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8,000보라고?.】《노년의 행복은 낯선 골목을 활기차게 걸어갈 수 있는 힘에서 시작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골목길 걷기를 좋아한다.
낯선 도시의 이름 모를 골목, 빨래가 널린 낡은 담벼락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낯선 언어의 노랫소리.
그 길들을 걸으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베니스의 골목이든, 이스탄불의 시장이든, 돌로미티의 산길이든, 두 발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내 세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조용히 두려움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걷는 게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낯선 도시의 골목을 누비던 두 발이 어느 날 무거워진다면.
그건 두려움이었다. 노년이 주는 가장 조용하고 서늘한 종류의 두려움.
그래서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PT를 받으며 하체근력 강화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작년 12월 22일부터 점심 식사 후 30분 이상 걷기 시작했다.
처음 30분은 솔직히 지루했다. 운동을 위한 걷기는 골목길 산책과는 달랐다. 풍경을 즐기는 게 아니라, 그냥 걷는 것이었다.
한 발 한 발. 멈추지 않고. 그게 다였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별것 아닌 것을 매일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어느새 30분이 45분이 되고, 45분이 1시간이 되었다.
하루 7천 보, 8천 보.
2만 보씩 걷는 사람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숫자이지만, 꾸준하게 걸었다.
매일 빠지지 않고,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몸이 조금 무거운 날에도 그냥 걸었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몸이 먼저 알았다. 더 걷고 싶다고. 더 멀리 가고 싶다고.
보폭이 조금씩 커졌고, 발걸음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갤럭시 워치 화면 속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 46.3 최상'이라는 문구를 마주할 때면,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기계의 수치일 뿐이라며 짐짓 모른 척해 보지만, 사실은 그 한마디가 "당신은 여전히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응원처럼 들려 안도감이 밀려온다.
힘차게 걷지 못하는 순간, 노년의 삶은 불행의 늪으로 빠진다. 무섭도록 맞는 말이다.
걷지 못하는 노년은 풍경을 잃어버린 삶과 같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유일한 엔진은 오직 나의 두 다리뿐이다.
카이로의 뒷골목도, 토스카나의 돌담길도, 리스본의 가파른 언덕길도 여전히 내 발 앞에 펼쳐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올해 예정된 아이슬란드 트래킹과 캐나다 겨울 오로라 여행에서 활기차게 걷고 있는 내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늘의 8,000보는 죽을 때까지 골목길을 힘차게 걷고 싶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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