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포르투갈 여행(33). 호텔 킨타 다스 라그리마스, 포르투갈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무대.】《붉은 눈물이 흐르는 정원에서, 전설에 취하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5. 12. 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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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LJSBBJegpk

 

 

 

 

 

 

 

포르투갈 여행(33). 호텔 킨타 다스 라그리마스, 포르투갈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무대.】《붉은 눈물이 흐르는 정원에서, 전설에 취하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코임브라의 푸른 어둠이 내려앉은 밤, 나는 전설이 잠든 18세기 궁전을 개조한 5성급 호텔 '킨타 다스 라그리마스(Quinta das Lágrimas)'에 도착했다.

'눈물의 저택(Estate of Tears)'이라는 이름이 주는 서늘한 아름다움 때문일까.

밤하늘 아래 빛나는 하얀 건물은 고고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처연해 보였다.

 

이곳은 포르투갈의 왕자 페드로(Pedro)와 시녀 이네스 드 카스트로(Inês de Castro)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의 무대이다.

신분의 차이와 정치적 이유로 왕의 반대에 부딪힌 두 사람은 이곳 정원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결국 이네스는 왕이 보낸 자객들에 의해 이곳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기묘한 형상의 드레스였다.

목이 없는, 그러나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의복.

순간의 놀라움이 가라앉자, 그것이 비운의 여인 '이네스'임을 직감했다.

사랑했기에 죽어야 했고, 죽어서야 왕비가 될 수 있었던 여인. 그녀의 부재(不在)하는 얼굴은 오히려 이곳의 공기를 꽉 채우는 그리움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영혼이 머무는 정원을 거닐었다.

수 세기 전, 페드로 왕자가 그녀를 기다리며 서성였을 그 길이다.

어둠 속에서도 붉게 비치는 낡은 분수는 마치 멈춰버린 그들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

정원에는 '사랑의 샘(Fonte dos Amores)''눈물의 샘(Fonte das Lágrimas)’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샘은 이네스가 죽어가며 흘린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며, 샘 바닥의 돌에 낀 붉은 이끼는 그녀가 흘린 피의 흔적이라고 전해진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선 미슐랭 레스토랑 '아르카다스(Arcadas)'는 과거의 슬픔을 현재의 미식으로 위로하는 공간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전통(Tradition)' 메뉴는 포르투갈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들이다.

차가운 화이트 와인 한 잔이 목을 타고 흐르자, 긴장했던 감각들이 부드럽게 깨어났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아뮤즈 부쉬(Amuse-Bouche)로 나온 것은 바삭하게 튀긴 크로켓 류와 버섯 등을 활용한 타르트다.

 

트러플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감자 폼 속에 숨겨진 부드러운 달걀요리('LT Egg')는 마치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 따스하고 녹진했다.

LT'Low Temperature(저온 조리)'를 뜻한다.

캐러멜라이징한 양파, 판체타(이탈리아식 베이컨), 트러플(송로버섯) 향을 입힌 감자 폼(거품)을 곁들인 요리다.

부드러운 수란과 짭조름한 판체타, 고소한 감자 거품이 화이트 와인과 아주 잘 어울린다.

 

이어 나온 농어(Sea bass) 필렛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갈릭 버터 소스로 풍미를 더했고, 아스파라거스와 케이퍼 샐러드, 그리고 볶은 감자가 곁들여졌다. 생선 뼈 모양의 장식 튀김(Tuile)이 인상적이다.

농어의 담백함이 화이트 와인의 산미와 완벽한 마리아주를 이룬다.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의 조화, 그 위에 곁들여진 와인은 이 오래된 저택의 이야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마지막으로 숟가락으로 톡 깨트려 먹은 달콤한 레이트 크레먭(Leite Creme)과 상큼한 소르베(Sorbet)까지.

혀끝에 닿는 달콤함은 이곳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마저도 낭만적인 추억으로 바꿔놓는 마법 같았다.

 

창문 너머로 정원이 그림처럼 보였다.

와인 잔을 들며 바라본 창밖엔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잔향이 있었다.

이곳의 밤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엔 수많은 감정이 흘렀다.

난 시간이 눈물로 빚어낸 하나의 이야기 속에 잠시 머물렀고, 그 여운은 아직 내 마음 속에서 천천히 흐르고 있다.

이곳에서 700년 전의 사랑과 슬픔, 그리고 그것을 예술과 맛으로 승화시킨 포르투갈의 영혼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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