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아흔을 바라보시는 우리 장모님, 그리고 어머니의 금반지】《장모님께서는 이제 좀 이기적으로 되실 필요가 있다. 자녀들이 힘들 때 사랑하고 염려하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1. 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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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을 바라보시는 우리 장모님, 그리고 어머니의 금반지】《장모님께서는 이제 좀 이기적으로 되실 필요가 있다. 자녀들이 힘들 때 사랑하고 염려하며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어라. 하지만 자녀들의 인생은 자녀들의 몫으로 남겨 두어라.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인생이 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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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안방 서랍에는 금반지가 하나 있다.
어머니가 살아계시던 2005년 2월 어머니 생신날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내가 드린 용돈의 일부를 모아 금반지를 사신 것이다.
실용성도 없고 끼지도 않을 촌스런 금반지를 왜 샀느냐고 큰소리를 내자, 어머니는 죽기 전에 막내아들에게 ‘기념’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주 오래 전에 연극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모성애를 그린 연극이다.
너무 감동 깊었고 항상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 오신 장모님이 생각나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다시 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장모님께서는 그 연극에 아무런 감흥이 없으셨다.
당신에게는 그런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장모님께서는 지금도 용돈을 드리면, 당신을 위해 쓰시지 않고 모아두신다.
죽을 때 자녀와 손자들에게 주고 싶으신 것이다.
난 장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마다 ‘부족하면 얼마든지 드릴테니, 제발 당신을 위해 한푼도 남김 없이 모두 쓰시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말씀드린다.
하지만 큰손녀의 해외유학등록금을 보태달라는 자식의 말에 그 동안 힘들게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또 내어주신다.
상가와 현재 살고 계신 아파트도 돈벌이를 못하는 장남의 노후대비가 무척 걱정되셨는지 이미 조치를 해두셨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다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완전 달라졌다.
지금의 MZ세대는 결혼에도 관심이 점점 없어지고, 설사 결혼을 한다해도 자녀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그 중간쯤일 것이다.
내가 어릴 때 푸념처럼 교훈처럼 어머니가 하시던 우렁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렁이는 몸 안에서 새끼들을 품고서 제 살을 파 먹여 키우느라 종국에는 빈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7남매는 고되고 힘든 삶을 사신 어머니의 살을 파먹고 살았지만, 끝내 어머니의 텅빈 삶을 채워드리지 못했다.
자식들은 제 하늘을 날기에 바빴다.
 
내가 어머니에게 다가갈 시간적 여유와 경제력을 가졌을 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아흔을 바라보는 장모님께서만은 남은 귀한 시간을 자식과 손주를 위한 희생을 하시기보다는 당신의 행복과 건강을 챙기시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지금은 늙어서 자식에게 기대려는 부모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기대가 있다면, 당장 버려야 한다.
 
오히려 자식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부모에게 바라고 의지하려 든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독립심을 상실한 채 늙으신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뻔뻔한 자식들도 있다.
부모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푸념하고, 부모를 미워한다.
 
더 이상 부모 탓 하지 마라.
부모 탓은 아직 어리다는 신호일 뿐이고, 비겁한 자기 변명이다.
정작 이겨내야 할 것은 부모가 아니라 아니라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는 ‘미숙한 자신’이다.
 
우리 장모님께서는 이제 좀 이기적으로 되실 필요가 있다.
 
여기 인생을 10년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따끈따끈한 비결이 있다.
그건 바로 자녀들에게 남길 돈으로 세계여행을 하는 데 다 써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자녀들의 일에 적당히 관심을 갖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의 인생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기 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활동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모든 정성과 관심을 쏟거나 자식들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부모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산다고 한다.
자식들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자녀의 행복 뿐 아니라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해친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고, 이제는 그만 해도 될 때가 되었다.
자녀들이 부모의 보살핌이나 충고 없이는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거라도 생각하는 건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한 모독’이다.
 
당신은 이미 인생의 굴곡을 겪어 왔고, 힘든 과정을 거쳐 성숙해 왔다.
그러니 자녀들이 아플 때 자녀들과 함께 그 고통을 다시 견뎌낼 필요는 없다. 자녀들의 고통은 자녀들의 몫이다.
 
자녀들도 자라면서 때론 힘든 시기를 맞을 것이고,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 역시 아프겠지만, 자녀들의 인생에 닥칠 모든 역경과 고통을 우리가 대신 막을 방도는 없으며 나서서 막아보려 한들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사실 부모의 인생을 희생한다고 해서 자식이 잘 되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자식이 잘된다고 해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주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 시간을 마음껏 즐기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보람을 느끼고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그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식을 돌보고 많은 사랑을 주는 것은 잘못된 방식은 아닐 것이다.
 
자녀들이 힘들 때 사랑하고 염려하며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어라.
하지만 자녀들의 인생은 자녀들의 몫으로 남겨 두어라.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인생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어갈테니, 너희는 너희의 길을 걸어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