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우비를 입고 빗속을 거니는 또르】《또르의 우비를 벗기고 실컷 비를 맞게 해주었다. 나도 비를 맞아 홀딱 젖어본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자.》〔윤경 ..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4. 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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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를 입고 빗속을 거니는 또르또르의 우비를 벗기고 실컷 비를 맞게 해주었다. 나도 비를 맞아 홀딱 젖어본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자.》〔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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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다.

주말 산책만 기다리던 또르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하지만 이따위 고난과 역경에 굴복할 또르가 아니다.

 

우비를 챙겨 입고 나섰다.

구리 소재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신 후 인근 공원을 산책했다.

비가 내려서인지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화창한 날씨도 좋지만,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내려도 아무 상관 없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운치가 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구름 낀 하늘도 정말 멋지다.

이런 날에는 굳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센티멘탈(sentimental)로 빠져드는 마음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또르는 우비가 다소 거추장스런 모양이다.

우비를 벗기고 실컷 비를 맞게 해주었다.

나도 우산과 얇은 비옷을 준비했지만, 비를 그냥 맞기로 했다.

비를 맞아 홀딱 젖어본 지도 오래되었다.

 

어릴 적에는 맨발로 흙길을 걸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뗄 때마다 발바닥을 간질거리며 전해지는 흙의 감촉은 의외로 부드럽고 시원하다.

 

장대비 오는 날 흙길을 맨발로 걸어보고 싶다.

바람 부는 날 숲을 노니는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싶다.

나무줄기에 귀를 대고 나무 몸통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말갛고 고요한 우물 하나가 있다.

바로 추억을 긷는 우물이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보아도, 비를 맞아도, 커피 향을 맡을 때도 밀려드는 추억에 가슴이 메어지고 저려 올 때가 있다.

추억이란 이렇듯 소슬하고 아름다운 기억들로 묶여진 사집첩이다.

지난 날의 슬픔조차도, 울먹이며 가슴 조이던 아픔 조차도 감미로운 향수 속으로 몰아 넣어 주는 향긋한 홍차와 같다.

 

추억은 가슴 깊숙이 고인 눈물샘이다.

이따금 목울대를 타고 올라와 마음을 애타게, 온 몸을 아프게, 슬픔에 젖게 만든다.

 

나이 들어 애틋한 추억이 없는 삶은 황량하고 무의미하다.

추억을 많이 가지게 되면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일만 하지 말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추억은 마음 속의 난로와 같다.

언제든 되살아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좋은 추억일수록 울림이 오래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과 향이 풍부해 진다.

 

가슴 아픈 추억조차도 애틋함으로 다가 온다.

추억의 우물에 고인 기쁨, 아픔, 불행은 어느덧 말갛고 감미로운 포도주 빛깔로 바뀌어 있다.

추억은 지나온 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앞으로 영위할 삶을 기대와 흥분으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아무리 아름답고 정밀한 예술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고 부서진다.

그러나 마음 속에 깃든 사랑과 추억은 영원히 퇴색되지 않는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간이 흘러 오늘 핀 꽃은 내일이면 질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여 오늘의 순간을 망치는 어리석음과 다가 올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오늘의 중요한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