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전혀 재미없고 보기 싫은 이유】《우리나라가 지금의 선진국이 된 것도, 지금의 나를 키운 것도 8할이 ‘절박감’과 ‘열등감’ 덕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처럼 힘들고 절박하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을 뿐 다시 겪고 싶지 않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가족식사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둘째가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며, 나에게 보라고 권한다.
사실 이 드라마는 우리 세대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난 예전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을 너무 감명 깊게 보았다.
잊고 있던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을 재생시켜 시간여행을 하게 만든 것이 드라마 ‘응팔’이다.
응팔의 Ost는 가슴 깊숙이 고인 어린 시절 추억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 주제곡들은 목울대를 타고 올라와 마음을 애타게, 온 몸을 아프게, 슬픔에 젖게 만든다.
하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전혀 다르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아주 감동적일지는 몰라도, 그걸 겪어본 우리 세대에게는 쳐다보기도 싫은 최악의 드라마다.
젊은 시절의 나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절박감”과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난 절박감이란 단어를 아주 좋아했다.
인생을 가장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면 현실에 안주한다.
“Stay hungry(배고픔을 유지하라)!”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권투를 헝그리 스포츠라고 부르는 이유도 배가 고파야 주먹이 나온다는 뜻이다.
권투선수를 편안한 환경에서 배불리 먹인 다음 링에 올리면, KO로 지고 만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으면서부터 세계 챔피온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지도를 보면 역설적으로 천연자원 등이 풍부한 나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풍부한 자원 때문에 배 부르고 등이 따뜻해지자, 산업화에 늦어지면서 후진국으로 전락하였다.
목마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항상 채워진 삶을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기뻐할 일도 아니다.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들일수록 생활력과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
그들은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쉬 주저앉아 버린다.
누구나 배가 부르면 현실에 안주한다.
메마른 땅에서 자란 나무가 뿌리를 깊이 박듯이, 사람도 적절한 목마름을 유지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도태되고 만다.
성 밖을 나와 갑옷을 던져 버린 채 황량한 들판에서 추위를 견디고 맹수와 맞서는 순간 숨어 있던 ‘야생 본능’과 처절한 ‘생존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살아난다.
상처 입은 영혼은 더욱 강해진다.
실상 이것이 ‘인생’이다.
삶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어야 한다.
아쉬워야 영혼이 눈을 뜨고 숨을 쉰다.
부족해야 지혜가 눈을 뜨고 마음이 진실해진다.
진정한 결핍이 곧 삶의 원동력이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선진국이 된 것도, 지금의 나를 키운 건 8할이 ‘절박감’과 ‘열등감’ 덕분이다.
젊은 시절에는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나이 들어서도 절박하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평생 그 고생을 하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는데, 지금도 그런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면 어떨까?
넌더리가 날 것이다.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을 뿐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세대를 살아본 사람들 중 나 같은 사람은 이 드라마가 지긋하고 싫은 것이다.
‘응팔’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드라마다.
‘시련과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인생을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삶은 고생한다고 해서 대가를 지불해 주지 않는다.
역경과 고통은 사람을 단련시키지만,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몸은 질병에 걸리거나 다치기 전보다 더 건강해지지 않는다.
위기를 겪고 나면 더 약해진다.
전쟁터에서 강해져서 귀환하는 병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그들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이 그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크게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전쟁터에 나가거나 위기를 다시 마주쳤을 때 안전한 것은 아니다.
고통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귀중한 경험을 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한 인생관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소중한 수확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들처럼 몸을 혹사하고, 어려운 역경을 돌파해 나가는 시련을 구태여 찾아 겪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젊은이들의 몫이다.
나이가 들면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년기에는 살아남지 못한다.
목표와 방향만 분명하다면, 이제는 힘들 때 잠시 멈춰 쉬었다 가도 좋다.
노년기의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