁은 골목 양옆으로 다정하게 어깨를 맞댄 풍경들이다.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수공예품 가게들, 은은한 조명을 밝힌 작은 선술집과 카페들이 비에 젖어 한층 더 짙은 색채를 뽐낸다.
그 길의 중턱, 요새처럼 단단해 보이는 구 대성당(Sé Velha)이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백 년간 수많은 이들의 등골이 뻐근해지는 것을 지켜보았을 그 침묵이 외려 위안이 된다.
계단의 끝, 가쁜 숨을 고르며 마주한 곳은 활기찬 번화가다. 페헤이라 보르헤스 거리 (Rua Ferreira Borges).
그리고 그 길의 끝자락, ‘8월 5일 광장(Praça 8 de Maio)’에는 포르투갈의 초대 왕들이 잠든 곳, 산타 크루즈 성당(Santa Cruz)이 자리하고 있다.
포르투갈 건국 왕의 영면을 지키는 그 엄숙한 공간을 둘러보고 나오니, 광장에는 벌써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내려앉았다.
회색빛 하늘 아래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이 빗물에 번져 몽환적이다.
이 낯선 이국땅의 광장에서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건, 뜻밖에도 ‘Seoul Chicken’이라고 적힌 입간판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마주한 낯익은 이름에 반가움이 스쳐 지나간다.
비에 젖어 으슬으슬해진 몸을 녹이려 카페에 앉아 포르투갈식 커피 한 잔을 청한다.
‘비카(Bica)’라 불리는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기대 이상이다.
혀끝을 감도는 진한 쌉싸름함과 뒤이어 올라오는 고소한 풍미.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한 그 맛이 꾸밈없는 이 도시와 꼭 닮았다.
창밖엔 여전히 부슬비가 내린다. 맑은 날의 쨍한 코임브라도 좋았겠지만, 비에 젖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지금의 풍경이 더 마음에 든다.
가파른 길을 내려온 뒤에야 맛보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여행도, 인생도 결국 이런 소소한 위로 덕분에 계속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비 오는 코임브라의 오후가 커피 향과 함께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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