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로도 심증 형성될 수 있어
서울경제 2013.07.23 <기사원문보기>
최근 한 방송 드라마에서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국민참여재판을 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사건은 피해자라고 여겨지는 남자의 왼손이 잘린 채 발견되었고 그 도구로 사용된 칼의 지문이 한 청년의 것으로 나타났으며 피해자와 청년은 사고 당일까지 전화를 주고받은 흔적이 있었다.
이러한 주변 정황을 통해 피의자로 지목된 청년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변호사와 그 모든 정황이 청년을 살인자로 지목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검사의 불꽃 튀는 공방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제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과 피고인 청년이 그날 당시의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이때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을 향해 변호사는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에 대해 강조하고, 검사는 합리적 의심으로 살인자를 놓아주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
즉 살인사건에서 시신은 없고 왼손만 발견된 상황에서 피고인을 살인자로 몰아세울 수 있는 확실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 변호사가 주장하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피고인이 살인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면 피고인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27조 4항에는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헌법에서 명시한 중요한 권리 중 하나로서 진술거부권과 함께 형사피의자와 형사피고인의 권리로 꼽힌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재판부는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을 때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원칙에 따라 청년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드라마와 비슷한 상황으로, 최근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서 징역 13년형이 확정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빚 독촉을 하는 동업자를 폭행하고 생매장해 살해한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40대 피고인에게 징역 13년형이 확정된 것이다.
P씨는 일용직 중장비 기사로 일하면서 2007년 알게 된 A씨에게 동업을 권유해 2008년 3~4월 사업자금으로 약 8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A씨는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며 압박했고, P씨는 격분해 A씨를 때려 정신을 잃게 한 뒤 구덩이에 밀어 넣고 흙을 부어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은 “P씨가 사람을 죽였다”는 P씨 동거녀의 증언과 각종 정황 증거만 있을 뿐, 시신을 찾지 못하고 범행 장소도 명확히 밝히지 못해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불렸다. P씨는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는데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유죄의견을 냈고, 재판부는 징역 13년형을 선고했다.
2심도 “P씨는 평소 가깝게 지내는 피해자가 사라졌음에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등 행동과 정황을 고려하면 유죄로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대법원 형사1부는 P씨에 대한 상고심(2013도1007)에서 징역 1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윤경 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려면 법관에게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피고인의 이익’이란 형사소송에 있어서 유무죄의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검사의 입증이 부족해 판사가 유죄의 심증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무죄판결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또한, 윤경 변호사는 “하지만 그와 같은 심증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에 의해서도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판결이 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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