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라 해당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른 인과관계 인정과 증명책임(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19다300866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공장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사고 피해자들이 해당 시설 사업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
【판시사항】
환경오염피해에 대하여 시설의 사업자에게 구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경우,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한 입증의 정도 및 이때 해당 시설에서 배출된 오염물질 등이 피해자나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반드시 직접 증명되어야만 하는지 여부(소극) / 사업자는 같은 법 제9조 제2항의 간접사실들에 대하여 반증을 들어 다투거나 같은 조 제3항의 사실들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하거나 배제시킬 수 있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구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2017. 1. 17. 법률 제145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라 한다)은,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경감하는 등 실효적인 피해구제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환경오염피해로부터 신속하고 공정하게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이러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같은 법에 따른 배상책임과 신고의무 등이 적용되는 ‘시설’을 정하고(제3조), 시설의 설치·운영과 관련하여 ‘환경오염피해’, 즉 시설의 설치·운영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 소음·진동,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원인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정신적 피해를 포함한다) 및 재산에 발생된 피해(동일한 원인에 의한 일련의 피해를 포함한다)에 대한 시설 사업자의 무과실책임을 정하되(제6조 제1항), 환경오염피해가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자의 배상책임한도를 일정 범위로 제한하는(제7조)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9조는, “시설이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제1항)라고 정하고, “제1항에 따른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피해의 양상과 그 밖에 피해발생에 영향을 준 사정 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제2항)라고 정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완화하는 규정을 두었으며, 다만 ‘환경오염피해가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하였거나, 사업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과 관련된 환경·안전 관계 법령 및 인허가조건을 모두 준수하고 환경오염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등 제4조 제3항에 따른 사업자의 책무를 다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추정은 배제’(제3항)되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관련 규정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환경오염피해에 대하여 시설의 사업자에게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경우, 피해자가 같은 법 제9조 제2항이 정한 여러 간접사실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시설의 설치·운영과 관련하여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때 해당 시설에서 배출된 오염물질 등이 피해자나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반드시 직접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편 사업자는 같은 법 제9조 제2항의 간접사실들에 대하여 반증을 들어 다투거나 같은 조 제3항의 사실들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하거나 배제시킬 수 있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7호, 박동규 P.147-171 참조]
가. 사안의 요지
⑴ 피고의 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원고(선정당사자) 및 선정자들(이하 통칭하여 ‘원고 등’이라 한다)이 피고를 상대로 환경오염피해구제법[대상판결의 판시는 구법으로 하였으나, 조문 내용은 현행법(2020. 5. 26. 법률 제17326호로 개정된 것)과 거의 동일하므로, 이하에서는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라고만 한다) 제6조에 따라 위자료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⑵ 이에 대하여 피고는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피고의 공장과 원고 등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다투는 사안이다.
⑶ 결국 이 사건에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상 배상책임과 관련하여 같은 법 제9조에 따라 해당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된다.
나. 사실관계
⑴ 피고는 자신이 설치ㆍ운영하는 화학물질관리법 제2조 제11호의 취급시설(이하 ‘이 사건 공장’이라 한다)에서 같은 법 제2조 제6호의 사고대비물질인 불화수소가 포함된 수용액 상태의 불산(불화수소농도 55%)을 제조하였다.
⑵ 2016. 6. 4. 15:40경 이 사건 공장 내 불화수소 하역시설에서 불산을 차량의 탱크로리에 상차하는 작업을 실시하였는데, 18:00경 하역시설 내부로 2,370㎏ 상당, 하역시설 외부로 약 444.6~871.3㎏ 상당의 불산이 누출되었음이 발견되었다.
누출된 불산이 증발함에 따라 약 33.04㎏ 상당의 불화수소가 기체 상태로 대기 중으로 확산되었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⑶ 원고 및 일부 선정자들은 2016. 6. 4. 두통, 메스꺼움,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여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하였고, 원고 등은 그날부터 6. 29.까지 기침, 가래, 수면장애, 소화장애, 기관지 불편, 두통, 안구통증 등을 호소하면서 인근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았다.
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이 사건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이 기체 상태로 공기 중으로 확산되었다가 지표면으로 낙하하여 원고 등에게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으므로 이 사건 사고와 원고 등에게 발생한 피해 사이에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9조에 따른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① 기체 상태인 불화수소는 대기 중으로 확산된 후 공기 중의 수증기와 반응하여 흰 연기를 형성하면서 다시 불산의 형태로 대부분 지표면으로 낙하하였다.
② 불화수소가 외부로 유출된 경우 유출지점으로부터 대피해야 하는 반경은 소량 유출의 경우 낮 0.2㎞, 밤 0.5㎞이고, 낮보다는 밤에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데, 원고 등의 거주지는 대부분 사고발생지점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300~500m 사이에 있고, 불산 상하차 작업을 시작한 당일 15:00경부터 불산이 누출된 것으로 확인된 18:30경까지 바람은 1.0~2.1㎧의 속도로 이 사건 공장이 있는 북쪽에서 마을 방향으로 불고 있었으며 시간대는 밤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사건 사고지점은 산간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있고, 바람의 세기가 약하거나 짧은 시간에 바람의 방향 변화가 있는 경우 같은 방향으로만 확산이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다. ③ 원고 등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직후 불산에 노출되었을 때 보이는 증상으로서 호흡기 자극에 의한 증상을 공통적으로 호소하였고, 불산 노출 이외에 원고 등에게 위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만한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④ 불화수소는 체내에 유입되더라도 대부분의 양이 24시간 이내에 소변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므로 원고 등의 소변검사에서 불산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원고 등이 호소하는 증상이 이 사건 사고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이에 원심은 원고 등에 대한 위자료로 각 700만 원씩을 인정하였다(다만 제1심은, 원고 등이 누출된 불산에 직접 노출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신체적 피해’는 인정하지 않고, 다만 장래 발생할 불안에 대한 ‘정신적 피해’만 인정하여 위자료 각 500만 원씩을 인용하였다).
다. 쟁점
⑴ 위 판결의 쟁점은,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라 해당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이다.
즉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9조가 적용됨으로 인해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하여 기존 판례에서 설시한 증명주제(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발생)가 직접 증명되어야 하는지, 그 증명주제에 대한 증명의 정도가 낮아지는 것인지 여부가 핵심쟁점이다.
⑵ 구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2017. 1. 17. 법률 제145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라 한다)은,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경감하는 등 실효적인 피해구제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환경오염피해로부터 신속하고 공정하게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같은 법에 따른 배상책임과 신고의무 등이 적용되는 ‘시설’을 정하고(제3조), 시설의 설치ㆍ운영과 관련하여 ‘환경오염피해‘, 즉 시설의 설치ㆍ운영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 소음ㆍ진동,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원인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ㆍ신체(정신적 피해를 포함한다) 및 재산에 발생된 피해(동일한 원인에 의한 일련의 피해를 포함한다)에 대한 시설 사업자의 무과실책임을 정하되(제6조 제1항), 환경오염피해가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자의 배상책임한도를 일정 범위로 제한하는(제7조)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9조는, “시설이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제1항)라고 정하고, “제1항에 따른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피해의 양상과 그 밖에 피해발생에 영향을 준 사정 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제2항)라고 정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완화하는 규정을 두었으며, 다만 ’환경오염피해가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하였거나, 사업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과 관련된 환경ㆍ안전 관계 법령 및 인허가조건을 모두 준수하고 환경오염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등 제4조 제3항에 따른 사업자의 책무를 다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추정은 배제‘(제3항)되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관련 규정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환경오염피해에 대하여 시설의 사업자에게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경우, 피해자가 같은 법 제9조 제2항이 정한 여러 간접사실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시설의 설치ㆍ운영과 관련하여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때 해당 시설에서 배출된 오염물질 등이 피해자나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반드시 직접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편 사업자는 같은 법 제9조 제2항의 간접사실들에 대하여 반증을 들어 다투거나 같은 조 제3항의 사실들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하거나 배제시킬 수 있다.
⑶ 피고가 설치·운영하는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이 증발하여 약 33.04㎏ 상당 불화수소가 기체 상태로 대기 중으로 확산되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자, 인근 마을 주민이었던 원고(선정당사자)와 선정자들이 피고를 상대로 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안이다.
⑷ 원심은, 피고의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이 기체 상태로 공기 중으로 확산되었다가 지표면으로 낙하하여 원고 및 선정자들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볼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⑸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피고의 공장과 원고 및 선정자들에게 발생한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3. 환경오염책임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1363-1365 참조]
가. 위법성의 판단기준
불법행위 성립요건으로서의 위법성의 판단 기준은 그 유해의 정도가 사회생활상 통상의 수인한도를 넘는 것인지 여부인데, 그 수인한도의 기준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침해되는 권리나 이익의 성질과 침해의 정도뿐만 아니라 침해행위가 갖는 공공성의 내용과 정도, 그 지역환경의 특수성, 공법적인 규제에 의하여 확보하려는 환경기준, 침해를 방지 또는 경감시키거나 손해를 회피할 방안의 유무 및 그 난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 사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나. 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의 완화
⑴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가해자의 가해행위, 피해자의 손해발생, 가해행위와 피해자의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은 청구자인 피해자가 부담한다. 다만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에 의한 공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사실적인 인과관계의 존재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공해로 인한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⑵ 반면에 기술적·경제적으로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의한 원인조사가 훨씬 용이한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는 손해발생의 원인을 은폐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가해자가 어떤 유해한 원인물질을 배출하고 그것이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가해자 측에서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가해행위와 피해자의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대법원 2012. 1. 12. 선고 2009다84608, 84615, 84622, 84639 판결 : 김포시 및 강화군 부근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민 甲 등이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를 상대로 수질오염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감정인의 감정 결과 등에 의하면 공사가 운영하는 수도권매립지로부터 해양생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해한 오염물질이 포함된 침출처리수가 배출되었고, 오염물질 중 일정 비율이 甲 등이 조업하는 어장 중 일부 해역에 도달하였으며, 그 후 어장 수질이 악화되고 해양생태계가 파괴되어 어획량이 감소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이므로, 甲 등이 조업하는 어장에 발생한 피해는 공사가 배출한 침출처리수에 포함된 오염물질이 해양생물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하였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공사의 오염물질 배출과 어장에 발생한 해양생태계 악화 및 어획량 감소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고, 공사가 인과관계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반증으로 공사가 배출한 침출처리수에 어장 피해를 발생시킨 원인물질이 들어있지 않거나 원인물질이 들어있더라도 안전농도 범위 내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간접반증으로 어장에 발생한 피해는 공사가 배출한 침출처리수가 아닌 다른 원인이 전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을 증명하여야 할 것인데 원심이 인정한 사정만으로는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고, 나아가 공사가 배출한 오염물질로 인하여 甲 등이 입은 손해는 수인한도를 넘는 것이어서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한 사례.
⑶ 그러나 이 경우에 적어도 가해자가 어떤 유해한 원인물질을 배출한 사실, 유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다는 사실, 그것이 피해물건에 도달한 사실, 그 후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실에 관한 증명책임은 피해자가 여전히 부담한다(대법원 2013. 10. 11. 선고 2012다111661 판결, 대법원 2019. 11. 28. 선고 2016다233538, 233545 판결).
◎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9다292026, 292033, 292040 판결 : 경마공원 인근에서 화훼농원을 운영하는 甲 등이 한국마사회가 경마공원을 운영하면서 경주로 모래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하여 살포한 소금이 지하수를 통해 농원으로 유입되어 甲 등이 재배하던 분재와 화훼 등이 고사하였다고 주장하며 한국마사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한국마사회가 겨울철마다 경주로 모래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하여 뿌린 소금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유입되었고 甲 등이 사용한 지하수의 염소이온농도는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초과하거나 이에 근접한 수치로서 경마공원 부근의 지하수는 농원이 위치한 곳을 지나 주변 하천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다량의 소금 유입이 甲 등이 사용하는 지하수 염소이온농도의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이는 점, 환경관리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마사회가 경주로에서 사용한 염분에 의한 오염물질이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추정되는 점 등에 비추어,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 제1항에 따라 한국마사회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한 사례.
다.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⑴ 환경정책기본법은 오염원인자 책임원칙과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을 정하고 있다. 환경정책기본법 제7조는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이라는 제목으로 “자기의 행위 또는 사업활동으로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는 그 오염·훼손을 방지하고 오염·훼손된 환경을 회복·복원할 책임을 지며,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인한 피해의 구제에 드는 비용을 부담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 제1항은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이라는 제목으로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원인자가 그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⑵ 이 법에서 말하는 환경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말하고(환경정책기본법 제3조 제1호), 그 중 생활환경은 사람의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환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폐기물도 포함된다(환경정책기본법 제3조 제3호). 환경오염은 사업활동과 그 밖의 사람의 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 방사능오염, 소음·진동, 악취, 일조 방해 등으로서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말한다(환경정책기본법 제3조 제4호).
⑶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 제1항은 민법의 불법행위 규정에 대한 특별 규정으로서(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50338 판결 등 참조),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피해자가 그 원인을 발생시킨 자(이하 ‘원인자’라 한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다. 위에서 본 규정 내용과 체계에 비추어 보면,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인한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는 사업장에서 발생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원인자는 사업자인지와 관계없이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환경정책기본법제44조 제1항에 따라 귀책사유를 묻지 않고 배상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5다23321 판결 등 참조).
⑷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은 원자력안전법 등의 법령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고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 사업활동 등을 하던 중 고철을 방사능에 오염시킨 자는 원인자로서 관련 법령에 따라 고철을 처리함으로써 오염된 환경을 회복·복원할 책임을 진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을 타인에게 매도하는 등으로 유통시킴으로써 거래 상대방이나 전전 취득한 자가 방사능오염으로 피해를 입게 되면 그 원인자는 방사능오염 사실을 모르고 유통시켰더라도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 제1항에 따라 피해자에게 피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6다35802 판결).
⑸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원인자가 둘 이상인 경우에 어느 원인자에 의하여 제1항에 따른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를 알 수 없을 때에는 각 원인자가 연대하여 배상하여야 한다(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 제2항).
4. 환경침해로 인한 민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인과관계 증명부담의 완화에 관한 기존 논의 및 판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7호, 박동규 P.147-171 참조]
가. 이론적 논의
환경침해로 인한 민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손해발생 기제가 불명확하고 가해원인이 복수로 작용하며 피해자의 기술적, 경제적 자원 부족 등으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곤란하여 그 피해구제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형평의 관념상 피해자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부담을 완화하려는 이론적 시도가 있다.
⑴ 개연성설
인과관계의 증명도에 대해 고도의 개연성4)까지 요구하지 않고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으로 완화하는 이론이다.
⑵ 신개연성설(또는 간접반증이론)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 증명해야 할 간접사실들을 유형화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그중 피해자가 입증할 범위를 축소하여 그것이 입증되면 인과관계의 존재를 ‘일응 추정’시키고, 이에 대해 가해자가 ‘간접반증’을 통해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있게 한다는 견해이다.
⑶ 역학적 인과관계설
원래 질병의 원인을 탐구하는 역학의 접근방법을 인과관계의 판단에 도입한 것으로서,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일정한 오염물질에 노출된 지역의 특정 질병 발병률이 증가하는 등 역학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밝혀지면 (추가적인 증명 없이도) 개별 피해자의 손해발생에 대한 인과관계도 인정하는 이론이다.
⑷ 위험영역설
피해자의 증명곤란을 완화할 목적으로 어떤 사실관계에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 및 증명의 난이도를 비교하여 각자의 위험영역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증명책 임을 분배하려는 견해이다.
나. 판례의 태도
⑴ 대법원 1974. 12. 10. 선고 72다1774 판결(한국전력 사건)은 환경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인과관계의 증명책임 완화와 관련된 ‘개연성이론’을 최초로 언급하였으나[판시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연성이론 그 자체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 공해로 인한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당해 행위가 없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하였으리라는 정도의 개연성이 있으면 그로써 족하다는, 다시 말하면 침해행위와 손해와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상당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는 입증을 함으로써 족하고 가해자는 이에 대한 반증을 한 경우에만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개연성이론을 수긍못할 바 아니다”], 실제로 개연성이론을 적용하여 인과관계를 판단하지는 않았다.
⑵ 대법원 1984. 6. 12. 선고 81다558 판결(진해화학 사건)은 개연성설을 간접반증이론으로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同旨: 대법원 1991. 7. 23. 선고 89다카1275 판결(아황산가스 배출로 관상수들이 고사한 사건), 대법원 1997. 6. 27. 선고 95다2692 판결(황토 등이 농어양식장에 유입되어 농어가 폐사한 사건), 대법원 2002. 10. 22. 선고 2000다65666, 65673 판결(화력발전소에서 온배수가 배출되어 김 수확량이 감소한 사건),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2666 판결(주한미군 영내 기름유출로 인근 부지 토양이 오염된 사건)].
『가해기업이 어떠한 유해한 원인물질을 배출하고 그것이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가해자 측에서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사회형평의 관념에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 수질오탁으로 인한 공해소송인 이 사건에 있어서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1) 피고공장에서 김의 생육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폐수가 배출되고 (2) 그 폐수 중의 일부가 해류를 통하여 이 사건 어장에 도달되었으며, (3) 그 후 김에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각 모순없이 증명되는 이상 피고의 위 폐수의 배출과 원고가 양식하는 김에 병해가 발생하여 입은 손해와의 사이에 일응 인과관계의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정 아래서 폐수를 배출하고 있는 피고로서는 (1) 피고공장 폐수 중에는 김의 생육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인물질이 들어 있지 않으며 또는 (2) 원인물질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 혼합율이 안전농도 범위 내에 속한다는 사실을 반증을 들어 인과관계를 부정하지 못하는 이상 그 불이익은 피고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위 판결의 판단구조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는 ① 유해한 원인물질의 배출 사실, ② 그 원인물질이 피해자에게 도달하였다는 사실, ③ 피해자에게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가해자의 오염물질 배출과 피해자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가해자 측에서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반증’으로 배출물질에 그 원인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거나 또는 그 원인물질의 혼합률이 안전농도 범위 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위 판결은 인과관계의 추정과 간접반증이론에 입각하여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증명책임의 분배를 분명히 한 것으로 신개연성설 입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통설이다.
⑶ 대법원 2012. 1. 12. 선고 2009다84608, 84615, 84622, 84639 판결(수도권 쓰레기매립지 사건)은 신개연성설의 입장에서 당사자들의 증명책임 분배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판단하였다. 원심은 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원심을 파기하였다.
『수질오염으로 인한 공해소송인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가 그 운영의 수도권매립지로부터 유해한 오염물질이 포함된 침출처리수를 배출하고, 그 오염물질이 원고들이 조업하는 어장(이하 ‘이 사건 어장’이라고 한다)에 도달하였으며, 그 이후에 이 사건 어장이 오염되어 어획량이 감소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각 모순 없이 증명되면 피고의 침출처리수 배출과 이 사건 어장에서 발생한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가 반증으로 피고가 배출한 침출처리수에는 해양생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인물질이 들어 있지 않거나, 원인물질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안전농도 범위 내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간접반증으로 원고들이 입은 피해는 피고가 배출한 침출처리수가 아닌 다른 원인이 전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피고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사건 어장에 발생한 피해는 피고가 배출한 침출처리수에 포함된 오염물질이 해양생물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하였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피고의 오염물질 배출과 이 사건 어장에 발생한 해양생태계 악화 및 어획량 감소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피고가 그 인과관계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반증으로 피고가 배출한 침출처리수에 이 사건 어장의 피해를 발생시킨 원인물질이 들어 있지 않거나 원인물질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농도 범위 내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간접반증으로 이 사건 어장에 발생한 피해는 피고가 배출한 침출처리수가 아닌 다른 원인이 전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 한편 위 판결 이전에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다2123 판결(재첩양식장 사건)에서도 ‘재첩 양식장의 피해는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로 오염된 해수가 유입되어 발생하였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피고들 공장의 폐수 배출과 재첩 양식의 피해와의 인과관계는 일응 증명되었다.’고 판시하여 ‘상당한 개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⑷ 대법원 2013. 10. 24. 선고 2013다10383 판결(무안국제공항 사건)은 인과관계 증명과 관련하여 “적어도 가해자가 어떠한 유해한 원인물질을 배출한 사실, 그 유해의 정도가 사회생활상 통상의 수인한도를 넘는다는 사실, 그것이 피해물건에 도달한 사실, 그 후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여전히 피해자가 부담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발생 외에 ‘(가해자가 배출한 원인물질의) 유해의 정도가 사회생활상 통상의 수인한도를 넘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도 피해자가 부담한다고 하였다. 즉, 배출 및 도달된 물질이 토사, 소금 등과 같이 그 자체만으로 유해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 피해자 측에서 인과관계를 증명함에 있어서 그 배출 및 도달된 물질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⑸ 대법원 2014. 9. 4. 선고 2011다7437 판결(자동차배출가스 사건)은 재산침해가 아닌 생명, 신체 등 건강에 대한 침해, 특히 ‘비특이성 질환’에 있어서 인과관계 증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는 특정 위험인자와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어느 개인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었다는 사실과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다른 일반 집단을 대조하여 역학조사를 한 결과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에서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비율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은 집단에서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비율을 상당히 초과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시기,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을 추가로 증명하는 등으로 그 위험인자에 의하여 그 비특이성 질환이 유발되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여야 한다.』
위 판결은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 ‘역학적 상관관계의 정도가 높아야 한다.’는 취지의 ㉠ 요건 외에 ‘구체적인 사건에서 원인물질과 피해자의 질환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추가로 인정하기 위하여 판단해야 하는 요소’로서 ㉡ 요건에 대하여 설시하였다.
다만 위 판례는 역학적 조사결과가 있는 사안에 관한 것이고, 비특이성 질환이라 하더라도 역학적 조사결과 대신 다른 증거가 충분히 제출된 경우에는 일반적인 판례 법리에 따라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다. 판례에 대한 분석
⑴ 판례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판례는 피해자가 ‘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의 각 사실을 증명하면 가해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하여 통설은 ‘일응의 추정 내지 간접반증이론에 바탕을 둔 증명책임분배’라고 한다.
그런데 대법원 2009다84608 판결(수도권쓰레기매립지 사건)과 대법원 2003다2123 판결(재첩양식장 사건)은 ‘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의 각 간접사실이 증명되면 ‘가해자의 배출과 피해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 자체만 증명하면, 유해물질의 배출과 도달 사이, 도달과 피해 사이의 각 연결고리를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인과관계의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판례가 ‘상당한 개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인과관계의 증명도를 낮춘 ‘증명정도의 경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 ‘일응의 추정 또는 표현증명’은 고도의 개연성 있는 경험칙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되므로 증명정도를 낮추는 것은 아니지만, 판례가 사용한 ‘상당한 개연성’이라는 표현은 증명정도의 경감 외에 다른 의미로 이해하기는 어렵다(환경소송 등 현대형 소송에서 판례가 인과관계의 증명정도를 경감시킨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정리하면 판례는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일응의 추정’과 ‘증명정도의 경감’까지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판례는 추정의 전제사실인 ‘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의 각 간접사실에 대한 증명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⑵ 다만 판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먼저 일본에서 주장된 신개연성설은 피해자에게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사실(① 가해자에서의 원인물질의 생성 및 배출, ② 원인물질의 피해자에의 도달경로, ③ 피해발생의 메커니즘과 원인물질의 존재) 중 무엇을 증명할지 선택할 수 있는 융통성을 주는 것과 달리, 우리 판례는 피해자가 배출, 도달, 피해 사실을 ‘모두’ 증명해야 해서 경직화되어 있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실무에서 특히 증명이 어려운 ‘도달’ 사실과 관련하여, 법원은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감정 결과에 의존하여 ‘도달’ 여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뮬레이션에 의한 감정은 변수를 통제하거나 조정하기 어렵고 감정의 기초가 되는 자료의 양과 질도 다른 사건에 비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법원이 감정 결과를 존중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피해자가 인과관계 증명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도 있다.
⑶ 한편 비특이성 질환과의 인과관계에 관한 판례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질병이 비특이성 질환인데 판례와 같이 개별적 인과관계까지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피해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비판,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원인자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일응 추정되고 그 복멸을 주장하는 상대방이 ‘다른 원인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도록 하거나,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비판 등이 있다.
5.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대한 검토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7호, 박동규 P.147-171 참조]
가.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개관
⑴ 2014. 12. 31. 제정되고 2016. 1. 1. 최초로 시행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의 목적을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경감하는 등 실효적인 피해구제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환경오염피해로부터 신속하고 공정하게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⑵ 제2조 제1호에서는 ‘환경오염피해’란 “시설의 설치ㆍ운영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 소음ㆍ진동,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원인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ㆍ신체(정신적 피해를 포함한다) 및 재산에 발생된 피해(동일한 원인에 의한 일련의 피해를 포함한다)”라고 정의한다.
●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시행령 제2조(환경오염피해의 원인)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본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원인”이란 다음 각호의 원인을 말한다.
1. 진동이 그 원인인 지반침하(광물 채굴이 주된 원인인 경우는 제외한다)
2. 「화학물질관리법」 제2조 제13호에 따른 화학사고
⑶ 제3조는 책임대상시설에 대하여 한정적으로 열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설은 그 설치 및 운영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일으킬 고도의 위험성을 가진 시설, 즉 환경위험적 시설로 제한된다.
⑷ 제6조(사업자의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 제1항은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에 대하여 “시설의 설치ㆍ운영과 관련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때에는 해당 시설의 사업자가 그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다만 그 피해가 전쟁ㆍ내란ㆍ폭동 또는 천재지변, 그 밖의 불가항력으로 인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다.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은 한정된 시설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시설책임’이자 ‘위험책임’으로서 무과실책임을 의미하고, 그 책임 성립에 위법성도 요구하지 않는다.
⑸ 이 법 제2조 제1호, 제6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시설의 설치ㆍ운영과 환경오염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설해 보면 ‘시설의 설치ㆍ운영으로 인하여 환경오염이 발생할 것’, ‘그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이는 환경오염피해의 간접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환경매체를 통하지 않고 일어난 피해에 대하여는 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설치ㆍ운영 ➜ (인과관계) ➜ 환경오염 ➜ (인과관계) ➜ 피해발생’이 증명되어야 하고, 다만 환경소송의 특성상 그 증명이 어려워 증명책임의 완화가 필요하므로 제9조에서 인과관계의 추정에 관하여 규정한다.
⑹ 이 법에 따른 배상청구권과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경합관계에 있다(제5조 제2항).
이 법 제6조 제1항에 따른 배상책임은 무과실책임이고 배상책임의 한도도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차이가 있다.
● 제5조(다른 법률 및 청구권과의 관계)
① 시설의 설치ㆍ운영과 관련한 환경오염피해의 배상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의 규정을 따른다.
② 이 법에 따른 청구권은 「민법」 등 다른 법률에 따른 청구권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 제7조(배상책임한도)
사업자의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배상책임한도는 2천억 원의 범위에서 시설의 규모 및 발생될 피해의 결과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환경오염피해가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경우
2. 환경오염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시설에 대하여 사업자가 시설의 설치ㆍ운영과 관련하여 안전관리기준을 준수하지 아니하거나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하여 배출하는 등 관계 법령을 준수하지 아니한 경우
3. 환경오염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자가 피해의 확산방지 등 환경오염피해의 방제(防除)를 위한 적정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경우
나. 인과관계의 추정
⑴ 이 법 제9조는 인과관계의 추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제9조(인과관계의 추정)
① 시설이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피해의 상태(2020. 5. 26.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피해의 상태’ 대신 ‘피해의 양상’으로 정하고 있었다)와 그 밖에 피해발생에 영향을 준 사정 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
③ 환경오염피해가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하였거나, 사업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과 관련된 환경ㆍ안전 관계 법령 및 인허가조건을 모두 준수하고 환경오염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등 제4조 제3항에 따른 사업자의 책무를 다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추정은 배제된다.
● 제4조(국가 등의 책무)
③ 사업자는 시설의 설치ㆍ운영으로부터 발생하는 환경오염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고,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피해경감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며,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협력하여야 한다.
⑵ 제9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상당한 개연성’은 그 입법과정을 보면 판례에서 사용하는 ‘상당한 개연성’을 참고한 것이다.
제9조 제1항은 법률상 추정이므로 제9조 제3항과 같이 가해자가 반대사실의 ‘본증’을 통해서만 추정을 번복할 수 있다(증명책임의 전환).
⑶ 제9조 제3항 전단은 인과관계 추정 번복을 말하는데, 여기서 정하는 ‘다른 원인’이란 기존 판례 법리에서 말하는 ‘전적으로’ 다른 원인에 의하였을 사정을 의미한다.
여러 원인이 서로 상호작용해서 손해가 발생한 것에 불과한 경우는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볼 수 없고, 제10조는 피해가 어느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였는지 불분명할 때에는 모두에게 부진정연대책임을 부과하는데, 단순히 다른 원인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과관계의 추정을 부정하는 것은 이 조항과 정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제10조(연대책임)
환경오염피해를 발생시킨 사업자가 둘 이상인 경우에 어느 사업자에 의하여 그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를 알 수 없을 때에는 해당 사업자들이 연대하여 배상하여야 한다.
⑷ 제9조 제3항 후단은 인과관계 추정 배제를 말하는데, 이 규정은 적법운영에 동기 부여를 제공하려는 입법자의 환경정책적 의도에 따른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하여는 시설의 적법운영과 관련된 사실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위법성 판단의 한 요소이어서 정합성에 맞지 않고, 기존 판례는 지금까지 시설의 적법 또는 적정운영을 근거로 개연성이론의 적용을 제한한 바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배제 규정을 둔다면 이 조항으로 인해 피해자의 권리 내지 지위가 더 열악해지게 된다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그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9조 제3항 후단에 의한 추정 배제는 엄격하게 보아야 한다.
‘관계 법령 및 인허가조건의 준수’뿐만 아니라, ‘환경오염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제4조 제3항에 따른 사업자의 책무를 다한’ 경우에 비로소 추정을 배제하도록 한다.
다만 제9조 제3항 후단에 의해 같은 조 제1항, 제2항에 따른 인과관계 추정이 배제된 경우에는 여전히 기존 판례 법리에 따라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다.
⑸ 한편 상당한 개연성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제9조 제2항의 사실들은 사업자 측에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제15조는 피해자는 해당 시설의 사업자에게 인과관계의 추정과 관련한 정보의 제공 또는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 제15조(정보청구권)
① 이 법에 따른 피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그 범위를 확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피해자는 해당 시설의 사업자에게 제9조 제2항과 관련한 정보의 제공 또는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② 이 법에 따른 피해배상 청구를 받은 사업자는 피해자에 대한 피해배상이나 다른 사업자에 대한 구상권의 범위를 확정하기 위하여 다른 사업자에게 제9조 제2항과 관련한 정보의 제공 또는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정보의 제공 또는 열람 청구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제공하거나 열람하게 하여야 한다.
④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피해자 및 사업자는 영업상 비밀 등을 이유로 정보 제공 또는 열람이 거부된 경우에는 환경부장관에게 정보 제공 또는 열람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⑤ 제4항에 따른 신청이 있을 때에는 환경부장관은 제16조에 따른 환경오염피해구제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보 제공 또는 열람 명령 여부를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해당 사업자에게 정보 제공을 하도록 하거나 열람하게 하도록 명할 수 있다.(이하 생략)
6.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9조의 해석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7호, 박동규 P.147-171 참조]
가. 문제의 제기
기존 판례가 이미 개연성이론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9조가 다시 ‘상당한 개연성’을 규정하여 이를 명문화할 실익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 판례에 대하여 인과관계의 증명부담을 완화하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요건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제9조에서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9조가 기존 판례에 비하여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을 더 완화시킨 것인지, 제9조를 기존 판례 법리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문제 된다.
나. 견해의 대립
이에 대하여는 ① 제1설(제9조는 기존 판례 법리를 명문화한 것일 뿐 특별히 다를 것이 없으므로, 기존 판례에 비하여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라 고 보는 입장), ② 제2설(제9조는 기존 판례보다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을 더 완화시키는 조항이라고 보는 입장), ③ 제3설(제9조를 그 모델이 된 독일 환경책임법 제6조를 참고해서 해석하자는 입장)이 대립한다.
다. 소결론 (= 제2설)
⑴ 제9조 제1항이 인과관계 추정의 전제사실로서 ‘시설이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라고 정한 것은, 인과관계의 ‘상당한 개연성’을 입증하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법률상 추정되므로 결국 인과관계 자체에 대한 증명정도를 ‘상당한 개연성’의 정도로 완화해 주는 것이다.
인과관계의 증명정도를 경감시켜준다는 측면에서 앞서 본 기존 판례의 입장과 같다(의료소송에서의 증명도 경감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최근 판례로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은 ‘의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개연성 증명을 통한 인과관계 추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 “환자 측이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 … 한편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도 의료행위를 한 측에서는 환자 측의 손해가 진료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
⑵ 결국 제2설과 같이, 제9조는 기존 판례에 비해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을 더욱 완화시킨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구체적으로, 제9조는 인과관계 자체를 ‘상당한 개연성’의 정도로 증명정도를 경감하는 것이고, 제9조 제2항의 여러 사실들을 고려하여 시설과 피해 사이 인과관계의 상당한 개연성 여부를 판단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조항은 제9조 제2항의 사실들(간접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전체적으로 해당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의 상당한 개연성이 있음을 증명하면 인과관계가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제9조의 적용국면에서는 제9조 제2항의 간접사실들이 직접 증거에 의한 증명의 대상이 되고, 이러한 간접사실들을 통해 인과관계의 상당한 개연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며, 기존 판례와 같이 한정된 증명주제(유해물질의 배출, 도달, 피해)를 ‘직접’ 증명할 필요는 없다.
⑷ 다만 사업자는 제9조 제2항의 간접사실들에 대하여 반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본 추정은 법률상 추정이므로 증명책임의 전환이 이루어져 제9조 제3항의 사실들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 또는 배제시킬 수 있다.
⑸ 한편 제9조의 적용국면에서는 ‘비특이성 질환’에 관한 판례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비특이성 질환에 관한 대법원 2011다7437 판결에서 개별적 인과관계의 고려요소로 설시한 사정들은 ‘다른 원인의 존부’와 관련된 것인데, 제9조 제3항에 의하면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도 사업자가 비특이성 질환 발생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제9조에 따를 경우 피해자가 기존 판례와 같이 역학적 상관관계와 별도로 개별적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7.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7호, 박동규 P.147-171 참조]
가. 대상판결의 결론
⑴ 다음과 같이 제9조 제2항의 각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 사건 공장과 원고 등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되어 그 인과관계가 추정된다.
㈎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 이 사건 공장에서 불산을 제조하는 정상적인 절차는, 제조된 불산이 저장탱크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필터를 거쳐 하역시설에서 차량의 탱크로리에 운반되어 이송된다. 그런데 이 사건 사고는 불산 저장탱크의 필터에 설치된 판이 파열되면서 운반 중이던 불산이 비상용 불산 배출 배관을 통해 흘러나와 임시 집수조에 유입되고, 임시 집수조에 설치된 수위 조절용 센서가 작동하지 않아 그 불산이 폐수 집수조로 이동하지 않고 하역시설 밖으로 흘러나가 발생하였다.
㈏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불산은 화학물질관리법상 사고대비 물질인데, 이 사건 사고로 약 444.6~871.3㎏ 상당의 불산(불화수소농도 55%)이 누출되고 그 불산이 증발함에 따라 약 33.04㎏ 상당의 불화수소가 기체 상태로 대기 중에 확산되었다. 대기 중 불화수소는 수증기에 흡수되어 불산의 형태로 대부분 지표면으로 낙하한다.
㈐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통상 불화수소가 유출된 지점으로부터 대피해야 하는 반경은 소량 유출의 경우 낮 0.2㎞, 밤 0.5㎞이다. 이 사건 사고지점은 산간지역이고, 원고 등의 거주지는 대부분 이 사건 사고발생 지점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300~500m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바람은 이 사건 공장이 있는 북쪽에서 마을 방향으로 1.0~2.1㎧의 속도로 불고 있었고, 시간대는 밤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피해의 상태와 그 밖에 피해발생에 영향을 준 사정: 기체 상태의 불산에 소량만 노출되더라도 눈, 코, 목 안에 강한 자극증상을 느끼게 되면서 기침, 흉부압박감, 열, 오한이 생길 수 있다. 원고 등을 비롯한 인근마을 주민들은 초등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하였고, 일부는 두통, 메스꺼움,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여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며, 수차례 병원진료를 받았다. 원고 등이 이 사건 사고 이후 불산에 노출되었을 때 보이는 증상으로 호흡기 자극에 의한 증상 등을 공통적으로 호소하였고, 그 증상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직후에 나타났다. 불산 노출 이외에 원고 등에게 이처럼 공통된 증상이 나타날 만한 다른 원인은 찾기 어렵다.
⑵ 이 사건 공장에서의 불산 배출과 원고 등의 피해 사이에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보아 인과관계를 인정한 원심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
나. 대상판결(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19다300866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환경오염피해구제법상 배상책임이 문제 된 사안에서 인과관계가 문제된 첫 번째 사례이다.
대법원은 해당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을 완화해 주는 취지로 같은 법 제9조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적극적으로 설시함으로써, 제9조에서 정하는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에서 적용되는 기존 판례 법리와 다르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