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처분권주의, 변론주의, 소송물의 구분 및 처분권주의 위반 여부>】《민사소송에서 심판 대상은 원고의 의사에 따라 특정되고,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에 대하여 신청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5다49422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처분권주의 위반 여부가 문제된 사건]
【판시사항】
[1] 민사소송에서 법원의 심판 대상과 범위
[2] 갑 외국법인이 을 주식회사를 상대로 을 회사가 갑 법인과 체결한 기술제휴협약에 따라 봉강절단기 제품에 관한 도면을 제공받아 여러 업체에 위 제품을 제조·판매하고서도 이를 갑 법인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기술제휴협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등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위 제품의 제작·판매 등 금지, 갑 법인이 특정한 고유기술의 사용 등 금지, 도면 등의 인도, 손해배상 및 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는 선행판결을 선고받아 판결 확정 후 을 회사와 ‘을 회사가 위 판결에 따른 금전지급의무 중 일부를 면제받고 나머지 의무를 성실히 준수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하였는데, 그 후 다시 을 회사가 위 제품을 제조·판매하자, 갑 법인이 을 회사를 상대로 선행판결 또는 위 약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주위적 청구원인으로 하여 봉강절단기 제조 금지 및 봉강절단기 제조·판매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선행판결이나 위 약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와는 요건과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전혀 별개의 소송물인데도, 갑 법인이 주위적 청구에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선택적으로 추가하였다고 선해하여 위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에는 민사소송법 제203조에서 정한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민사소송법은 ‘처분권주의’라는 제목으로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심판 대상은 원고의 의사에 따라 특정되고,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에 대하여 신청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여야 한다.
[2] 갑 외국법인이 을 주식회사를 상대로 을 회사가 갑 법인과 체결한 기술제휴협약에 따라 봉강절단기 제품에 관한 도면을 제공받아 여러 업체에 위 제품을 제조·판매하고서도 이를 갑 법인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기술제휴협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등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위 제품의 제작·판매 등 금지, 갑 법인이 특정한 고유기술의 사용 등 금지, 도면 등의 인도, 손해배상 및 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는 선행판결을 선고받아 판결 확정 후 을 회사와 ‘을 회사가 위 판결에 따른 금전지급의무 중 일부를 면제받고 나머지 의무를 성실히 준수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하였는데, 그 후 다시 을 회사가 위 제품을 제조·판매하자, 갑 법인이 을 회사를 상대로 선행판결 또는 위 약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주위적 청구원인으로 하여 봉강절단기 제조 금지 및 봉강절단기 제조·판매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선행판결이나 위 약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라 한다)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와는 요건과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전혀 별개의 소송물인데도, 갑 법인과 을 회사가 영업비밀성에 관한 공방을 하자, 갑 법인이 주위적 청구에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따른 금지 청구와 같은 법 제11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선택적으로 추가하였다고 선해한 다음, 갑 법인이 특정한 기술정보 중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가 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정보이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비밀로 유지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한 것으로 영업비밀에 해당하고, 을 회사가 영업비밀의 침해 금지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하나 그 기간이 지났다거나 언제까지라고 합리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에는 갑 법인이 신청하지도 않은 사항에 대하여 판결함으로써 민사소송법 제203조에서 정한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2. 사안의 요지 및 쟁점
가. 사실관계
⑴ 원고와 피고는 모두 봉강절단기1)를 제조․판매하는 회사이다. 피고는 1993년경부터 제조․판매한 봉강절단기가 원고의 봉강절단기를 모방한 것이 문제 되자, 1995. 8. 31. 원고와 기술제휴계약(이하 ‘이 사건 기술제휴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그 내용은 “원고가 피고에게 봉강절단기 제작 기술을 이전하고, 피고는 제작실시료로 판매가격의 15%를 지급하며, 7년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거나 계약이 파기된 경우에는 피고는 위 계약에 따라 이전받은 원고의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⑵ 피고는 이 사건 기술제휴계약에 따라 원고로부터 봉강절단기 제품에 관한 도면 2,100장을 제공받아 1995. 8. 24.부터 1999. 2. 24.까지 ○○○○ 등 여러 업체에 봉강절단기를 제조․판매하고도 이를 원고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⑶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기술제휴계약 위반을 이유로 위약금 등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항소심은 2002. 9. 25. 봉강절단기의 제작․판매․위탁 금지, 원심판결 별지 2에 기재된 원고의 고유기술(이하 ‘원고 고유기술’이라 한다)에 대한 사용․유포 금지, 도면, 문서 등의 인도청구를 모두 받아들이고, 손해배상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청구액 중 일부인 5억 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서울고등법원 2002. 9. 25. 선고 2001나40024 판결, 이하 ‘선행판결’이라 한다)을 선고하였다. 이에 피고가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었다(대법원 2003. 2. 11. 선고 2002다59658 판결).
⑷ 원고와 피고는 2004. 3. 15. 피고가 선행판결에 따른 금전지급의무 중 일부를 면제받고, 선행판결에 따른 나머지 의무를 성실히 준수하기로 약정하였다(이하 ‘2004.
3. 15.자 약정’이라 한다).
⑸ 피고는 2005. 8. 22.부터 2012. 9. 1.까지 봉강절단기 17대를 판매금액 합계 5,824,487,048원에 제조․판매하였다.
⑹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선행판결 또는 2004. 3. 15.자 약정에 따른 원고 고유기술 사용 금지의무 위반을 주위적 청구원인으로 하여 ① 봉강절단기의 제조 금지, ② 봉강절단기 제조․판매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선행판결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는 원고 고유기술은 공지되지 않은 노하우 또는 영업비밀에 한정되는데 이 부분이 특정되지 않았고 주장․증명되지도 않았으며, 선행판결의 변론종결 이후 원고 고유기술의 영업비밀성이 소멸하였는데도 선행판결 또는 기술제휴약정에 따라 피고에게 영구적인 사용금지를 구하는 것은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관한 법리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고, 피고는 원고 고유기술을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제1심법원은 피고의 선행판결에 따른 의무 위반을 인정하여 봉강절단기의 제조 금지 청구와 손해배상청구 중 일부(총판매금액의 15%)를 인용하였다.
⑺ 원고와 피고 모두 제1심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였다. 원고는 제1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의 지연손해금 기산일에 관해서만 다투고, 제1심에서의 청구원인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고는 주위적 청구가 원고 고유기술이 특허로서의 효력 또는 영업비밀성을 상실하였는지 여부와는 무관한 선행판결에 따른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청구임을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원고는 재판부의 석명에 따라 원고가 피고에게 제공한 도면들을 제출하고, 위 도면상 특허 등에 의해 공지되지 않은 원고의 노하우, 영업비밀 등을 특정하여 이 부분(이하 ‘원고 특정 기술정보’라 한다)이 원고 고유기술이자 영업비밀이고, 피고가 이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하며 제1심에서와 같은 피고 주장을 반박하였다.
⑻ 원심의 판단
원심은 원고가 원심에서 주위적 청구에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라 한다) 제10조 제1항에 따른 금지 청구, 제11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선택적으로 추가하였다고 선해하였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이유로, 위 금지 청구를 인용하고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2 제5항에 따른 상당한 손해액으로 총판매금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의 지급을 명하였다.
① 원고 특정 기술정보 중 ‘구동실린더가 4륜 롤러의 상측에 위치하는 구조’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는 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정보이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비밀로 유지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한 것으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
② 피고가 원고 특정 기술정보 중 ‘유압기기, 에어기기 및 배관, 리미트 스위치, 벨로즈’를 제외한 나머지 기술정보를 사용하여 원심판결 별지 3 봉강절단기를 제조․판매하였다. 피고는 침해 금지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하나, 피고가 침해한 원고의 영업비밀의 침해 금지기간이 지났거나, 그 기간이 언제까지라고 합리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⑼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선행판결이나 위 약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와는 요건과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전혀 별개의 소송물인데도, 원고가 주위적 청구에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선택적으로 추가하였다고 선해하여 위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에는 민사소송법 제203조에서 정한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원심과 같이 청구원인에 대한 선해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원심은 영업비밀 요건 중 비공지성, 비밀관리성과 금지기간 도과 여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나. 쟁점
⑴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원고의 고유기술’을 사용하거나 타에 유포하여서는 안 된다는 선행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피고가 다른 모델번호로 제품을 생산하자, 원고가 선행 확정판결에 따른 원고의 고유기술 사용금지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새로운 제품의 제작행위 금지를 구한 사안이다.
⑵ 이 사건의 쟁점은, 선행판결 또는 약정에 따른 의무위반을 이유로 한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를 구하는 사건에서 원고의 청구에 영업비밀침해를 원인으로 한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가 포함된 것으로 선해하여 이를 인용한 것이 처분권주의에 반하는지 여부(적극)이다.
⑶ 민사소송법은 ‘처분권주의’라는 제목으로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심판 대상은 원고의 의사에 따라 특정되고,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에 대하여 신청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82. 4. 27. 선고 81다카550 판결, 대법원 2013. 5. 9. 선고 2011다61646 판결 등 참조).
⑷ 선행판결이나 약정에 따른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와는 그 요건과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전혀 별개의 소송물이다. 따라서 원고와 피고가 비록 영업비밀성에 관한 공방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주위적 청구에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⑸ 기술제휴계약 위반을 이유로 피고에 대하여 기술정보 이용 등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원고가 다시 이 사건으로 위 판결에 따른 피고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제품의 제조 금지 및 손해배상을 구하였는데, 피고는 ‘선행판결의 효력이 영업비밀에 한정되고 영업비밀성이 소멸되어 더 이상 그 사용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영업비밀성을 다투었고, 원고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영업비밀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⑹ 원심은 원고의 청구에 영업비밀침해를 원인으로 한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가 포함된 것으로 선해하여 이를 인용하였으나, 이 판결은 이러한 원심판단이 처분권주의에 반한다고 보아 파기환송하였다.
⑺ 이 판결은 부가적으로, 영업비밀침해를 선택적 청구원인으로 주장한 것으로 선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 특정 기술정보의 비공지성, 비밀관리성, 금지기간 도과 여부 등에 판단에도 심리미진 등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3. 처분권주의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731-1733 참조]
가. 의의
⑴ “처분권주의”라 함은 절차의 개시, 심판의 대상, 그리고 절차의 종결에 대하여 당사자에게 주도권을 주어 그 처분에 맡기는 원칙을 말한다.
⑵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사권(私權)에 관하여는 처분의 자유가 인정되므로 사권을 법원을 통해 실현할 것인지 여부와 어떠한 사권을 실현하려는 것인가를 당사자의 의사에 맡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⑶ 흔히 처분권주의를 변론주의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처분권주의는 당사자의 ‘소송물’에 대한 처분자유를 뜻하는 것임에 대하여, 변론주의는 당사자의 ‘소송자료’에 대한 수집책임을 뜻하는 것이므로 양자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⑷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를 포괄하여 “당사자주의”라는 개념도 쓰이며, 이 개념이 직권주의에 대응되는 것이다.
나. 내용
⑴ 절차의 개시
① 민사소송절차는 당사자의 소의 제기에 의하여 비로소 개시되며 결코 법원의 직권에 의하여 개시되지 않는다.
② 다만, 예외적으로 주된 절차 내에서의 부수적 사항에 관하여는 당사자의 신청 없이 직권으로 재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③ 소송비용재판(민소 104조, 107조 1항), 소송구조결정(민소 128조 1항), 가집행선고(민소 213조 1항), 판결의 경정(민소 211조 1항), 재판의 누락에 의한 추가판결(민소 212조 1항), 배상명령(소촉법 25조) 등이 그것이다.
⑵ 심판의 대상
① 민사소송절차에서 심판의 대상은 원고의 의사에 의하여 특정되고 한정되기 때문에,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에 대하여 신청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여야 한다(민소 203조).
② 따라서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과 별개의 사항에 대해 판결할 수 없고 또 신청의 범위를 넘어서 판결할 수도 없다.
③ 이러한 법리는 상소심에서도 적용되므로 상소심에서 부대상소의 제기가 없는 한, 상소인에게 불이익으로 원판결을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불이익변경금지, 민소 415조, 431조).
④ 또 반소의 제기가 없는 한 원고에 대하여 이행을 명하는 판결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⑶ 절차의 종결
① 개시된 절차를 종국판결에 의하지 않고 종결시킬 것인지 여부도 당사자의 의사에 일임되어 있다.
② 따라서 당사자는 어느 때나 소의 취하, 청구의 포기․인낙 또는 화해에 의하여 절차를 종결시킬 수 있다.
③ 또 상소의 취하, 불상소의 합의, 상소권의 포기도 인정된다.
4. 변론주의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731-1733 참조]
가. 의의
⑴ “변론주의”라 함은 소송자료, 즉 사실과 증거의 수집․제출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맡기고, 당사자가 수집하여 변론에서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는 원칙을 말한다.
⑵ 이에 대하여 “직권탐지주의”라 함은 소송자료의 수집․제출의 책임을 당사자가 아닌 법원이 지게 되어 있는 원칙을 말한다.
⑶ 민사소송은 민사분쟁, 즉 개인적인 이익 내지 사권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로서 국가는 그것이 어떻게 종결되느냐에 관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는 것이므로, 민사분쟁의 재판을 위한 판단자료는 당사자에게 제출하게 하는 것이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오랜 경험에 의하여 민사소송에 있어서는 변론주의가 직권탐지주의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나. 내용
⑴ 주장책임
① 주요사실(요건사실)은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하지 않으면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 없고, 그 사실은 없는 것으로 취급되어 불이익한 판단을 받게 되는데, 이를 “주장책임”이라고 한다.
② 그러나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하였으면 충분하고 양쪽 당사자 중 어느 쪽에서 진술하였는가는 문제되지 않는다(주장공통의 원칙).
③ 변론주의는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적용되고 그 경위, 내력 등 간접사실에 대하여는 적용이 없다(대법원 1993. 9. 14. 선고 93다28379 판결).
⑵ 자백의 구속력
①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은 증거조사를 할 필요 없이 그대로 판결의 기초로 하여야 한다.
② 변론주의에 의하는 소송절차에 있어서는 자백이 있으면 그 사실에 관하여는 법원의 사실인정권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③ “다툼이 없는 사실”이라 함은 상대방이 자백한 사실(민소 288조)과 자백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실(민소 150조, 257조 1항)을 말한다.
④ 다툼이 없는 사실에 대하여는 증거에 의한 사실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의 심증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에 반하는 사실인정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⑶ 직권증거조사의 제한
① 다툼이 있는 사실의 인정에 쓰이는 증거자료는 당사자가 신청한 증거방법으로부터 얻어야 하고, 당사자가 제출하지 않는 증거는 원칙적으로 법원이 직권조사할 수 없다.
② 직권증거조사는 당사자가 신청한 증거에 의하여 심증을 얻을 수 없거나,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민소 292조).
③ 다만, 소액사건에서는 예외이다(소액법 10조 1항).
5. 민사소송의 당사자주의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731-1733 참조]
가.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의 차이 (= ‘소송물’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구별함)
⑴ 처분권주의란 “청구하지 않으면 심판하지 못한다.”는 법리다. 소송물에 관한 것이다.
처분권주의는 소송의 개시, 심판의 대상, 소송의 종료를 당사자에 일임한다(민사소송법 203조).
⑵ 변론주의란 “주장하지 않으면 판단하지 못한다.”는 법리다. 소송물 내에서 요건사실의 주장책임에 관한 것이다.
변론주의는 소송자료의 수집을 당사자에 일임한다(주장책임, 증거제출책임, 자백의 구속력).
나. 구별기준
⑴ 대법원은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를 명백하게 구분하고 있다. 대법원은 처분권주의를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⑵ 소의 변경은 원칙적으로 서면으로 하게 되어 있다.
⑶ 소송물의 특정은 당사자 방어의 기본이 되고, 피고는 원고가 소송물로 주장하는 것에 대응하여 피고에게 유리한 소송자료를 제출할 것이다.
⑷ 피고가 소송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유리한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법원이 선해하여 서면에 나타나지 않은 소송물을 인정하게 되면 피고 입장에서는 불의타일 것이다.
다. 원고가 구하는 소송물의 본질을 알아야 처분권주의 위반 문제인지, 변론주의 위반 문제인지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음
⑴ 당사자는 요건사실, 즉 사실관계만 주장하면 되는 것이고 법률적인 주장을 할 필요는 없다.
⑵ 구체적인 사례
① 무효, 취소만 주장하고 해제 주장을 안 했는데, 해제를 인정한 경우 이는 변론주의 위반이다.
② 채무불이행책임만 주장했는데,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경우는 처분권주의 위반이다.
③ 민법상 담보책임만을 구하는데,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한 경우 이는 처분권주의 위반이다.
법원은 민법상 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을 청구권 경합관계로 보고 있다.
④ 계약이 해제되었음을 이유로 해제 후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구한 사안에서 법원은 이를 인용할 수 있다. 원상회복청구권의 본질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므로, 원고가 ‘원상회복청구’를 구하는 것으로 선해할 수 있다.(변론주의)
⑤ 부정경쟁방지법 2조 1호 카목[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2021. 12. 7. ‘파’목으로 변경됨)]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는데, 원고가 주장하는 기간이 카목의 신설 전이었던 사안에서 법원은 불법행위로 인용할 수 있다. 위 카목상 부정경쟁행위의 본질은 민법상 불법행위이므로(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원고가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하는 것으로 선해할 수 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6다276467 판결).
라. ‘변론주의’의 타당성
⑴ 가령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에도 피고들 중 일부에게 소장 송달이 되지 않아 일부 피고들에 대하여는 원고승소판결(공시송달)이 선고되고, 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한 피고들에 대하여는 원고패소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변론주의’가 타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⑵ 그러나 ‘변론주의’는 법관이 중립적 지위에서 절차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법원칙이다.
⑶ 다만 대법원에서 ‘변론주의’ 위반을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파기환송심에서 당사자가 새로 ‘주장’을 하면 다시 같은 내용의 판결이 선고되므로, 변론주의 위반을 이유로 상고하거나 파기할 실익이 별로 없다.
마. 재개발조합 조합장의 자격요건에 관하여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사유를 이유로 조합장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변론주의원칙에 반한다고 본 사례(대법원 2022. 2. 24. 선고 2021다291934 판결)
⑴ 이 사건의 쟁점은, 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1조 제1항의 전문과 후문의 의미(전문: 선임 자격 요건, 후문: 자격 유지 요건), ② 원고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1조 제1항 전문의 요건 위반을 주장하였는데 원심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1조 제1항 후문의 요건 위반 여부를 판단하여 청구를 인용한 것이 변론주의 위반에 해당되는지(적극)이다.
⑵ 법원은 변론주의 원칙상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서만 판단해야 하고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사항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못한다(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다7565 판결 참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고 한다) 제41조 제1항은 조합의 임원 선임 자격 요건과 자격 유지 요건을 전문과 후문으로 구분하여 정하고 있다. 당사자가 위 두 요건 중 하나만 주장한 경우에는 변론주의 원칙상 법원은 그 주장에 대해서만 판단해야 한다.
⑶ 원고가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전문의 조합장 선임 자격 요건 위반을 주장하였음에도 원심이 도시정비법 제41조 제1항 후문의 조합장 선임 후 자격 유지 요건 위반 여부를 판단하여 청구를 인용한 것은 변론주의 위반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이다.
6.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
가. 처분권주의
⑴ 의의
① “처분권주의”라 함은 절차의 개시, 심판의 대상, 그리고 절차의 종결에 대하여 당사자에게 주도권을 주어 그 처분에 맡기는 원칙을 말한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사권(私權)에 관하여는 처분의 자유가 인정되므로 사권을 법원을 통해 실현할 것인지 여부와 어떠한 사권을 실현하려는 것인가를 당사자의 의사에 맡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② 흔히 처분권주의를 변론주의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처분권주의는 당사자의 ‘소송물’에 대한 처분자유를 뜻하는 것임에 대하여, 변론주의는 당사자의 ‘소송자료’에 대한 수집책임을 뜻하는 것이므로 양자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를 포괄하여 “당사자주의”라는 개념도 쓰이며, 이 개념이 직권주의에 대응되는 것이다.
⑵ 내용
㈎ 절차의 개시
민사소송절차는 당사자의 소의 제기에 의하여 비로소 개시되며 결코 법원의 직권에 의하여 개시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주된 절차 내에서의 부수적 사항에 관하여는 당사자의 신청 없이 직권으로 재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소송비용재판(민소 104조, 107조 1항), 소송구조결정(민소 128조 1항), 가집행선고(민소 213조 1항), 판결의 경정(민소 211조 1항), 재판의 누락에 의한 추가판결(민소 212조 1항), 배상명령(소촉법 25조) 등이 그것이다.
㈏ 심판의 대상
민사소송절차에서 심판의 대상은 원고의 의사에 의하여 특정되고 한정되기 때문에,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에 대하여 신청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여야 한다(민소 203조).
따라서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과 별개의 사항에 대해 판결할 수 없고 또 신청의 범위를 넘어서 판결할 수도 없다.
이러한 법리는 상소심에서도 적용되므로 상소심에서 부대상소의 제기가 없는 한, 상소인에게 불이익으로 원판결을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불이익변경금지, 민소 415조, 431조).
또 반소의 제기가 없는 한 원고에 대하여 이행을 명하는 판결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 절차의 종결
개시된 절차를 종국판결에 의하지 않고 종결시킬 것인지 여부도 당사자의 의사에 일임되어 있다.
따라서 당사자는 어느 때나 소의 취하, 청구의 포기․인낙 또는 화해에 의하여 절차를 종결시킬 수 있다.
또 상소의 취하, 불상소의 합의, 상소권의 포기도 인정된다.
나. 변론주의
⑴ 의의
① “변론주의”라 함은 소송자료, 즉 사실과 증거의 수집․제출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맡기고, 당사자가 수집하여 변론에서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는 원칙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직권탐지주의”라 함은 소송자료의 수집․제출의 책임을 당사자가 아닌 법원이 지게 되어 있는 원칙을 말한다.
② 민사소송은 민사분쟁, 즉 개인적인 이익 내지 사권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로서 국가는 그것이 어떻게 종결되느냐에 관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는 것이므로, 민사분쟁의 재판을 위한 판단자료는 당사자에게 제출하게 하는 것이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오랜 경험에 의하여 민사소송에 있어서는 변론주의가 직권탐지주의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⑵ 내용
㈎ 주장책임
주요사실(요건사실)은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하지 않으면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 없고, 그 사실은 없는 것으로 취급되어 불이익한 판단을 받게 되는데, 이를 “주장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하였으면 충분하고 양쪽 당사자 중 어느 쪽에서 진술하였는가는 문제되지 않는다(주장공통의 원칙).
변론주의는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적용되고 그 경위, 내력 등 간접사실에 대하여는 적용이 없다(대법원 1993. 9. 14. 선고 93다28379 판결).
㈏ 자백의 구속력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은 증거조사를 할 필요 없이 그대로 판결의 기초로 하여야 한다.
변론주의에 의하는 소송절차에 있어서는 자백이 있으면 그 사실에 관하여는 법원의 사실인정권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다툼이 없는 사실”이라 함은 상대방이 자백한 사실(민소 288조)과 자백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실(민소 150조, 257조 1항)을 말한다.
다툼이 없는 사실에 대하여는 증거에 의한 사실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의 심증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에 반하는 사실인정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 직권증거조사의 제한
다툼이 있는 사실의 인정에 쓰이는 증거자료는 당사자가 신청한 증거방법으로부터 얻어야 하고, 당사자가 제출하지 않는 증거는 원칙적으로 법원이 직권조사할 수 없다.
직권증거조사는 당사자가 신청한 증거에 의하여 심증을 얻을 수 없거나,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민소 292조).
다만, 소액사건에서는 예외이다(소액법 10조 1항).
7. 처분권주의 위반 여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3호, 이경은 P.153-167 참조]
가. 제1심 및 원심에서의 원피고의 주장 및 원심의 청구원인에 대한 선해
⑴ 원심은 “원고는 피고가 선행판결에 따른 원고의 고유기술 사용금지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피고 봉강절단기 제품의 제작행위 금지를 구하나, 이를 기술제휴계약 또는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의 금지청구권에 기초하여 피고에게 대하여 피고의 봉강절단기 제품 제작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것으로 선해한다.”라고 하였다.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도 ‘선행판결을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나 이를 기술제휴계약 위반 및 2004. 3. 15.자 약정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으로 선해’하고 따라서 청구원인을 선택적으로 위 약정 위반 또는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2 제3항에 따라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⑵ 원고의 청구원인은 제1심 이래 원심 변론종결 시까지 일관되게 선행판결에 따라 피고가 원고 고유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의무를 위반한 것이었다. 원고가 여기에 선행판결의 원인이 된 기술제휴계약에 따른 원고 기술정보 사용금지의무와 선행판결 이후 선행판결에 따른 금전지급의무를 감액해 주면서 선행판결에 따른 위 사용금지의무를 잘 준수하겠다는 합의서를 작성(2004. 3. 15.자 약정)하였음을 추가로 주장하
기도 하였으나, 그 외에는 일관되게 원고 고유기술에 관한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이나 영업비밀성은 이 사건 청구와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⑶ 영업비밀성은 피고가 먼저 언급하였는데, 피고는 “선행판결의 ‘원고 고유기술’은 공지된 기술이거나 특허성이 소멸된 기술을 제외한 ‘영업비밀’에 한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영업비밀성도 선행판결 후에는 소멸되었으므로 원고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이 사건 청구는 특허성이나 영업비밀성과 무관한 청구이고, 피고의 주장은 선행판결에서 이미 다투어졌어야 하는 것으로, 선행판결의 효력에 반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라는 입장을 유지하였다. 그러면서도 원고는 재판부의 석명에 따라 원고 고유기술이 기재된 도면을 증거로 제출하고, ‘각 도면에 기재된 정보들 중 특허권이 소멸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영업비밀성이 유지되는 원고 회사의 고유기술, 즉 노하우’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고, 이후 위 도면들을 바탕으로 피고의 원고 도면 사용 여부가 다투어지게 되었다.
나. 원고의 청구원인에 영업비밀 침해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선해할 수 있는지 여부
⑴ 별개의 소송물
원칙적으로 선행판결에 따른 부작위의무 위반 또는 약정 위반을 청구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는 소송물을 달리하는 전혀 별개의 청구여서, 전자에 후자의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힘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원피고의 공방 과정에서 원고 특정 기술정보의 영업비밀성이 다투어졌다는 점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가 영업비밀 침해 주장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⑵ 요건 및 피고의 방어방법의 차이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한 청구의 경우에는 원고가 영업비밀성의 요건인 ① 비공지성, ② 경제적 유용성, ③ 비밀관리성과 피고의 영업비밀 사용을 증명하여야 하고, 이에 따라 피고의 방어방법 역시 달라지게 된다.
반면, 선행판결에 따른 부작위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구할 때, 금지청구의 경우에는 선행판결에서 금지된 것과 동일한 금지를 구하는 것은 간접강제의 영역으로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각하될 여지가 있고, 손해배상청구의 경우에는 선행판결에 따른 의무 위반 행위, 손해 발생, 인과관계, 고의, 과실을 청구원인으로 증명하여야 하며, 이 때 피고의 경우 금지 청구에 대하여는 각하 항변을,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부인 또는 권리남용의 항변이 가능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영업비밀 침해가 청구원인으로 주장되었다면, 피고는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과 비밀관리성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부인 주장 등으로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비공지성의 의미에 대하여 ‘그 정보가 간행물 등의 매체에 실리는 등 불특정 다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정보를 통상 입수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대법원 2009. 7. 9. 선고 2006도7916 판결 등), 한편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역설계를 통해 취득한 영업비밀, 즉 용이하게 입수가능하지 않은 영업비밀은 비공지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이에 의하면, 어느 정도 시간과 비용을 들인 역설계의 경우 비공지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볼 것인지의 어려운 문제가 남게 된다. 통상은 비밀보유자 측에서 비밀의 내용을 특정하고 이를 비밀로서 관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경우, 침해자 측에서 공지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면, 비밀보유자 측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되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비밀관리성도 그 증명책임은 원고에게 있으나, 피고로서는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지 않았음을 주장하고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피고는 금지기간 도과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판례는 원심 변론종결 시를 기준으로 제반 사정에 비추어 해당 영업비밀의 보호기간이 존속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판결확정 시를 기산점으로 하여 금지청구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보호기간이 이미 도과되었다고 판단하는 경우 퇴직 시 또는 침해행위 시를 기산점으로 하여 금지청구를 기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는 ‘침해행위자가 그러한 침해행위에 의하여 공정한 경쟁자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영업비밀 보유자로 하여금 그러한 침해가 없었더라면 원래 있었을 위치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달성함에 필요한 시간적 범위 내에서 기술의 급속한 발달상황 및 변론에 나타난 침해행위자의 인적․물적 시설 등을 고려하여 침해행위자나 다른 공정한 경쟁자가 독자적인 개발이나 역설계와 같은 합법적인 방법에 의하여 그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상당한 기간 동안으로 제한하여야 하고, 영구적인 금지는 제재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을 조장하고 종업원들이 그들의 지식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는 공공의 이익과 상치되어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34981 판결 등 참조)].
따라서, 피고는 금지청구에 대하여 영업비밀 보호기간이 도과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구체적 방법은 해당 영업비밀이 제3자에 의해 적법하게 역설계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그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증명하거나, 영업비밀 보유자가 이를 개발하는데 들인 시간과 비용이 적음 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고, 영업비밀 보유자가 시중에 판매하거나, 설치한 물건에서 역설계가 가능한 상태에 있다면 감정 등의 증거방법을 통하여 역설계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등을 증명하여 비공지성을 다투거나 금지기간의 단축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⑶ 이 사건에 대한 검토
이 사건에서는 영업비밀 침해가 청구원인으로 주장되었다면 원고 고유기술의 비공지성, 금지기간 도과 여부 등과 관련하여 역설계에 필요한 기간 등의 주장, 증명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수 있었던 상황으로 보인다.
반면, 원고가 애초에 영업비밀 침해를 청구원인으로 주장하였다면, 통상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의 상대방의 방어 수단으로, 영업비밀 보유자가 시중에 판매하거나 설치한 물건이 역설계 가능한 상태에 있다면 감정 등의 증거방법을 통하여 역설계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등을 증명하여 비공지성을 다투거나 금지기간의 단축을 주장, 증명하는 식으로 심리가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영업비밀성 및 영업비밀성의 소멸 여부가 다투어졌다고는 하지만, 이 사건 봉강절단기의 특성(공작기계) 및 원고 또는 피고에 의한 시중 판매 기간 등을 고려하면 비공지성의 인정과 금지기간의 단축 등에서 감정 등에 의한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고 가능도 하였던 사안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증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사건의 원고 청구원인과 피고의 주장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증명 부족을 피고의 증명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부당한 면이 있다. 즉, 원심이 원고의 청구원인을 영업비밀 침해로 선해하는 것은 피고에게 불측의 손해를 주게 된다.
결국 각 청구원인에 따른 요건, 증명책임, 피고의 방어방법의 차이, 원심 변론 종결 당시까지 원고는 일관되게 이 사건 청구는 원고 특정 기술정보 또는 원고 고유기술의 영업비밀성과는 무관한 청구라고 주장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의 청구원인에 영업비밀 침해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선해하기 어려우므로, 원심판결에는 처분권주의 위반의 잘못이 인정된다.
8. 대상판결의 내용분석 (= 소송물의 구분 및 처분권주의 위반 여부)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263-265 참조]
가. 기판력의 본질 (= 모순금지)
⑴ 판례는 소송법설을 채택하였다.
“실체상의 권리관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⑵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권리가 창설되는 것이 아니므로, 선행 확정판결에 따라 피고에게 의무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⑶ 다만, 선행 확정판결에서 인정되었던 실체법상 의무인 최초의 기술계약에 따른 의무 위반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 대상판결의 검토
⑴ 선행판결이나 최초 기술계약에 따른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와는 그 요건과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전혀 별개의 소송물이다.
⑵ 원고와 피고가 비록 영업비밀성에 관한 공방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주위적 청구에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심이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청구를 한 것으로 선해한 것은 처분권주의 위반이다.
⑶ 대상판결은 영업비밀 침해로 보기도 어렵다고 보았다.
다. ‘제1심 청구취지 금액’ 판단 여부 (‘항소취지 금액’인 경우, 청구취지 변경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⑴ 인지를 붙였는지를 기준으로 구별한다. 인지를 붙였으면, 청구취지 확장으로 볼 수 있다.
⑵ 인지를 붙이지 않았으면, 조서에 청구취지 범위 내로 항소취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 대상판결의 판시 내용
⑴ 대상판결은 일견 당사자 사이에 공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 요건과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별개의 청구를 원고가 주장한 청구원인에 포함된 것으로 선해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한 사례이다. 원고 청구원인 중 선행확정판결이나 약정에 따라 사용금지의무가 부과되는 정보가 다소 광범위하거나 불명확하게 특정되어 있어 이를 확정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청구를 판단함으로써 불측의 손해를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⑵ 또한, 대상판결은 가정적 판단이지만 원심의 영업비밀성 및 금지기간 도과 여부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는데, 이 부분 판단은 기계장치, 특히 대상판결에서 문제 된 봉강절단기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시중에 판매된 공작기계의 설계도면에 표시된 형상 관련 정보 및 기술 내용에 관한 정보의 영업비밀성과 금지기간 도과 여부의 판단 방법에 참고할 수 있는 사례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