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지체를 이유로 한 계약해제, 채권자지체의 요건, 채권자의 수령의무와 협력의무】《채권자지체를 이유로 한 계약해제에 대한 판례의 법리(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채권자지체 일반론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384-1387 참조,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514-520 참조]
가 관련 조항
● 민법
제400조(채권자지체)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에는 이행의 제공있는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 401조(채권자지체와 채무자의 책임) 채권자지체 중에는 채무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불이행으로 인한 모든 책임이 없다.
● 402조(동전) 권자지체 중에는 이자있는 채권이라도 채무자는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
● 403조(채권자지체와 채권자의 책임) 권자지체로 인하여 그 목적물의 보관 또는 변제의 비용이 증가된 때에는 그 증가액은 채권자의 부담으로 한다.
● 538조(채권자귀책사유로 인한 이행불능)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채권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당사자쌍방의 책임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도 같다.
② 전항의 경우에 채무자는 자기의 채무를 면함으로써 이익을 얻은 때에는 이를 채권자에게 상환하여야 한다.
나. 채권자지체
⑴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에는 이행의 제공이 있는 때부터 지체책 임이 있다(제400조). 이는 성실한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채무자가 급부의 실현을 위하여 ‘자신이 하여야 할 것’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채권자가 필요한 협력을 하지 않아 급부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데도, 채무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채무자에게 그로 인한 불이익을 돌리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이와 같은 경우에 오히려 채권자에게 일정한 불이익을 부과하여 성실한 채무자를 구제하려는 것이 채권자지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⑵ 채무자의 변제제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수령하지 않은 채권자는 채권자지체에 빠지게 되고, 양 당사자의 이익 형평의 견지에서 부과되는 법률상의 불이익(민법 제401조 내지 제403조)을 부담해야 한다.
법적 성질에 관하여는 채무불이행책임설과 법정책임설로 견해가 나뉜다.
⑶ 최근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기본적으로 법정책임설과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 : 농지의 매수인이 농지 전용에 따른 농지보전부담금을 매 도인에게 부담하라고 하면서 소유권이전등기의 수령을 거부하자 매도인이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한 사안에서, 매도인의 해제 주장이 타당한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매매계약의 해석상 매수인의 수령의무 나 협력의무에 관한 명시적・묵시적 약정이 있었는지, 또는 신의칙상 매수인에게 계약상 의무로서 수 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지를 심리해야 하고, 만일 매수인에게 위와 같은 수령의무나 협력의무 가 인정될 경우 그 의무가 이 사건 매매계약의 본질적 내용과 목적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가려야 한 다고 판단한 사례).
⑷ 채권자지체에 관한 민법의 규정 내용과 체계에 비추어 보면,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 경우 그 효과로서 원칙적으로 채권자에게 민법 규정에 따른 일정한 책임이 인정되는 것 외에,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일반적인 채무불이행책임과 마찬가지로 손해배상 이나 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계약 당사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채권자에게 급부를 수령할 의무 또는 채 무자의 급부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약정한 경우, 또는 구체적 사안에서 신의칙 상 채권자에게 위와 같은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그중 신의칙상 채권 자에게 급부를 수령할 의무나 급부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 는지는 추상적・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안에서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거래 관행, 객관적・외부적으로 표명된 계약 당사자의 의사, 계약 체결의 경위와 이행 상황, 급부의 이행 과정에서 채권자의 수령이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채권자에게 계약상 의무 로서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그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이행되지 않으 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채무자에게 계약의 유지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때에는 채무자는 수령의무나 협력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 요건
채무의 내용인 급부가 실현되기 위하여 채권자의 수령 그 밖의 협력행위가 필요한 경우에,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제공을 하였는데도 채권자가 수령 그 밖의 협력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아 급부가 실현되지 않는 상태에 놓이면 채권자지체가 성 립한다. 채권자지체의 성립에 채권자의 귀책사유는 요구되지 않는다(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
⑴ 채권자의 수령 또는 협력의 필요성
통상의 채권관계에서는 채무자의 이행제공과 채권자의 수령에 의해 이행이 완료된다. 특히 매매나 도급에서는 물건의 인도의무가 계약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채무자(매도인 또는 수급인)가 목적물을 제공하고 채권자(매수인 또는 도급인)가 그것을 수령함으로써 이행이 완료되어 채무가 소멸한다. 그리고 행위채무에서는 채권자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반면 채무자의 이행행위만으로 이행이 완료되고 채권자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부작위채무, 의사표시를 목적으로 하는 채무 등)에는 채권자지체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⑵ 채무자의 이행제공
㈎ 채권자지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460조 소정의 채무자의 변제 제공이 있어야 하고, 그 변제 제공은 원칙적으로 현실제공으로 하여야 하며, 다만 채무의 이행에 채권자 의 행위를 요하는 경우에는 구두의 제공으로 하더라도 무방한 것이나, 위와 같이 구두 의 제공을 하는 채무자는 채권자의 협력만 있으면 언제든지 채무를 이행할 수 있을 정 도로 변제준비를 완료한 다음 그 뜻을 채권자에게 통지하여 그 수령을 최고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5다71635(본소), 2005다71642(반소) 판결].
이행의 제공이 없거나 이행의 제공이 채무의 내용에 좇은 것이 아닌 때에는 채권자지체는 발생하지 않는다. 민법 제400조는 ‘이행의 제공’을 채권자지체의 발생시기인 것처럼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발생요건의 하나이다.
여기서의 ‘이행의 제공’은 민법 제460조의 변제제공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실제공과 구두제공 두 가지 방식에 의한 이행제공이 인정된다.
㈏ 원칙적으로는 채무자가 현실제공을 하고 그 후 채권자의 수령거절 또는 수령불능이 있은 후에야 채권자지체가 발생한다. 다만 책임 발생의 시점은 현실제공 시부터라고 할 것이다.
채권자가 미리 변제 수령을 거절할 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구두의 제공은 있어야 한다(제460조 단서). 그런데 그 수령거절의 의사가 진지하고 종국적인 경우(이 른바 영구적 불수령)에도 채무자가 구두의 제공을 해야 비로소 채권자는 수령지체에 빠지는지에 관하여 대법원은 채권자가 영구적 불수령 의사를 표시한 경우, 채무자는 구두제공조차 하지 않아도 곧바로 채무불이행책임을 면하고(제461조 관련), 곧바로 변제공탁 할 수 있 으며, 쌍무계약의 경우 곧바로 채권자의 반대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나(이행거절), 제401조 내지 제403조의 효과도 곧바로 생기는지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판단한 바 없다. 다만 최근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1다79013 판결)이 제538조 제1항 2문이 정한 ‘수령 지체’의 해석에 관하여 채무자가 구두제공조차 하지 않으면 그 조문이 정한 ‘수령지체’에 해당하지 않아 대가위험이 이전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을 보면, 제401 조 내지 제403조의 효과가 생기기 위해서도 최소한 구두제공은 필요하다는 취지인 것 으로 추측된다.
구두제공은 채권자가 미리 수령거절을 하였거나 채권자가 미리 협력하여야 하는 경우에 인정된다. 그중 채권자가 미리 변제받기를 거절한 경우에는, 민법 제460조에 의하여 채무자는 변제준비통지와 수령 최고만으로 변제제공을 할 자격이 생기고, 민법 제400조에 의하여 그 구두제공 시부터 채권자지체가 발생한다. 즉 채권자가 채무자의 변제제공 이전에 미리 수령거절한 경우에만 구두제공으로 채권자지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채권자가 수령거절을 철회한 때에는 현실의 제공을 하여야 할 것이다.
㈐ 이행의 제공은 채무의 내용에 좇은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행의 제공은 완전하여야 하고, 다른 약정이 없는 한 채무의 이행은 원칙적으로 급부 전부가 한꺼번에 행해져야 한다.
이행의 제공이 채무의 내용에 좇은 것인지는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주요하게 다퉈지는 부분이다. 만일 채무자가 이행제공한 물건이나 기타 급부가 채무의 내용과 다른 경우에는 유효한 이행제공이 없는 것이므로, 채권자가 이를 수령하기를 거절하여도 채권자지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⑶ 채권자의 불수령(수령거절 또는 수령불능)
㈎ 수령거절은 채권자가 수령에 장애가 되는 객관적인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령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가령 채권자가 이유 없이 수령기일의 연기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자기가 부담하는 반대급부의 이행을 거절하는 경우, 또는 계약 해제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 등은 사안에 따라서 묵시적인 수령거절로 해석할 수 있다.
㈏ 수령불능은 채권자가 객관적으로 볼 때 수령할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이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수령불능에 해당하는 경우’인지, 아니면 ‘이행 자체가 불가능하여 이행불능에 해당하는 경우’인지 구별이 곤란한 경우가 많다. 급부의 미실현이 채권자의 수령거절이나 수령불능에 기인한 경우에만 채권자지체가 되고, 급부의 불능으로 인하여 급부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지체가 되지 않는다. 즉, 채권자지체는 급부가 가능한 것을 전제로 하고, 급부가 불능이기 때문에 채권자의 수령도 불능인 상태는 이행불능의 문제로 처리된다.
㈐ 채권자의 수령거절 또는 수령불능 이것이 반드시 채권자의 귀책사유로 발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령거절 또는 수령불능에 채권자의 귀책사유나 위법성이 요구되는지는 법정책임설과 채무불이행책임설에 따라 다르다. 법정책임설에서는 수령거절이나 수령불능이 채권자의 귀책사유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채권자지체의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반면, 채무불이행책임설에서는 채권자지체는 수령의무의 불이행책임이므로, 채권자의 귀책사유가 요건이 된다.
⑷ 쌍무계약의 특수성
쌍무계약에서 쌍방의 채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을 때, 채권자는 채무의 수령을 위한 준비 외에 자기의 반대급부의 이행을 위한 준비도 하고 있어야 급부를 수령할 수 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급부를 수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반대급부의 이행제공을 하지 않은 반면, 채무자는 자기 채무의 이행제공도 하고 반대급부의 수령준비도 하였다면, 채권자는 채권자지체에 빠진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채권자(매수인)가 자신의 매매대금 지급채무는 이미 선이행하였으므로 위의 논의는 적용되지 않는다.
⑸ 증명책임
㈎ 채권자지체의 요건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채무자에게 있다.
변제기에 채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일응 채무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채무불이행이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무자는 자기가 유효한 변제제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자가 이를 수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여야 한다.
㈏ 이에 대하여 채권자는 ① 채무자가 유효한 변제제공을 하지 않았다거나, ② 자신의 불수령에 동시이행의 항변권 등 정당화 사유가 있음을 들어 (재)항변할 수 있다.
라. 효과
⑴ 채권자지체의 법적 효과 (민법 제400조 내지 403조, 제538조)
채권자지체의 법적효과로서 민법은 채무자의 책임감경(제401조), 이자지급의무의 면제(제402조), 보관 또는 변제비용의 부담(제403조), 위험부담의 이전(제538조 제1항 단서)을 규정하고 있다.
㈎ 채무자 책임경감(제401조)
① 채무불이행이 채무자의 고의나 중과실 없이 야기된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행지체 중에는 채무자의 책임이 가중되는 것과 대비된다. 따라서 채무자는 경과실로 인한 목적물의 멸실이나 훼손에 대하여는 전보배상의무를 지지 않는다.
채권자지체 중에는, 채무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불이행으로 인한 모든 책임이 없다(제401조). 즉 채무자의 경과실로 목적물이 멸실되더라도 채무자는 이행불능으로 인한 책임을 면한다(대법원 1983. 11. 8. 선고 83다카1476 판결).
② 책임경감은 하자담보책임에도 적용된다. 목적물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해 채무불이행책임과 동시에 불법행위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는 경우 본조의 책임감경은 불법행위책임에 관해서도 유추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 이자의 정지(제402조)
채무자는 채권자지체 중에는 이자 있는 채권이라도 그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제402조).
이자 있는 채권에 적용되는 규정으로서, 채권자지체 중에는 채무자는 이자지급채무가 면제된다. 약정이자인지 법정이자인지 여부를 불문한다. 쌍무계약에서 채무자가 채권자로부터 반대급부를 수령한 경우에도 이자채무가 면제된다. 채무자의 이행지체에 따른 지연이자나 손해배상 예정액은 여기서 말하는 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채무자의 변제제공의 효과로서 지체책임이 면제되므로 애초부터 지연이자는 발생하지 않는다).
㈐ 증가비용부담(제403조)
① 채권자지체로 인하여 그 목적물의 보관 또는 변제의 비용이 증가된 때에는 채무자는 그 증가액을 채권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제403조).
채무자는 채권자지체의 시점부터 종료 시까지 목적물을 보관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하여 지출한 비용을 채권자에게 청구할 수 있고, 채권자지체로 인하여 증가된 변제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용은 채권자가 만일 채무자의 이행제공에 응하여 수령 등 필요한 협력을 하였다면 지출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러한 협력이 없었기 때문에 채무자가 재차의 이행을 행하기 위하여 추가로 부담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든 비용이라고 해석된다. 가령 목적물에 대한 보험료, 채무자의 노력도 그의 영업 또는 직업 활동의 범위에서 행하여지는 한 변제비용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② 반드시 현실적으로 지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 비용에 관하여 제3자에 대하여 지급의무를 부담하였거나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장차 지출할 것이 확실한 경우에는 현재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된다(단, 객관적으로 필요한 비용지출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③ 비용상환청구권은 채권자의 이행청구에 대하여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 채권자는 채권자지체를 종료시키기 위하여는 그의 비용상환의무에 관하여 이행제공을 하여야 한다. 비용상환청구권은 민법이 채권자에게 새로운 적극적 부담을 부과한 것이다. 따라서 이 상환청구권은 일단 발생하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채권자가 후에 채권을 포기한 경우에도 그에 관계없이 존속한다.
⑵ 그 밖의 효과
㈎ 채무의 존속
① 채권자지체는 채무자의 급부의무를 면하게 해주는 사유는 아니다. 따라서 채무자가 변제공탁을 하지 않는 한 채무는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존속하고, 채권자는 여전히 채무자에 대하여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채권자지체가 종료하면 채무자는 다시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변제제공을 하여야 한다.
② 또한, 지참채무나 송부채무를 추심채무로 전환시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채무자는 변제제공의 효과로서 지체책임을 면한다(민법 제461조). 따라서 채권자지체로 인하여 변제가 지연되고 있는 동안의 지연배상의무를 지지 않고 이행지체를 이유로 계약 해제를 당하지 않는다.
㈏ 동시이행항변권 존속
채권자가 채권자지체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반대급부에 대한 동시이행항변권을 상실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시이행항변권을 소멸시키려면 변제의 제공이 계속되어야 한다(대법원 1993. 8. 24. 선고 92다56490 판결)
㈐ 쌍무계약에서 위험의 이전
① 채권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이행불능으로 된 경우와 더불어서, 채권자지체 중에 이행불능으로 된 때에는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일지라도 채권자가 위험을 부담한다(민법 제538조 제1항).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지만(제537조),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 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제538조 제1항 2문). 판례에 의하면, 채권자의 영구적 불수령 의 경우에 그것만으로 곧바로 위험이 이전되지 않고, 채무자의 변제제공이 있어야만 비로소 위험이 이전된다고 한다[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1다79013 판결 : 민법 제400조 소정의 채권자지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민법 제460조 소정의 채무자의 변제제공이 있어야 하고, 변제제공은 원칙적으로 현실제공으로 하여야 하며 다만 채권자가 미리 변제받기를 거절하거나 채무의 이행에 채권자의 행위를 요하는 경우에는 구 두의 제공으로 하더라도 무방하고,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아니할 의사가 확고한 경우(이른바, 채권자의 영구적 불수령)에는 구두의 제공을 한다는 것조차 무의미하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구두의 제공조차 필요 없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한 구두의 제공조차 필요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는 그로써 채무자 가 채무불이행책임을 면한다는 것에 불과하고, 민법 제538조 제1항 제2문 소정의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현실제공이나 구두 제공이 필요하다(다만, 그 제공의 정도는 그 시기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 지 않게 합리적으로 정하여야 한다)].
② 채권자지체 중 ‘채무자의 경과실’로 인한 이행불능과 위험부담
채권자지체 중에 생긴 급부불능은 채무자의 고의, 중과실에 의한 경우 외에는 채권자 귀책사유로 인한 급부불능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채권자지체 중에는 채무자의 책임이 고의와 중과실로 경감되므로, 채무자가 채권자지체 중에 급부목적물을 경미한 과실로 멸실 또는 훼손케 하였더라도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나 계약해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채권자지체 중 채무자의 경과실로 채무자의 의무가 이행불능으로 된 경우, 제401조에 따라 채권자지체 중에 채무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불이행으로 인한 책임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원래의 급부뿐만 아니라 이행불능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③ 나아가 이 경우 채무자는 귀책사유 없는 것으로 취급되어 민법 제538조 제1항 후문에 의하여 채권자가 위험을 부담하고 따라서 채권자에 대해 반대급부를 청구할 수 있다.
⑶ 채권자지체 종료 사유
㈎ 채권자의 수령 최고
채권자가 수령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또한 지체 중의 모든 효과를 승인하여 수령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채권자지체는 종료한다. 채권자는 이로써 자신의 불수령 상태로부터 벗어난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 채권자가 자신의 불수령 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협력제공’을 함에 있어서 채권자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채무자가 지출하게 된 추가비용에 대하여 이행제공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채무자의 지출내역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을 것이므로, 그 이행제공의 정도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추가비용을 상환할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으로 족하다.
㈏ 급부불능의 발생
채권자지체 후에 급부불능이 발생하면 법률관계는 채무불이행책임(채무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또는 위험부담(채무자의 귀책사유가 없거나 경과실만 있는 경우)의 문제로 전환되고, 채권자지체는 종료한다.
㈐ 채권의 소멸
채권자지체는 채권관계의 존속을 전제로 하여 채권자가 제공된 변제를 불수령함으로 생긴 채무자의 불이익을 제거하려는 제도이므로, 채권자지체 중 채무자의 공탁, 혼동, 소멸시효 완성 등으로 채권이 소멸하면 자동적으로 채권자지체도 소멸한다.
2.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한 계약 해제 가부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384-1387 참조 ,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9호, 김찬미 P.159-228 참조]
가. 채권자지체에 관한 대법원 판례 분석
⑴ 쌍무계약에서 수령지체와 동시이행항변권의 소멸의 관계(= 계속적 이행 제공 필요)
과거의 채권자지체로 상대방의 동시이행항변권이 소멸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채권자지체 이후에도 계속 이행 제공을 하였다는 점을 주장․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1993. 8. 24. 선고 92다56490 판결).
◎ 대법원 1993. 8. 24. 선고 92다56490 판결 :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먼저 한 번 현실의 제공을 하고, 상대방을 수령지체에 빠지게 하였다 하더라도 그 이행의 제공이 계속되지 않는 경우는 과거에 이행의 제공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이 가지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므로(대법원 1972. 11. 14. 선고 72다1513, 1514 판결 참조), 원고의 위와 같은 이행의 제공이 있었다 하여 피고가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
⑵ 수령지체 중 임치물의 멸실 또는 훼손 시 채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사례
대법원 1983. 11. 8. 선고 83다카1476 판결은, 수치인이 보관물(건고추)의 처분 및 인수 요구를 하였으나 임치인이 시세가 싸다는 등의 이유로 그 회수를 거절하고 있는 동안 보관물이 변질되어 상품 가치가 상실되자 수치인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이다. 대법원은 수치인이 처분과 인수를 요구한 것을 ‘임치계약을 해지하고 임치물의 회수를 최고한 의사표시’로 해석하여, 임치인이 회수를 거절한 것을 수령지체로 판단하고, 민법 제401조(채무자 책임경감)를 적용하여 수치인에 대해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채권자의 수령의무를 전제하지 않고 채권자의 불수령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채권자지체를 인정하였다.
◎ 대법원 1983. 11. 8. 선고 83다카1476 판결 : 상인이 그 영업범위 내에서 물건의 임치를 받은 경우에는 보수를 받지 아니하는 때에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관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게을리하여 임치물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으나, 다만 수치인이 적법하게 임치계약을 해지하고 임치인에게 임치물의 회수를 최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치인의 수령지체로 반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임치물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에는 수치인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중략) 원고와 피고 사이의 위 건고추 보관약정은 기간의 약정이 없는 임치라고 할 것이므로 수치인인 피고는 언제든지 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인바, 원심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위 건고추가 변질되고 벌레먹기 전인 1981. 5.경 피고가 원고에게 보관물의 처분과 인수를 요구하였다면 이는 임치계약을 해지하고 임치물의 회수를 최고한 의사표시라고 볼 여지가 있고, 그와 같이 본다면 원고가 원심인정과 같이 시세가 싸다는 등 이유로 그 회수를 거절한 이상 이때부터 수령지체에 빠진 것이라 하겠으므로 그 후 피고 보관 중인 위 건고추가 변질되고 벌레가 먹음으로써 상품가치가 상실되었다고 하여도 그것이 피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닌 한 피고에게 그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⑶ 매도인이 중도금 수령을 거절하고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가 명백한 경우 매수인의 해제권 유무
㈎ 대법원 1993. 6. 25. 선고 93다11821 판결은, 부동산 매도인이 중도금의 수령을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 매수인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소유권이전등기의무 이행기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이를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 그러나 위 판결은 채권자지체의 법적 성질을 직접 다룬 사안이 아니다. 위 판결은 매도인이 중도금의 수령을 거절하고 이를 통해 매도인이 매매계약상 자신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것으로 판단한 사안으로서, 쌍무계약에서 채무자의 이행거절을 이유로 한 해제에 관한 판결이다.
㈐ 반면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의 사건에서는 원고가 자신의 채무인 매매대금 지급의무를 선이행하였기 때문에 쌍무계약상 채무자로서의 이행거절은 문제 되지 않고 오로지 채권자지체만 문제 된다는 점에서, 위 대법원 93다11821 판결과 사안이 다르다.
⑷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수령지체 중 이행불능 시 채권자지체 발생사실에 대한 증명책임 소재 및 손해배상채무의 발생 여부
㈎ 부동산 매매에서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절차에 필요한 서류 등을 제공하여 자신의 채무이행을 제공하여 매수인이 채권자지체에 빠진 이후라 하더라도, 매도인이 해당 부동산을 제3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이는 매도인이 자신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고의로 이행불능에 이르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매도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401조, 제390조에 따라 이행불능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으로서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4. 4. 30. 선고 2010다11323 판결).
◎ 대법원 2014. 4. 30. 선고 2010다11323 판결 :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하는 쌍방 당사자 중 일방이 먼저 현실의 제공을 하고 상대방을 수령지체에 빠지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이행의 제공이 계속되지 아니하였다면 과거에 이행제공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이 가지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소멸하지 아니하고(대법원 1993. 8. 24. 선고 92다56490 판결, 대법원 1995. 3. 14. 선고 94다26646 판결 등 참조), 또한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는 쌍방의 채무 중 어느 한 채무가 이행불능이 됨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채무도 여전히 다른 채무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7다30066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비록 어떠한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에 관하여 채무자가 일단 그 이행제공을 하여 채권자가 수령지체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후 채무자가 목적 부동산을 제3자에게 양도하여 그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이행이 불능하게 되었다면, 채무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401조, 제390조에 기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자기 채무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 일반적으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 그 불이행의 귀책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은 채무자에게 있고(대법원 1985. 3. 26. 선고 84다카1864 판결 등 참조),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이행불능이 된 경우에도 채권자지체가 발생한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채무자에게 있다(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다249383 판결).
나. 채권자지체와 해제
⑴ 채권자지체의 법적 성격
여기에는 ㈎ 채무불이행책임설(= 채권자지체를 채권자의 채무불이행으로 보는 견해), ㈏ 법정책임설(=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이익조정을 위하여 공평의 관념에서 법률이
특별히 정한 법정책임이라고 이해하는 견해), ㈐ 절충설(= 원칙적으로 법정책임설과 같은 입장이나, 매매․도급․임치 등과 같은 계약유형에서 부수적 의무로서 채권자에게 신의칙상 인수의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한다.
⑵ 채권자지체, 즉 수령거절만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학설은 대체로 이를 부정하였다(법정책임설).
수령의무는 간접의무로서 일반 채무불이행과는 성질을 달리하므로, 민법상 규정되어 있는 효과 이외에 해제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 원칙으로서 계약 해제 부정설(법정책임설)이 타당하다.
⑶ 이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설은 해제권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고, 절충설로서는 예외적으로 특약이나 신의칙에 의하여 수령의무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제권이 인정된다고 본다.
다. 채권자의 수령의무에 관한 최근의 입법동향
⑴ 2002년 개정된 독일 민법은 ‘도급’에 관하여 채권자의 수령 지체로 인한 해제권을 인정하고, ‘매매’의 경우 원칙적으로 해제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매도인이 수취 자체에 특별한 이익을 갖는 경우’ 해제권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⑵ 미국 통일상법전은 매수인이 부당하게 물건의 인수를 거절하거나 물건의 인수를 철회한 경우, 피해를 입은 매도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구제방법을 취할 수 있고, 중대한 계약위반의 경우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2~703조).
⑶ 국제연합(UN)이 1980년 채택한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에서도 매수인의 수령거절이 현저한 계약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우 해제권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60).
⑷ 외국의 입법례가 수령의무 위반을 제한적으로 해제의 사유로 인정한 취지는 채무자의 법률상 지위의 불안, 위험을 고려하여 선택권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 도급계약의 경우
예컨대, 기계를 제작납품하기로 하는 도급계약에서 대금이 선지급된 경우에, 채권자가 계약의 효력을 다투거나 그 밖의 사유로 완성된 기계의 수령을 거부하거나 거부할 의사를 명백히 한 때에는 채무자로서는 계약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남으로서 법률상 분쟁에 따른 위험의 부담을 더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 매매계약의 경우
예컨대, 주택의 매매계약에서 대금이 선지급된 경우에, 매수인이 부당한 이유를 들면서 등기 이전을 거부하는 경우에, 매도인은 그 주택을 보유하고 있음으로서 재산세, 종부세가 크게 늘어나거나 건강보험료, 국민연금보험료가 늘어나는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⑸ 이러한 경우에는 매도인에게 수령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계약의 불이행에 따른 부담을 면하게 할 필요도 있다. 2002년 독일 민법 개정 조항도 이러한 취지이다.
라. ‘채권자지체와 해제’에 대한 판례의 태도
⑴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은 채무자는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채권자에게 ‘계약상 또는 신의칙9)에 따른 급부수령의무 또는 급부이행에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채권자의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 위반을 이유로 하는 채무자의 계약해제권이 인정된다고 하였다.
신의칙상 채권자에게 급부를 수령할 의무나 급부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추상적ㆍ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안에서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거래 관행, 객관적ㆍ외부적으로 표명된 계약 당사자의 의사, 계약 체결의 경위와 이행 상황, 급부의 이행 과정에서 채권자의 수령이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⑵ 위 판결의 견해는 최근의 외국의 입법 동향까지 반영한 것으로 타당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특약에 의한 수령의무를 인정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⑶ 법정책임설이 해제권을 부정한 것은 수령의무가 이른바 ‘간접의무’일 뿐 법률상 ‘의무’에는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신의칙에 의하여 ‘수령의무’가 법률상 의무로까지 인정이 되는 경우라면 해제권을 부정할 이유는 없고, 법정책임설과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3.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한 계약해제에 대한 판례의 법리(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
가.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이나 계약해제를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 원칙적 소극)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민법이 인정하는 일정한 책임이 인정되는 것 외에 채권자에 대하여 일반적인 채무불이행책임과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이나 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
채권자지체는 채무불이행책임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책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 경우 그 효과로서 원칙적으로 채권자에게 민법에 정하여진 일정한 책임과 효과가 인정되는 것 외에,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일반적인 채무불이행책임과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이나 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
나. 계약상 의무로서 채권자에게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위 판결은, 계약 당사자 사이에 채권자의 수령의무나 협력의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약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과,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는 신의칙상 채권자에게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도 있음을 밝히면서, 그중 신의칙상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함께 제시하였다.
⑴ 계약에서 수령의무․협력의무를 명시적․묵시적으로 약정하는 것은 물론 가능함
계약 당사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채권자에게 급부를 수령할 의무 또는 채무자의 급부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약정하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상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일 묵시적 약정의 존부와 내용이 다투어지는 경우 계약의 해석에 관한 일반 법리를 동원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⑵ 약정이 없는 경우에도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협력의무를 신의칙상 인정할 수 있는 예외와 그 판단 기준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는 계약 당사자 사이에 위와 같은 명시적․묵시적 약정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신의칙상 예외적으로 채권자에게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유의할 점은, 예외적으로 채권자에게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가 인정된다는 것과 수령거절이 정당하지 않다는 사정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수령하지 않은 모든 사안, 즉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 사안에서 결국 채권자의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가 신의칙상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잘못 이해될 수 있다.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9다293036 판결은 위와 같은 신의칙상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의 존부는 추상적․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예외적으로 구체적 사안에서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거래 관행, 객관적․외부적으로 표명된 계약 당사자의 의사, 계약 체결의 경위와 이행 상황, 급부의 이행과정에서 채권자의 수령이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를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함을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⑶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의무위반 시 계약해제 가부
㈎ 이와 같이 채권자에게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계약 유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는 때에 비로소 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 있다.
㈏ 채권자에게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가 불이행되었을 때 채무자가 어떠한 구제수단을 가지는지는 그 수령의무 또는 협력의무가 개별 계약관계에서 가지는 의미와 비중을 고려하여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채무자는 그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채무자가 계약의 유지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때에는 비로소 수령의무나 협력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 채무자가 채권자의 수령거절에 따른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
⑴ 이 사건의 쟁점은, ① 원고의 채권자지체(= 피고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변제제공을 하였음에도 원고가 확정적인 수령거절의 의사를 표시하였는지)에 관하여 증명이 이루어졌는지 및 증명책임 소재, ② 만약 원고가 채권자지체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면,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한 해제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③ 농지가 문제된 이 사건에서 매수인에게 채무로서 수령의무 여부이다.
⑵ 민법 제400조는 채권자지체에 관하여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에는 이행의 제공 있는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채무의 내용인 급부가 실현되기 위하여 채권자의 수령 그 밖의 협력행위가 필요한 경우에,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제공을 하였는데도 채권자가 수령 그 밖의 협력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아 급부가 실현되지 않는 상태에 놓이면 채권자지체가 성립한다. 채권자지체의 성립에 채권자의 귀책사유는 요구되지 않는다. 민법은 채권자지체의 효과로서 채권자지체 중에는 채무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불이행으로 인한 모든 책임이 없고(제401조), 이자 있는 채권이라도 채무자는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으며(제402조), 채권자지체로 인하여 그 목적물의 보관 또는 변제의 비용이 증가된 때에는 그 증가액은 채권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정한다(제403조). 나아가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제538조 제1항).
⑶ 이와 같은 규정 내용과 체계에 비추어 보면, 채권자지체가 성립하는 경우 그 효과로서 원칙적으로 채권자에게 민법 규정에 따른 일정한 책임이 인정되는 것 외에,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일반적인 채무불이행책임과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이나 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
⑷ 그러나 계약 당사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채권자에게 급부를 수령할 의무 또는 채무자의 급부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약정한 경우, 또는 구체적 사안에서 신의칙상 채권자에게 위와 같은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그중 신의칙상 채권자에게 급부를 수령할 의무나 급부 이행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추상적․일반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안에서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거래 관행, 객관적․외부적으로 표명된 계약 당사자의 의사, 계약 체결의 경위와 이행 상황, 급부의 이행 과정에서 채권자의 수령이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⑸ 이와 같이 채권자에게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그 수령의무나 협력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채무자에게 계약의 유지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때에는 채무자는 수령의무나 협력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⑹ 원고가 피고 소유의 토지를 매수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하자 피고가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법무사에게 보관한 다음 원고에게 이를 통지했는데, 원고는 피고가 농지보전부담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수령을 거절하였다. 이에 피고가 원고의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매매계약 해제 통보를 하자 원고가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 사건이다.
⑺ 대법원은, 채권자지체를 이유로 한 피고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에 대하여 단순히 채권자지체만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고,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매매계약의 해석상 원고의 수령의무나 협력의무에 관한 명시적·묵시적 약정이 있었는지, 또는 신의칙상 원고에게 계약상 의무로서 수령의무 등이 인정되는지 심리하여 위와 같은 수령의무 등이 인정되어야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