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에 비해 애매모호한 성희롱·성추행, 제대로 알아야 피해 없다
한국일보 2013.10.21 <기사원문보기>
최근 ‘여성 응시자에 대한 운전면허시험관의 성희롱 발언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법원이 해당 시험관의 파면을 취소하라고 판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A씨는 면허시험장에서 도로주행시험을 치르던 B씨 차량에 시험관으로 동승해 수차례 성희롱 발언을 하고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
A씨는 “합격하면 술사라. 내가 2차를 사겠다”면서 2차에 가면 성관계를 하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A씨는 또 다른 여성 수험자에게 명함을 달라고 하거나 시험 도중 무릎에 손이 갈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B씨가 이런 A씨의 행동을 다른 감독관에게 강하게 항의하자, 공단 측은 A씨를 파면 처분했고 A씨는 이에 불복해 ‘파면처분무효 확인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저지른 중앙부처 공무원은 대부분 감봉이나 견책, 정직 등의 징계를 받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파면은 지나치다”고 설명했다.
성희롱의 성립요건
그렇다면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어디까지가 처벌 범위이며 성립요건은 무엇일까. 대부분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정확한 증거와 정황들이 있어 고소할 근거가 확실한 편이다. 하지만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피해자나 가해자나 그 의미와 의도의 해석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신고나 고소를 할 근거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이란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인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언동에 거부하는 것을 이유로 고용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의 전제요건인 ‘성적인 언동 등’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나 남성 또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로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법무법인 바른의 윤경 변호사는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이나 단기간의 것인지,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 사정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성적 언동이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호의적인 언동의 범주를 넘어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성적 모욕감과 혐오감을 느낀 것으로 추정되지만, 성적 언동에 의한 행위일지라도 상호간에 사귀거나 특수한 관계에 있으며 성적 언동에 대하여 별다른 불쾌감을 표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친근한 관계임을 보여줬다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고, 다소 불쾌하거나 짓궂고 품위를 잃은 천박한 언동이 여러 차례 지속된 적이 있는 경우라도 상대방이 그때마다 특별한 거부반응 없이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피해자는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어
요즘에는 문자나 SNS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내용을 전달받는 경우도 많다. 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에 따라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해당한다.
윤경 변호사는 “자기나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형법상의 강제추행(强制醜行)을 의미하는 ‘성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행위로 보아 형법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윤경 변호사는 “대중교통수단, 공연·집회장소 및 그 밖에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추행을 당한 사람은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고,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피해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윤경 변호사는 “성희롱을 경험한 사람은 모욕감이나 수치심 등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기 저하, 직무만족도 감소, 회사에 대한 부정적 사고, 상사와 동료에 대한 신뢰감 상실, 경력발전 기회상실을 초래한다. 성희롱 가해자 역시 징계나 해고 등 고용상의 불이익은 물론 그동안 쌓아온 명예를 상실하고 성희롱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등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으므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통해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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