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력운동에 진심인 이유】《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지나온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해변에 밀려온 한낱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근력운동이다.
1주일에 3번씩 2시간 가량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PT를 받고, 나머지 시간 동안 다른 운동을 가볍게 한 후 3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으로 마무리한다.
고통스럽고 힘들긴 해도 참고 끝까지 마치고 나면, 몸의 중심에서 모든 걸 깡그리 쥐어짜내버린 것 같은, 어쩌면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서 우러난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노곤함이 몰려와 곧장 침대로 달려가 작은 새끼 사슴마냥 곯아떨어진다.
누군가는 나에게 의지가 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반대다.
운동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PT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꾸준히 운동하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만 두게 되어 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근력운동에 흥미가 있다면, 그냥 놔둬도 그 사람은 언젠가는 쇠질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흥미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권한다고 해도 허사일 것이다.
휘트니스 센터에서 1주일에 3번 2시간씩 근력운동을 하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이든 사람이 너무 무리하면 절대 안 돼.”라고 조언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힘 없이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고, 근력운동이 확실히 그런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휘트니스 센터에 가면, 나이든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보다 더 튼튼하고 멋진 몸매와 근육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내가 흉내 내기도 힘든 엄청난 무게의 쇠질을 한다.
하지만 나이 든 지금 나는 ‘지는 일’에 잘 길들여져 있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자신만만한 젊은이들은 아직 그런 아픔을 모를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것들을 지금부터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나에게도 그런 빛나는 날이 있었을까?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늙어본 적이 없지만, 난 젊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역동적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멋져 보이고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확실하게 이어져가는 것이구나.’라고 소박하게 실감한다.
난 건강하고 여유롭게 늙어가고 싶다.
그러나 실제의 인생에 있어서는 만사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 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든 배달부이다.
배달부는 모자에 잠깐 손을 대고 어쩐지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가 전해주는 소식의 내용은 조금도 나아지는 법은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두 번째 계획이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간다.
빠르건 늦건 패퇴하고 소멸한다.
작은 수로가 사막으로 소리도 없이 빨려 들어가듯이 말이다.
육체가 시들면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난 그 지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근력운동에 진심인 이유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익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비추어져도 나에게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은다고 해도,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시도했다는 일은 남는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나에게는 시도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