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괜한 섭섭함과 꼰대질】《나이가 들면 유치해지기 마련이다. 유치원생에게나 어울릴 울긋불긋한 양말을 신고 싶고, 젊은 양아치들이 입고 다닐 껄렁한 티셔츠를 걸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3. 5. 2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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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섭섭함과 꼰대질】《나이가 들면 유치해지기 마련이다. 유치원생에게나 어울릴 울긋불긋한 양말을 신고 싶고, 젊은 양아치들이 입고 다닐 껄렁한 티셔츠를 걸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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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킹에 필요한 양말, 바지, 바람막이를 샀다.

그런데 집에서는 다들 내가 산 물건을 보더니 경악을 한다.

유치원생용 양말, 삐에로 광대가 입는 바람막이, 동네 양아치가 입고 다니는 조폭용 티셔츠, 껄렁해 보이는 바지란다.

또르마저 내가 산 양말을 물고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나쁜 또르!

 

내가 보아도 너무 튄다.

그럼에도 이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다.

 

솔직해지자.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천박하고, 요란하고, 화려하고, 유치찬란한 색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젊은 2-30대와 비교하면, 중년을 넘긴 사람들의 옷차림 색상이 완전 다르지 않던가?

중년여성을 위한 옷집에 가면, 그냥 딱 보아도 중년여성을 위한 옷이란 것이 느낌으로 다가온다.

화려하고 천박한 색깔과 디자인만 보인다.

 

난 그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예쁘고 화려한 색이 좋아진다.

밋밋한 무채색은 싫다.

튀는 색, 화려한 색, 밝은 색, 포인트가 있는 디자인이 좋다.

밝고 환하고 화려하고 깨끗한 것이 좋다.

 

예전에는 무난하고 평범한 것을 좋아했는데, 슬슬 야해지고 튀기 시작한다.

색깔이 밝고 화려해도 아무런 포인트가 없으면, 밋밋해서 싫다.

 

젊은 시절에는 황금색을 보면, 천박하고 유치찬란 색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순금색이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 걸 보면, 내 본성에 속물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양말 파는 매장에 갔더니, 트랙킹용 스포츠양말 옆에 알록달록한 무늬, 강아지 그림, 바다그림 등이 그려진 양말이 보인다.

처음에는 손수건인줄 알았다.

본느 메종(Bonne Maison), 니시구치 쿠츠시타(Nishiguchi Kutsushita), 코르기(Corgi)라는 브랜드의 양말인데, 이렇게 화려하고 유치해보이는 양말은 처음이다.

너무 귀엽고 예뻐서 바구니에 집어 넣기 시작했다.

우리가 걸치는 의류품목 중 가장 저렴한 것이 양말이다.

대부분 양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색깔이 가장 우중충 한 것도 양말이다.

 

티셔츠를 사면서, 노란색 바탕에 커다란 빨간 무늬가 박혀 있는 것을 골랐다

50대로 보이는 통통한 매장 여직원이 말한다.

고객님의 연세에는 너무 튑니다. 좀더 점잖은 것도 있는데 보여 드릴까요?”

 

나이가 들면 오기와 고집이 발동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 티셔츠가 너무 화려하고 밝아서 젊은이들이 해변의 축제에서나 입을 옷처럼 보여 마음의 갈등이 있는 찰나, 그 못된 여자의 말이 내 심장에 비수를 꽂으면서 반발심을 일으켰다.

 

내 본성에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다.

어릴 적에는 자발적으로 뭘 하려다가도 누가 시키면 갑자기 하기 싫고 내가 하나 봐라하면서 심술을 부리고 일부러 안 했다.

공부하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TV 그만 보고 공부해라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공부할 맘이 사라지곤 했다.

 

손님의 연세에는이라는 말에 발끈한 나는 다른 종류의 티를 더 살펴보지도 않은 채 계산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내 뱉었다.

 

그 뒤에는 연이는 심술보가 연출되었다.

바람막이 옷도 광대가 입을 만한 가장 튀는 옷을 골랐고, 트래킹용 바지도 트래킹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겨자색을 골랐다.

 

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 주인공 마티는 치킨(chicken, 겁쟁이)’라는 말만 들으면, 머리뚜껑이 열리면서 이성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나 역시 매장 직원이 고객님 연세에는이라는 말에 그대로 빡쳤다.

나이라는 숫자가 내 기를 시든 풀처럼 팍 꺽어 놓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유치해지기 마련이다.

유치원생에게나 어울릴 울긋불긋한 양말을 신고 싶고, 젊은 양아치들이 입고 다닐 껄렁한 티셔츠를 걸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